돼지들 생활공간 안쪽에서 열심히 차광막을 당기고 있는 내 모습.
5월이 이렇게 더운 달이었나? 5월3일, 기온이 28℃를 찍더니 다음날은 29℃까지 올라갔다. 아침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치던 돼지들은 11시를 넘긴 후엔 땅속에 코를 파묻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밥을 주고, 빈 통에 밥을 다시 채울 즈음엔 우리도 기운이 쑥 빠졌다.
때 이른 더위는 우리에게 채찍이었다. 돼지는 더위에 매우 약하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돼지들을 죽일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어서 당황했다. 6월 중순에나 더위 준비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다. 사람은 땀을 배출시켜서, 개는 입을 헉헉거리면서, 고양이는 침을 묻혀서 체온을 낮춘다. 체온을 낮추는 데 필요한 것은 몸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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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는 돼지를 죽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돼지는 스스로 체온을 낮추는 시스템이 없다. 땅을 파서 차가운 곳에 눕거나, 진흙이나 물을 묻혀 체온을 낮춘다. 만약 돼지를 돌보는 사람이 체온을 낮출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 농장은 더더군다나 햇볕이 잘 들도록 지붕을 만들어서 그늘이 부족했다. 투명 지붕은 더위와 함께 최고의 시설에서 최악의 시설로 바뀌어버렸다.
차광막을 치기 전 지붕의 상태. 햇볕을 잘 받으려고 투명 재질을 50%나 사용했다. 겨울에는 따뜻함과 건강을 주는 최고의 소재였지만, 여름에는 열사병 등 온열 질환을 유발하는 나쁜 소재다. 그렇지만 태양은 생명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먼저 햇볕을 가려줄 필요가 있었다. 지붕 위에다 차광막을 올려 싹 막아버릴까 고민했지만, 지붕 위에서 작업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태풍이라도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또 햇볕을 조금이라도 봐야 건강한데 완전히 막으면 돼지들 건강에 해로울 것이었다. 한번 해 놓으면 평생 간다는 생각과, 반짝 더위가 지난 다음 며칠간은 시원했기 때문에 급한 마음을 다스려 조금 꼼꼼하게 작업하기로 했다.
축사 기둥에 구멍을 뚫어 차광막을 치기로 했다. 기둥마다 구멍을 뚫어 고리를 걸고, 고리에 줄을 걸어 거미줄처럼 만든 다음, 줄 위에 차광막을 고정하는 계획이었다. 힘이 좋은 전기드릴과 쇠를 뚫는 드릴 날을 준비했다. 기둥은 7mm 두께의 H빔인데, 두어 개 뚫고는 바로 후회했다. 드릴 날이 한 개에 무려 만원정도여서 그냥 쑥쑥 뚫릴 줄 알았는데 두께도 그렇고, 구멍 크기도 10mm 정도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총 24개의 구멍을 뚫는 데만 거의 하루가 꼬박 갔다.
복도 쪽에서 더 열심히 차광막을 당기고 있는 아내 송유하.
그다음도 어렵긴 매한가지였다. 기둥에 뚫어놓은 곳에 고리를 달았고, 고리를 잇는 줄을 걸었다. 줄이 너무 길다 보니 축축 처졌고, 급기야 돼지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더불어 나까지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돼지들이 장난을 걸어왔다. 사다리에서 작업할 때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차광막도 작은 것을 여러 개 써도 됐을 것을 폭 10m, 길이 30m나 되는 걸 한 번에 걸었다. 나는 축사 안에서 돼지들의 장난질을 피해가며 당겼고, 아내는 복도에서 다른 쪽 끝을 잡고 당겼다. 묶인 곳이 풀리기도 하고, 놓쳐버린 끈을 돼지가 가져가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차광막을 다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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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용 분무기까지 동원
기분 탓일 것 같지만, 차광막을 치자마자 5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축사 안에서 찬바람이 불어왔다. 차광막을 친 뒤엔 날씨가 그럭저럭 시원해서 햇볕에 누워있는 녀석이 있을 정도였지만,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여지없이 차광막 아래에 드러누웠다. 만족스러웠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은 햇볕을 가려 체온이 올라가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이고, 더운 공기로 더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더위가 찾아온 5월23일부터는 한낮에 한 번씩 냉수샤워를 시켜주었다. 축사에는 차량 방역 용도의 고압분무기를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하는데, 돼지들에게 물을 뿌리기에 딱 적당하다. 수압이 강해서 가까운 녀석들에겐 안개 분사기능으로 샤워를 시켜주고, 먼 곳의 녀석들에겐 직수로 쐈다. 직수라 해도 멀리까지 가다 보면 물줄기가 퍼져서 안개처럼 변했다.
햇볕이 온열 질환을 유발한다 해도 생명유지에는 필수조건. 차광막을 반 만 덮어 반은 햇볕이 들어오도록 했다.
차광막을 쳤더니 이른 아침에는 쌀쌀했다. 햇볕에서 젖을 주고 있는 모돈.
분무기에서 나오는 물소리에 놀라 뒷걸음질 치던 돼지들도 시원한 물이라는 걸 곳 알아채고는 우르르 몰려들었다. 코와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노력했으나 도리어 머리를 들이밀며 찬물을 맞았다. 덥긴 했나 보다.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가 되면 몸을 흔들어 물을 털어냈다. 그때마다 ‘푸득푸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큰 귀가 몸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아 기분 좋다’ 하며 흔드는 것 같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불과 며칠 전 조팝나무 꽃을 보며 ‘이제 봄이구나’ 했었다. 집 주변에서는 진달래가 가장 먼저 피고, 개복숭아가 그다음이다. 그때는 아직 춥다. 조팝나무에서 풍기는 꿀 향기를 맡아야 봄 기분이 좀 나고, 아카시아 꽃 빛에 눈이 좀 부셔봐야 제대로 봄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새 버드나무 씨앗 휘날리며 봄이 끝나가고 있다. 버드나무 씨앗이 날리고 나면 우리 집 주변의 ‘봄 이벤트’는 끝이다. 이렇게 빠른 봄은 처음 느껴본다.
뒷걸음치던 돼지들이 시원한 물인 걸 알아챈 뒤부터는 서로 물을 맞으려 애썼다.
뒷걸음치던 돼지들이 시원한 물인 걸 알아챈 뒤부터는 서로 물을 맞으려 애썼다. 나는 코나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얼굴을 자꾸 들이미는 통에 그냥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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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샤워에 신난 돼지들
이따금 가축들이 폭염에 쓰러졌다는 기사를 봤다. 이른 봄날부터 ‘폭염’ 수준의 더위가 시작되는 걸 보면, 올 여름이 걱정이다. 돼지를 데리고 여름을 난 것은 작년이 처음이지만, 마릿수가 작년 대비 열 배가 넘는다. 그늘을 만들고, 물을 뿌려주고, 더 더워지면 아예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내가 없어도 물이 나오도록 할 생각도 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는 터지기 마련인데, 그 사고가 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름아~ 부탁해!
글·사진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