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김성만의 슬기로운 육식 생활⑨
던지고 돌아서면 없어지는 ‘인기 간식’, 농장 돼지는 어쩌다 풀을 좋아하게 됐을까
던지고 돌아서면 없어지는 ‘인기 간식’, 농장 돼지는 어쩌다 풀을 좋아하게 됐을까
새끼돼지들도 풀을 좋아하긴 마찬가지다. 태어나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을지라도 금방 적응하며 눈앞에 떨어진 풀을 잘 먹는다.
농장 돼지의 특식, 풀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로 물으셨다. “너거 돼지들 머 먹고 크노? 엄마 어릴 때는 풀 멕이면서 키았다이가.” 나는 다소 크고 흥분된 목소리로 “뭐라고? 풀?”하고 반문했다. 풀은 소수의 ‘자연양돈’ 농가에서만 먹이는 줄 알았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는 집집마다 돼지가 있었고, 모두가 풀을 베어다 먹였다고 했다. 덕분에 집은 물론 하천 주변에서 풀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거 있다이가, 분홍색 꽃 피는 거. 그거 참 잘 묵었는데, 우리는 돼지풀이라 캤다.” 나는 대번에 ‘고마리’를 떠올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널리 ‘돼지풀’이라고 불렸다. 고마리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집 주변 도랑에는 고마리가 아주 빽빽하게 자라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그거 고마리 아이가?” 했지만 엄마는 “몰라, 그게 고마린지 뭔지 몰라도 돼지풀이라 캤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돼지풀이 고마리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울 엄마 어릴 적 돼지풀은 고마리’로 정리하고 주변에 떠벌리고 다녔다.
풀은 돼지들이 아주 좋아하는 간식이다. 먹을 게 없어서? 영양이 많아서? 아니, 그냥 좋아! 순서를 기다리는 옆방 돼지들이 부러운 듯 쳐다본다.
우리농장 가장 어린 새끼돼지. 이 돼지도 풀을 참 좋아한다.
돼지가 풀을 먹는 이유 우리 같은 작은 농가들이 돼지에게 풀을 먹이는 건, 먹을 게 없어서라기보다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우리 농장에서는 미강을 비롯한 농사 부산물들, 최근에는 유기농 사료를 함께 발효시켜 돼지들에게 준다. 사료에는 돼지에게 필요한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있지만, 돼지들 스스로 부족한 영양소를 찾아서 먹을 수는 없다. 사람들도 어떤 날은 채소가 먹고 싶고, 어떤 날은 고기가 먹고 싶은 것처럼 돼지들도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외출이라도 시켜주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오너라’ 하거나 산을 통째로 넣어주면 좋으련만 아쉬운 대로 풀이라도 베어다 주는 것이다. 올봄, 축사 가는 길에 아내가 “조심해!”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나를 세웠다. 내 주위로 환삼덩굴 새싹들이 빼곡했다. 환삼덩굴은 줄기가 질기고 억센 데다 잔가시가 돋아 있는 풀이다. 예년 같으면 ‘와, 지금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다’하고 쏙쏙 뽑아버렸을 텐데, 이제는 대환영이다. 돼지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풀인 데다 한 포기만 뽑아도 양이 풍성하다. 가성비가 좋다. 감정을 역전시킨 풀이 또 있다. 칡넝쿨. 칡도 하루가 다르게 빨리 자라는데, 넝쿨 끝을 잡고 쫙쫙 당겨서 뽑으면 아주 상쾌하다. 그동안 환삼덩굴, 칡넝쿨만 보면 징글징글했다. 이제는 “여기도 많고” “저기도 많고” 하면서 많이 자라는 곳을 기록해 둘 지경이다.
돼지들이 농장 아이들이 주는 풀을 받아 먹고 있다.
지천으로 널린 풀들아, 고맙다 요즘은 내가 정육점을 짓느라 아내 혼자서 돼지들을 돌본다. 축사 옆쪽 풀을 다 베고, 지금은 뒤쪽을 베서 준다. 낫으로 풀을 베기 시작하면 풀냄새가 풍긴다. 냄새를 맡은 한 두 마리가 스타카토로 ‘꿀’, ‘꿀’ 딱딱 끊어서 소리를 낸다. 냄새가 퍼질수록 반응하는 돼지가 늘고 결국 아내가 풀 베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진다. ‘차라리 나와서 실컷 먹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란다. 농장 돼지들이 풀을 먹는 이유를 두 가지라고 했던가?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풀을 먹는 것이다. 내가 하루빨리 정육점을 짓고, 낫을 들어 아내의 부담을 덜어야겠다. 글·사진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
조금 전에 배를 채운 돼지들인데도 풀이 오면 또 달려든다.
고마리를 베고 있는 아내 유하. 축사가 있는 자리는 논이었다. 논이나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 고마리는 지천으로 널렸다. 예전에는 ‘돼지풀’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돼지들이 좋아하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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