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냉수샤워를 하는 돼지.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잘 있다 보내는 게 하하농장의 모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돼지만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바쁠 일이 없었겠지만, 우리는 직접 정육하여 직거래하는 걸 목표로 했고, 요즘 집 앞에 정육점을 짓고 있다. 전문가에게 맡겨서 지었다면 또 바쁠 일이 없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서 직접 짓고 있다.
그러던 중 오후 네 시경에 군청 공무원한테 전화가 왔다. “내일 두시 넘어서 갈 건데요. 가축분뇨법 참고하세요.” 처음엔 ‘이렇게 바쁜 때에 누가 오나’ 싶어서 못마땅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날들을 보내고 있는 탓에 누가 온다는 건 정말 부담스럽다. 그런데 아주 짧은 통화에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군청, 면사무소, 가축방역본부 등 기존에 왔던 ‘관계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허가증과 분뇨처리와 관련된 장부도 준비하라고 했다. 공무원은 통화 끝에 “아시죠?”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찾아보니 ‘가축분뇨 관리실태 합동점검’이었다. 검색된 기사에는 과태료와 고발 등의 단어가 난무했다. 말이 ‘점검’이지 하는 일은 ‘단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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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단속반’ 방문
처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큰 돼지들 칸의 똥이 생각났다. 부랴부랴 톱밥을 사러 다녀왔다. 똥을 치우고 나서 함께 섞어줄 톱밥이 때마침 떨어졌었다. 제재소가 문 닫을 시간에 간신히 도착한 탓에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톱밥을 다 싣고 나니 함께 옮겨주어서 고맙다며 서비스로 한 포대를 더 얹어주었다. ‘단속반’ 스트레스에 그늘져 있던 내 얼굴에도 미소가 돌았다. 이 와중에도 공짜는 사람을 웃게 하였다.
집 앞에 혼자 정육점을 짓고 있는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
집에 돌아와 관련법인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았다. 아래까지 읽지 않아도 제7조에 ‘가축분뇨실태조사’에 관한 항목이 있었다. ‘가축분뇨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 실태 조사’가 주 내용이었다. 공무원은 서류도 준비해놓으라고 했기에 어떤 서류인지 한참을 찾았다. ‘가축분뇨 정화처리시설 관리일지’라는 것과 ‘가축분뇨 및 퇴비 액비 관리대장’이라는 장부였다. 농장에서 돼지 똥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표’였다. 이 장부들을 유지하지 않았을 경우엔 과태료도 ‘100만원 이하’로 적지 않은 금액이 정해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례들을 자세히 찾아보았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기사가 검색됐다. ‘가축분뇨 합동점검’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이루어진 보편화한 활동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모르고 있었는지 한심스러웠다. 단속에 걸린 사례들을 보고 있자니 두 가지 감정이 일었다. 하나는 ‘어떻게 저럴 수가!’하는 것과 ‘나도 걸리면 어떡하지?’라는 것. 그런데 딱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큰 돼지들 칸 빼고는 아내 혼자서 청소를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우리 축사는 돼지들이 톱밥 위에다 오줌과 똥을 싸면, 톱밥과 섞여 발효되고 일부는 돼지들이 먹기도 하고, 남은 부분은 우리가 치우는 구조다. 톱밥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몇 달에 한 번 치워도 될 정도다. 소변 같은 경우는 톱밥이 흡수하고 금세 말라버려 흔적조차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돼지들은 톱밥 위보다는 쉼터로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똥을 쌌다. 아마도 톱밥이 있는 곳 전체를 휴식처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톱밥발효돈사 원리대로 생활공간에서 발효된다면 70도까지 치솟는 발효열, 기생충 발생 등 몇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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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냄새가 안 나죠?
다음 날 아침 큰 돼지들이 있는 칸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청소를 못 한 것이었는데, 똥은 마르고 압축이 되어 납작한 삽으로 긁어내야 했다. 어지간히 똥 자리를 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이 있는 자리라도 그 위에 올라서서 똥을 싼다. 한편으로 안타까웠지만 내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한군데 모여있는 것만 치우면 되는 일이니까. 아내랑 둘이 치우니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돼지들 생활공간 안쪽에서 열심히 차광막을 당기고 있는 김성만씨.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공무원들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전화로 들은 대로 경북도청, 영주시청, 봉화군청 공무원들이 ‘합동’으로 왔다. 모두가 ‘환경’ 관련 과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로 인허가를 담당하는 직원들이었다. 얼어있던 내 표정이 더 굳어졌다. 군대에서 받던 지휘검열이 오버랩됐다. 내가 안내하기도 전에 자연스레 복도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북도청 직원이 먼저 한마디 했다. “냄새가 안 나네요?” 다시 고쳐서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냄새가 안 나죠?” 그 말을 듣고 굳어있던 내 얼굴과 마음이 순식간에 풀렸다. 이때가 6월 말경으로 덥고, 습한 때라 냄새가 난다면 가장 심할 시기였다. 그나마 우리 농장에서 냄새가 날 만한 유일한(?) 시기이기도 한데, 오히려 단속반에겐 그 정도 냄새는 ‘안 나는 상태’였던 것이다. 냄새가 심한 농장은 심할 때는 수 km 떨어진 곳에서도 악취를 맡을 수 있고, 가까운 곳에서는 코를 꺼내놓는 것이 힘들 정도이긴 하다.
우리 농장이 합동점검 리스트에 오르게 된 것은 ‘개방형 톱밥 돈사’ 악취 발생 돈사 중에서도 악명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은 돼지를 동물로 생각 안 해요.”라는 말로 그런 돈사의 상태를 압축했다. 그러면서 “돈만 생각해서 키우는 게 아닌가 봐요.”라고도 했다. ‘이렇게 키워서 돈이 돼요?’라는 말을 돌려서 했을 수도 있지만 기분 좋은 말이었다.
우리 농장에 머물던 잠깐 사이에 칭찬을 엄청 했다. “이렇게만 하면 돈사에 대한 생각이 다 바뀌겠어요”, “진짜 신경을 많이 쓰셨네요”, “여긴 지적할 사항이 없네요”, “돼지들이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거 같아요”, “사료에서는 빵 냄새가 나네요?” 등등. 그중에서도 경북도청직원의 “이 일을 맡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돈사는 처음이에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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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농장 꿈에 힘 실어준 한마디
‘단속반’ 역시 차에서 내릴 때의 험한 표정은 이미 사라진 상태로 ‘선하고 좋은 사람’로 변해있었다. 단지 그 시기에 파리가 좀 많았는데 ‘파리는 좀 해결해야 겠다’라는 수준으로 지적했다 (고백하자면, 더워지는 시기에 똥이 조금 쌓여있었고 그것을 치웠더니 다음날 거짓말처럼 파리가 1/10 정도로 줄어있었다). 출발하며 ‘이 농장에는 향후 몇 년간은 올 일이 없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하하농장 ‘특식’인 풀을 즐기고 있는 돼지들.
그동안 ‘돈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 명 방문했었다. 그 사람들은 ‘일반양돈’ 기준으로 온도관리를 위해 벽을 쳐라, 이래라저래라 지적을 할 뿐이지 우리가 의도한 사육방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빨리 키우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 섞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방식은 우리가 지양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아무런 정보 없이 갑작스럽게 방문한 축사였음에도 우리의 의도까지 파악하고 “이렇게만 한다면 이런 돈사는 더 늘어나도 되겠다”는 말을 했다. 바로 우리가 꿈꾸는 일을 말이다. 대규모의 공장식 돈사가 줄어들고 우리처럼 소규모의 돼지농장이 늘어나는 꿈.
축사를 시작하고 겨우 반년이 지났지만, 그간의 노력을 누군가가, 그것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알아봐 준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어제까지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날아갔다. 단속반은 그렇게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떠났다.
글·사진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