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김성만의 슬기로운 육식생활 ⑪
어처구니없는 사고의 연속, 험난한 여름나기
목마른 돼지들은 수도 시설 ‘공격’하고
휴가철 문 닫은 정미소…사료 조달도 비상
어처구니없는 사고의 연속, 험난한 여름나기
목마른 돼지들은 수도 시설 ‘공격’하고
휴가철 문 닫은 정미소…사료 조달도 비상
물이 찬 축사 안에서 하마 흉내를 내고 있는 돼지.
천둥번개와 함께 찾아온 날벼락 다음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정육점 현장으로, 아내는 축사로 향했다. 한 삼십 분 쯤 지났을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야, 돼지들 물이 안 나와! 큰일 났어.” 정말 큰일이었다. 더운 여름에 물을 못 마시는 건 대형사고였다. 이웃 농가 ‘고마워돼지’ 농장 희규씨도 물의 중요성을 얘기했었다. “형님, 돼지들 밥은 못 먹어도 괜찮은데, 물을 못 마시면 기를 쓰고 탈출해요.” 들고 있던 망치를 던져놓고 일단 뛰었다. 먼저 지하수 펌프를 살폈다. 빗물이 펌프실 내부로 유입돼 고장 났나 싶어서다. 뚜껑을 열어보니 뽀송뽀송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축사 복도를 통과하며 전선을 살폈지만 별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물꼭지 아래에 물이 말라 있더라”며 달려왔다. 돼지들은 물을 흘리며 마시기에 늘 흥건하게 젖어있다. 다들 나를 노려보며 화난 “꿀” 소리로 항의했다. 마음이 더 바빠졌다. 일단 차단기가 내려가 있기를 바라며 차단기로 향했다. 차단기가 내려가 있으면 올리면 그만인 일이다. 다른 곳이 문제라면 문제를 찾기 위해 곤욕을 치러야 한다. 단자함을 열어보니 고맙게도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다. 어제 번쩍거리던 번개에 내려간 것이다. 물이 나오기 시작하자 밥통에 가득한 사료는 젖혀두고 수돗가로 몰려들었다. 가뜩이나 잦은 ‘공격’으로 약해진 파이프가 걱정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목마른 돼지가 한 두 마리가 아니었으므로 파이프가 위태로워 보였다. 급하게 고압 살수기를 동원해 돼지들을 향해 ‘안개 모드’로 분사했다. 모두가 입을 벌리고 마른 입을 적셨다. 고비를 넘겼다.
번개에 내려간 차단기 탓에 목이 말랐던 돼지들은 살수기로 물을 쏘아주자 입을 벌리고 마른 입을 적셨다.
물 찬 축사…피서 즐기는 돼지들 물이 많다고 모두가 목욕을 즐기는 건 아니었는데, 유독 한 마리가 가운데서 몸을 푹 담그고는 하마인 척하고 있었다. 파이프를 부러뜨린 돼지가 바로 저 돼지가 아닐까 의심이 되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자재상에서 파이프를 사다가 일단 주먹구구식으로 고쳐 놓았다.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돌아보니 나머지 돼지들도 물속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잘된 일인가?)
돼지들의 잦은 ‘공격’으로 약해진 파이프. 돼지들이 파이프 뒤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나무 판자를 세워뒀다.
처음 설치할 때 물꼭지. 콘크리트에 튼튼하게 박고, 용접을 했건만, 돼지들의 장난에 견디지 못했다.
미뤄둔 문제 터뜨린 폭염 다른 돈방의 파이프들도 썩 멀쩡하진 않다. 정육점을 다 짓고 나면 축사의 수도를 재정비할 생각이다. 일단은 나무판자로 파이프 뒤를 채워놓아 다시 들어 올리지 못하게 막았다. 파이프도 짧게 연결해 쉽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료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흐려진 판단력’ 때문인 것 같다. 폭염에 아무리 잘 대비하고 부지런히 움직여도, 뇌가 한 박자씩 늦게 따라오는 기분이다. 게다가 정육점을 짓느라 축사에만 신경을 쏟을 수 없으니 더 그렇다. 무더위가 안 힘든 때가 있었나 싶지만, 이번 여름은 버퍼링 걸린 컴퓨터처럼 버겁게 지나간다. 글·사진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