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가 진행한 서울 시내 야생동물 전시시설 실태조사에서 동물들은 여전히 열악한 동물복지와 사육환경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자해 행동인 깃털 뽑기 흔적이 남아있는 홍금강 앵무. 어웨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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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서울 도봉구의 체험동물원에서 만난 일본 원숭이 ‘복돌이’는 갇힌 것이 불만인 것 같았다. 전시실의 유리벽을 향해 위협적으로 돌진하거나 사육장 안 장난감을 거칠게 밀치며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또 다른 시설의 알파카와 양은 공개되지 않은 전시실에 사육되며 물도 사료도 없이 방치돼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앵무새는 스스로 털을 뽑거나 사람을 공격했고, 세균성 질병으로 탈모를 겪고 있었다. 심지어 생후 2~3주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고양이를 환기가 전혀 되지 않은 좁은 유리장에 전시하는 시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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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진 동물복지 인식? 현재 동물들은…
야생동물 전시체험시설의 열악한 동물복지와 부적절한 사육,
인수공통전염병 감염은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환경부는 ‘제1차 동물원수족관 관리 종합계획’에 동물원 외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포함시켰으며, 올해 7월 국회에서도 기존 동물원·수족관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이런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은 강화하려는 추세다.
지난 8월21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한 야생동물카페의 알파카와 양. 전시실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 사육 중인 이들의 우리에는 물도 먹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웨어 제공
현재 동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는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서울 시내 19곳의 야생동물 전시시설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울 내 야생동물 전시시설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후원으로 진행된 것으로 어웨어는 실제로 서울 시민 10여 명을 조사원으로 모집해 함께 현장조사를 벌였다. 애니멀피플도 8~9월 조사원으로 참가해 1곳의 동물원과 2곳의 야생동물카페를 방문했다.
첫 조사지인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카페는 예상보다 더 열악했다. 8월21일 낮 이 업체에 들어서자 심각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전시장 곳곳에는 공사 자재가 놓여있었고, 허물어진 벽은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관람객이 들어서자 너댓 마리의 개들이 우르르 물려나왔지만 관리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손바닥만 한 어린 새끼 고양이들이 성묘 십여 마리와 함께 합사되어 있었고, 일부 개체들은 환기가 되지 않는 유리 진열장에서 사육하고 있었다.
이곳은 사육환경도 열악했지만 무엇보다 동물관리 상태가 형편없었다. 이들은 상가 건물 2층에 15~6평 정도의 공간에서 모두 12종 45마리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주로 개와 고양이, 파충류 등이었다.
세 곳의 유리방에는 고양이, 라쿤, 미어캣 등이 전시돼 있었는데 직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관람객이 언제든 마음껏 동물을 만지고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실 모두 이중문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미어캣 방 앞에는 ‘직접 문을 여는 건 위험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동물의 쉽사리 탈출이 가능한 구조였다.
고양이와 파충류는 특히 건강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여러 마리의 성묘와 함께 합사되어 있는 새끼 고양이는 손꼽이 잔뜩 끼어서 제대로 걸음을 못 옮기고 있었고, 뱀은 자신의 몸 길이보다도 좁은 좁은 유리진열장에 사육되고 있었는데 몸 곳곳이 부분탈피가 일어난 상태였다. 라쿤은 쉴새없이 유리문 앞을 맴돌며 심각한 정형행동(격리 사육되는 동물들이 같은 자리를 왕복하는 것)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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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어린이 접촉, 전염병 위험”
정식 동물원으로 등록된 곳은 형편이 조금 낫지 않을까. 9월5일 어웨어 이형주 대표와 서울시 도봉구의 한 체험동물원을 찾았다. 일요일 오후 전시장에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서울시 도봉구의 한 체험동물원에서 어린 일본원숭이가 먹이주기 체험에 동원되고 있다.
일본 원숭이는 먹이주기 체험뿐 아니라 유리문의 문틀을 기어 오르는 아찔한 묘기도 선보였다. 소형 쥐를 어깨나 머리 위에 올리는 체험도 진행 중이었다.
전시장이 상가 건물 지하에 위치한 탓에 동물들은 24시간 자연광을 받을 수 없는 구조였고, 관람객들의 소음으로 실내는 소리가 울려 더욱 시끄러운 상태였다. “90데시벨이 넘네요.” 이 대표의 소음 측정기는 90~100데시벨을 오가고 있었다. 90데시벨의 소음은 고함 소리, 트럭이 지나며 내는 소리와 맞먹는다.
이곳은 앞서 방문한 야생동물카페보다는 청결하고 관리도 잘된 편이었다. 이 대표도 “냄새가 심하지 않고 바닥의 톱밥이 깨끗한 것을 보니 자주 갈아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관람객과 동물의 접촉은 수시로 이뤄졌다. 전시장 중간에 쳐진 울타리에는 토끼 몇 마리가 풀어져 있었고, 어린이들이 이곳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먹이체험을 위해 산 당근, 채소 등을 먹이고 있었다.
아예 사육사가 소형 쥐를 데리고 와 어깨나 머리 위에 올려주는 체험을 권하기도 했다. 어린 일본원숭이는 먹이주기 체험에 동원되며 수차례 관람객의 손과 접촉이 일어났다. 이 대표는 “먹이를 받아먹는 과정에서 관람객과 동물의 비말, 타액이 서로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관리가 이뤄지는 시설의 경우에도 동물들의 건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지능이 높고 활동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라쿤은 전시실 안에서 무기력하게 눈을 뜬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내실이 없어 서로의 몸에 머리를 파묻은 채 웅크리고 있는 프레리독의 등은 털이 몽땅 빠져 만질만질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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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과 사고…야생동물 전시 규제해야
조사내용을 종합한 어웨어에 따르면, 이 시설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안전과 위생관리였다. 19개 업체 중 18개 업체는 동물 사육공간과 관람객 동선이 겹쳤으며 사육공간이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관람객이 손만 뻗으면 동물을 만질 수 있는 구조였다.
서울 도봉구의 체험동물원의 라쿤이 전시실 안 구조물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이러다 보니 동물 탈출 사고는 물론, 관람객이 동물에게 다치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조사기간 동안 야생동물카페를 방문했던 조사원은 라쿤에게 피가 날 정도로 물리는 관람객의 모습과, 사육공간에서 탈출한 미어캣을 목격했다.
또 제한된 공간에서 많은 종과 개체수를 전시하려다 보니 밀집 사육도 흔하게 관찰됐다. 한 앵무새카페에서는 홍금강앵무가 스트레스성 자해 행동으로 인해 깃털이 듬성듬성 뽑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이번 조사 대상시설을 포함한 국내 야생동물 전시시설은 동물복지 평가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곳이 다수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동물원 외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야생생물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