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대학에서 사용한 실험동물은 115만 마리였다. 국내 보건의료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모임 ‘매듭’은 최근 대학 내 동물실험에 대한 사례를 조사해 발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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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에서
실험실에서 사라진 동물은 414만 마리다.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은 기업(214만 마리)이었고, 그 뒤를 잇는 곳은 한해 115만 마리를 사용한 대학교였다. 대학에서 사용된 동물은 국공립기관(50만 마리)이나 의료기관(33만 마리)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연구의 목적이 아닌 교육이나 훈련에 사용된 동물도 3만 5000여 마리에 달했다. 대학에서는 어떤 실험·실습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이토록 많은 동물들이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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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간 뛰던 쥐들이 살기를 포기했다”
지난 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대학 내 동물실험 사례를 조사한 두 명의 활동가를 만났다. 활동가 ‘진’은 국내 약학대, ‘거니’는 의대에 재학 중이다.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보건의료학생모임 ‘매듭’은 국내 의대, 약대, 간호대, 한의대 등에 재학하며 노동자의 건강권, 기후위기 등을 고민하고 알리는 대학생 조직이다.
매듭의 조사에 따르면, 동물을 이용한 실험실습은 생물학을 배우는 이공계열 학부에서 일반적으로 실행되고 있었다. 동물권단체 어나니머스 오브 보이스리스(AV) 제공
매듭은 지난 8월부터 학부과정에서 이뤄지는 동물실험·실습과정에 참가한 학생들의 사례와 동물실험에 대한 의견 등을 조사했다. 다소 충격적인 사례들이 지난 1일 녹색법률센터가 주최한 ‘대학 내 교육목적 동물실험의 현황과 대안모색’ 토론회를 통해 발표됐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동물을 이용한 실험·실습은 생물학을 배우는 수의대, 생명공학, 치대, 의대, 약학대, 한의대에서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실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불가피하게 수강해야 하는 필수과목에서 동물들은 진통제의 효과를 관찰하기 위해, 우울증 약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경동맥의 맥박 수를 보기 위해 해부되고, 수조에 던져지고,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졌다.
진과 거니는 동물실험에 참가했던 당사자로서 그들의 경험부터 공유했다. 이들이 불가피하게 참가해야 했던 동물실험·실습은 최소 3회였다. 진이 기억에 남는 실험으로 꼽은 것은 진통제의 효과를 관찰하기 위해 쥐들을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올리고 뛰어오르는 횟수를 기록한 것이다. 6마리의 쥐가 5~6개 조에 배당됐다. 대조군 1마리는 남기고, 진통제를 투여받은 쥐 5마리는 철판 위에 올려졌다.
“철판이 달궈지면서 점점 뜨거워지잖아요. 쥐들이 펄쩍펄쩍 뛰어오르기 시작해요. 상자가 과열되지 않게 뚜껑을 살짝 열어놓는데 쥐들이 틈을 빠져나오면 다시 집어넣어야 했어요. 20분간 쥐들이 쉼없이 뛰어오르는데, 어느 순간 다리 힘이 빠지는 게 보였어요. 살 길 포기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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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실험, 관성적으로 되풀이
상자에 담겨 목만 내놓은 토끼에게 주사를 해야 했던 거니도 동물실험은 충격적인 경험으로 남아있다. 거니와 같은 토끼 실험에 참가했던 사례에서 동물은 마치 생명이 아닌 ‘시약’처럼 쓰여지고 있었다.
“실험동물을 다뤄본 적 없는 학부생들이 동물을 핸들링 하다보니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동물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죽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실험 중 토끼가 죽었고, 이후 대수롭지 않게 다른 토끼로 대체됐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1일 녹색법률센터에서 주최한 ‘대학 내 교육목적 동물실험의 현황과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표와 토론을 하고 있는 활동가 진(왼쪽)와 거니. 매듭 제공
이들은 이런 실험 실습이 불필요함을 넘어 부당하다고 했다. 이들이 조사한 학생사례에서 실험들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나 연구를 위해 실행되기보다는 관행적으로 시행됐고, 동물의 고통이나 개체 수를 줄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진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은 점은 이 실험들이 모두 검증이 끝난 약효나 사실을 관찰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진통제를 투여 받으면 점프 횟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잖아요. 이런 사실을 관찰하기 위해서 수백 마리의 쥐들이 목숨을 잃는 거죠.” 게다가 ‘초보’인 학부생들의 실험은 종종 실패했기 때문에 조교가 제공하는 데이터나 영상에 근거해 보고서가 작성됐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대면 실험은 제한됐고, 지난 한 해 많은 과목의 실험이 영상으로 대체했다. 거니는 “덕분에 실제로 죽는 동물의 수가 줄어들었다. 코로나의 유일한 순기능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영상으로 공부할 수 있다면 ‘의미없는 학살’을 계속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교육적 효과나 목적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진과 거니는 이들 실험이 모두 체험 위주로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한 번 수업에서 1시간 정도 실험을 하는데 이것이 과연 대학원 진학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요?” 매듭의 조사 사례에서 약대를 졸업한 한 참가자는 대학원 진학이나 제약회사 취업에 ‘동물실험은 배우거나, 배우지 않거나 전혀 차이가 없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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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게 아니라 불합리하다
진과 거니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동물실험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괴로움보다는 동물의 고통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연히 이들이 공유한 사례에서 학생들은 “화장실에 도망가거나” “실험도구가 고장났으면”하고 바랐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동물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진학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대학 내 동물실험실습이 불필요함을 넘어 부당하다고” 했다. 1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마친 진, 거니 활동가.
이들이 토론회에서 발표한 ‘대학 내 동물 실험 실습에 대한 당사자의 문제의식과 경험조사’ 보고서는 동물실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동물실험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불쌍하다가 아닌 불합리하다였다.’ 진은 우리사회와 대학이 ‘왜 동물실험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 얕고 게으르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늘 더 좋은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나은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동물실험에 대해서는 그런 노력조차 안해본 게 아닌지. 이제라도 대학 내 동물실험에 대해 더 많이 말해졌으면 좋겠어요.”
매듭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꼽은 것은 전국 대학 내 동물실험의 구체적인 실태조사였다. 동물실험의 당사자이자 학생으로서 ‘대체실험’이라는 교육 선택권 보장을 주장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 또한 고민하고 있다. 내년 1월 중에는 동물권단체와의 간담회를 통해 학내 동물실험의 실태를 계속 알릴 계획이다.
글 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