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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도, 당근 텃밭도 손길만큼 행복이 자라네

등록 2021-12-29 14:37수정 2021-12-30 09:03

[애니멀피플] 히끄 아부지의 제주 통신
④ 오조리의 겨울, 당근농사가 준 가르침
올해 마지막 일정이었던 당근 수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올해 마지막 일정이었던 당근 수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얼마 전 책 원고와 추천사 청탁을 거절했다. 12월은 히끄네 텃밭 유기농 당근 수확에 집중하고 나의 1인 가족 히끄와 함께 여유로운 연말을 보내고 싶었다. 제안 받은 책이 공저라서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당근 농사는 오롯이 혼자 하는 작업이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당근을 모두 수확했다.

작년에는 비상품인 ‘파치’가 많아서 지인과 친구들에게 나눔을 많이 했는데 올해는 파치가 별로 없었다. 이웃과 나눠 먹을 당근 스프 정도만 끓였다. 올해 마지막 일정이었던 당근 농사의 결실이 좋아서 기뻤다. 작년보다 상품성은 물론이고 당도가 높아서 내년에 반려동물 식품브랜드 ‘조공’를 통해 판매될 ‘히끄네 텃밭 스틱’이 벌써 기대된다.

올해 당근은 작년보다 상품성은 물론이고 당도가 높아 내년에 나올 히끄네 텃밭 스틱이 기대된다.
올해 당근은 작년보다 상품성은 물론이고 당도가 높아 내년에 나올 히끄네 텃밭 스틱이 기대된다.

당근이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예상을 못 했다. 올해 7월 당근을 파종한 뒤 두 달 가까이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이다. 무섭게 내리는 비 탓에 직접 나가보지는 못하고, 외출했을 때 히끄가 잘 지내나 가정용 홈캠으로 확인하듯 밭쪽 시시티브이(CCTV)로 지켜보는 날이 많았다. 당근밭이 침수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당근밭은 침수되지 않았지만 잦은 장마로 당근 잎이 웃자랐다. 뿌리로 가야 할 영양분이 앞으로 간 것이다. 원래 수확할 무렵에 잎이 쳐져야 하는데 아직 때가 아닌데도 잎이 무거워져서 하나둘 쳐지는 게 보였다. 친환경 자재 판매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고 그에 맞는 처방 시비(작물의 상태에 맞는 유기농 비료)를 꾸준하게 방제하니 쳐졌던 잎이 올라갔다.

당근 농사 2년 차, 작년과 또 환경이 달라서 이렇게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밭일할 때 민박 손님이 조심스레 물은 적이 있다. “옛날에 어르신들 말씀이 농사는 씨만 뿌리면 땅이 알아서 키워준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히끄가 편하게 지내는 보면 나도 덩달아 안정감이 느껴진다.
히끄가 편하게 지내는 보면 나도 덩달아 안정감이 느껴진다.

농사의 매력은 작은 씨가 큰 열매가 되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이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수확량은 달라진다. 하늘과 땅이 하는 일이라고 손 놓고 있으면 딱 그에 맞는 수확량만 얻게 된다. 남 탓도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폭우가 오기 전엔 고랑을 깊게 파놓고 당근을 보호하기 위해 흙을 덮어줬다. 엄청난 폭우와 태풍의 바람에 이 일이 헛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당하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고 당하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손길을 느끼고 발자국을 들으며 자란다. 적절한 시기에 땅에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으면서 잘 보살펴주는 게 농사의 기본이다. 제때 해야 할 일이 많으며 기본에 충실해야 좋은 결실을 얻는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해마다 배우고 느끼는 게 있다. 올해는 ‘기본만 해도 먹고 산다’를 배웠다.

기본만 잘 지키면 좋은 결과를 얻는 건 꼭 농사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가르침은 다른 일을 할 때도 적용됐다. 일뿐 아니라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반려인으로 기본에 충실하게 히끄를 돌보는 것 또한 나의 역할 중 중요한 부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양이로 만들어주겠다고 6년 전에 히끄와 약속했다. 동네고양이 시절 히끄(왼쪽)와 최근 모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양이로 만들어주겠다고 6년 전에 히끄와 약속했다. 동네고양이 시절 히끄(왼쪽)와 최근 모습.

올해는 여러모로 좋은 한 해였는데 그로 인한 부담과 기대감 탓인지 매너리즘에 잠깐 빠졌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할 일을 생각하면 몸이 무거워져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히끄 아침을 제 시간에 챙겨야 하고 화장실을 바로 치워야 하니까 침대에서 벗어나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 있다. 6년 전 히끄와 함께 살게 됐을 때 나만이 히끄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물 친구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여전히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내가 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히끄의 반려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 아부지·<히끄네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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