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7일 10년 만에 동물보호법 전부개정법률을 공포했다.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뒤인 2023년 4월27일 시행되고, 일부 제도는 2년 뒤부터 시행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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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이 26일 공포됐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7장 55개 조로 구성돼 있던 조문이 8장 101개 조로 확대되고, 신설되는 제도도 여럿 담고 있다. 1991년 법이 만들어진 뒤 31년만에 대대적으로 법률이 정비된 것으로 개정안 마련에 참가했던 국회의원연구단체 ‘동물복지국회포럼’은 이번 개정안을 “동물복지 향상 종합판”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공포에 앞서 소개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소유자의 사육·관리 또는 보호의무를 위반해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학대로 명시 △민간동물보호시설 신고제 도입 △사육 포기 동물 지자체 인수제도 마련 △동물실험시행기관에 실험동물의 건강을 점검하는 전임수의사 배치 △동물수입업·동물판매업·장묘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는 것 등이었다. 개정법률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2023년 4월27일부터 시행되고, 일부 제도는 2년 뒤인 2024년 4월27일부터 시행된다.
그동안 동물보호법은 국민들의 향상된 동물보호 인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동물학대 범죄를 제대로 예방·처벌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과연 이번 전부개정안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을까. 주요 이슈가 되어왔던 동물 문제들을 5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톺아봤다.
① 동물학대 근절, 재발 방지는 여전히 먼 길
동물보호법 개정 소식에서 아마도 국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내용은 동물학대 예방과 재발방지일 것이다.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제2의 동물학대 n번방’ 사건(동탄 길고양이 학대, 포항 폐양어장 학대 사건 등)을 접한 국민들은 학대자에 대한 엄벌과 실질적인 재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 동물학대 금지에 대한 조문(제10조)과 형벌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고양이 40여 마리를 학대한 동탄 길고양이 학대 사건 가해자의 에스엔에스 대화 장면.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8일 논평에서 이번 전부개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학대 관련 조문들이라고 평가했다. 단체는 “동물자유연대는 앞서 발간한 ‘동물학대 판례평석’을 통해 동물학대 금지 행위에 대한 열거주의를 문제로 지적하고, 학대 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해 개별 사안에 대해 법 적용을 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이 이전에 시행규칙에 있던 사항들을 본법으로 옮겨 학대로 규정했을 뿐 포괄적인 법 적용이 가능한 내용적 보완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단체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던 ‘학대자의 사육금지처분’도 끝내 반영되지 못했다. 개정 전 동물보호법은 학대자가 동물학대로 처벌을 받은 뒤에도 아무런 재제없이 동물을 다시 키우고, 심지어 피학대 동물의 반환을 요청하면 이를 막을 방안이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사육금지처분을 신설해 피학대 동물을 학대자로부터 분리하는 방안을 담았던 것이다. 하지만 유죄 판결자에게 사육금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고, 기본권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마지막에 제외됐다.
카라는 “‘군산 푸들 학대사건’ 가해자는 전국에서 푸들 21마리를 입양해 13마리를 학대 살해했다. 학대자가 수차례 동물을 입양했고, 향후에도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막지 못하게 됐다”며 “학대자의 동물 소유권 제한 및 사육금지처분은 조속한 시일 내에 후속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동물 반려인(소유자)의 동물 사육·관리 의무를 명시하고, 이를 어길 시에 동물학대로 처벌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기존 법이 단순히 ‘소유자는 동물을 유기해서는 안된다’고 정했던 것에 반해, 개정안은 ‘최소한의 사육공간 및 먹이 제공 등 소유자의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상해나 질병을 유발’(제10조 4항의2)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제10조 4항의3) 하면 동물학대로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소유자는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유공간 및 먹이제공 등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하거나 이를 위반해 죽음에 이르게 할 경우 동물학대로 처벌받게 된다.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제공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소유자의 사육관리 의무를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복지정책과 한민 사무관은 “기존에도 고통이나 상해를 입히면 학대로 봤지만 소유자가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아 초래된 죽음에 대해서는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개정을 통해 의무 위반 행위의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당개 중성화 사업 등 방치견 문제 해결에 힘써온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그동안 방치학대 근절이 안됐던 것은 동물이 상해, 질병을 입기 전 소유자에게 사육·관리 의무를 강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벌도 중요하겠지만 동물의 실질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동물의 적정한 사육과 관리를 정한 제9조의 권고사항들을 의무사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성화 미비, 뜬장 사육, 1미터 목줄 등 열악한 사육환경의 빠른 개선을 위해서는 학대 사후 처벌하는 것보다 적합한 기준을 제시하고 의무를 강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주장이다.
그렇다면 동물의 상해와 질병, 죽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농장을 처벌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이 또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유자의 사육·관리 의무를 정한 각 항목은 그 대상을 반려동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는 이번 개정안에 개식용 금지 관련 조항들이 빠진 것은 치명적 허점이라고 주장했다. 카라는 지난 14일 논평에서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의 지위를 반려견, 식용견으로 구분해 학대 사육과 도살 유통조차 막지 못하는 부끄러운 결과로 정리되어야 마땅하다”며 “이번 개정안이 명시한 소유주의 적정한 사육과 관리의무는 동물복지의 기본이지만 개농장은 조악한 뜬장 사육과 음식물쓰레기를 급여해도 제재할 벌칙조항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카라는 이번 개정안에 개식용 금지 관련 조항들이 빠진 것은 치명적 허점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또한 개농장 구조 현장에서 늘 법 해석을 두고 엇박자를 내왔던 지자체의 피학대동물 격리조치 규정도 이번 개정안는 담기지 못했다. 그동안 동물단체들이 불법 개농장을 적발하고 피해 동물들의 격리조치를 요청했을 때,
보호조치의 여부는 지자체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해야 했다. 수의학적 처치가 필요하거나 신체적 고통, 질병이 있다고 판단될 때에만 동물들을 격리조치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법을 더 넓게 해석해 전원 보호 조치를 실행한 지자체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한민 사무관은 “법 개정 과정에서 논의가 됐으나 최종적으로는 반영되지 못했다. 범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법원의 명령에 따라 ‘사육금지가처분’을 내리는 방안이 논의됐었다. 학대자의 사육금지처분, 가처분 내용들은 추후 입법 과제로 계속 가지고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④ 사설보호소 제도화…“80%는 기준 못 맞춰”
개농장에 대한 방관과는 달리 유기동물 사설보호소는 앞으로 시설과 운영에 대한 규제가 생기게 됐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민간동물보호시설 신고제를 도입해 일정 규모 이상의 피학대동물 보호 시설을 운영하려면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고, 관련 시설 및 운영기준을 준수하도록 했다.(제37조) 그동안 애니멀호딩, 지역 주민과의 갈등 등 부작용이 있었던 일부 사설보호소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지원하고 감독한다는 취지다.
사설보호소 실태 파악이 제대로 안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동물보호단체 행강 박운선 대표는 “국내 100여 개 사설보호소 가운데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고 운영하는 곳은 드물다. 임대된 부지 위에 60~70대 보호소장이 혼자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신고제의 기준을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고 했다. 민간동물보호시설 신고제의 시행은 지금으로부터 1년 뒤인 2023년 4월27일부터다. 그는 그 기한까지 현재 운영 중인 사설보호소의 80%는 신고제 기준을 맞추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다.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는 문구로 위탁동물 사업을 홍보 중인 한 신종 펫숍 광고. 인터넷 갈무리.
박 대표는 또한 “큰 틀에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영리 목적으로 개들을 대량 사육하는 개농장,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며 거액의 보호금을 요구하는 신종 펫숍 등의 규제안은 빠지고 사설보호소만 신고제를 하는 것은 제도 개선의 선후가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이 기존 등록제였던 동물수입업·동물판매업·동물장묘업을 허가제로 전환하고 무허가·무등록 영업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소’ 명칭을 쓰며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영업을 벌여온 신종펫숍에 대한 제재가 빠진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동물자유연대는 “민간동물보호시설은 신고의무화 하고 위반사항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게 한 반면, 신종펫숍은 보호소 명칭 사용 금지나 영업 규제 등 어떠한 제재도 없어 형평성에 어긋난다. 영업자에 대해서는 보호소 명칭 사용 금지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 신종펫숍 외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또한 새롭게 시행되는 사육포기 동물 인수제(제 44조)의 경우, 장기 입원이나 군 복무 등으로 불가피하게 소유자가 사육을 포기한 동물을 지자체에서 인수한다는 기본적인 내용 외에는 보호 방안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에 따르면 지자체의 동물보호센터가 보호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기엔 현재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도 동물수용 능력이 한계치인 곳이 많아 일정 기간 공고 뒤 안락사를 진행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육포기 동물 인수제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보호방안 마련뿐 아니라
‘안락사 없는 유기동물보호소’라는 광고로 편법 영업을 해온 신종펫숍에 대한 규제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물복지국회포럼, 동물단체들은 △맹견사육허가제, 기질평가제 △동물실험윤리위원회 강화와 전임수의사 제도 △반려동물행동지도사 국가자격제 △동물복지축산 인증 유효기간 3년 갱신제 신설 등을 개정안의 긍정적 성과로 꼽았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