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어느덧 혐오의 대상, 골칫거리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비둘기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혐오의 대상, 골칫거리로 여겨지게 된 것은 꽤 오래된 이야기다. 덩치가 커져 잘 날지 않는 비둘기를 ‘닭둘기’라 부르며 혐오와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유행한 것도 벌써 몇 년이나 된 이야기다.
배변으로 도시 미관을 지저분하게 만든다거나, 차도에 뛰어든다거나, 혹은 눈이 무섭다거나 하는 이유다. 2010년엔 집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규정되면서 혐오는 더 강화됐다. 그러나 비둘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동물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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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비둘기 중 한 마리 ‘둘기’
분위기가 이러하지만 비둘기를 생명으로 아껴주는 사람들도 있다. 나일론 줄에 발가락이 묶여 제대로 걷지 못하던 비둘기 ‘둘기’를 돌봐주던 시민이 그랬다. 그는 1년 전, 둘기가 길고양이 밥자리에 찾아온 것을 계기로 비둘기 돌봄을 시작했다고 한다. 흔한 통념과 달리, 비둘기는 ‘멍청한 동물’이 아니었다. 둘기는 동네 어귀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찾아왔다. 그의 돌봄 속에 둘기는 쓰레기봉지를 뜯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지난 8월 카라 활동가들이 ‘둘기’를 돕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한눈에 보아도 다리가 불편한 둘기는 결국 구조돼 더불어숨센터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발가락이었다. 둘기는 점차 줄이 감긴 발가락을 불편해했고, 나중에는 걷기 힘든 수준까지 이르렀다. 제보자는 둘기를 직접 잡아 줄을 풀어주려 했지만 그가 다가가면 바로 날아가 버렸다. 안타까운 시간만 흐르다 결국 그는 카라에 둘기의 포획과 치료를 부탁했다.
그렇게 지난 8월 카라 활동가들이 둘기를 돕기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 둘기가 나타나는 시간에 맞춰 출동하자 둘기를 만날 수 있었다. 구조 현장에서 만난 둘기는 한눈에 보아도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둘기야, 이번에는 날아가면 안돼. 조금만 기다려줘.” 제보자가 둘기에게 다정하게 부탁하는 목소리는 여느 시민이 자신의 반려동물이나 길고양이에게 건네는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활동가는 포획틀을 설치했고, 신속하게 둘기를 구조했다.
둘기는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보호를 받았다. 둘기는 케이지 안에 마련해준 횃대도 잘 썼고, 활동가들이 소독해주는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둘기는 나일론 줄을 해체한 이후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발가락 상처가 아물 때까지 보호를 받았다. 둘기는 케이지 안에 마련해준 횃대도 잘 썼고, 활동가들이 소독해주는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덜렁거리던 발가락은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갔다.
둘기는 안정을 취하며 회복한 후, 원래의 자리에 방사됐다. 제보자가 방사 현장에 함께하며 둘기를 마중했다. 이후 둘기는 다시 자신이 나타나던 시간에 다시 제보자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둘기는 발의 고통 없이 걷고, 날며, 그리고 제보자가 부르면 그 앞에 나타나면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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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비둘기’가 늘어났다
카라 활동가들에게도 ‘아는 비둘기’가 있었다. 갈색에 흰색이 섞인, 호박색 눈을 가진 깨끗한 집비둘기였다. 늘 아침 이른 시간에 더불어숨센터 앞에 나타나서 기웃거리다가 주변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 이 갈색 비둘기의 일상이었다. 처음엔 그 존재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같은 시간 자주 나타나니 눈에 익었고 한참 나중에서야 이곳이 갈색 비둘기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갈색 비둘기도 다리에 줄이 감겨 나타났다. 걷지도, 날지도 못한 채 도보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비둘기를 두고 활동가들은 어째야 할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비둘기는 그새 날아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며칠 뒤 신호등 앞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활동가들은 새를 수습해 조그맣게 장례를 치러줬다.
이름 아침 카라 더불어숨센터 앞에 자주 나타나던 갈색 비둘기는 결국 길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이후 만난 멧비둘기 ‘유조’는 제대로 날지 못해 구조됐다. 하루 정도 케이지에서 보호를 받다가 야생동물구조협회로 보내져 안전히 방사됐다.
어떤 비둘기는 죽음 직전, 도움을 얻어 살기도 했다. 멧비둘기 ‘유조’는 회색에 갈색 털이 섞인 조그맣고 앙증맞은 새였다. 날지 못하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차에 치일 것이 염려되어 구조했다. 유조는 하루 정도 케이지 내에서 계류하며 물을 마시고 밥을 먹다가, 야생동물구조협회에 보내졌다. 야생동물구조협회는 유조를 잘 돌보다 방사했다고 한다.
비둘기들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 기억도 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비둘기는 자꾸 차량 앞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으면서 자꾸 차도로 반복해서 접근했다. 비둘기의 사고를 막기 위해 같이 있던 활동가와 한참 고생을 해야 했다.
“도대체 왜 차에 뛰어드는 걸까요?”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을 잘 못 쓰면 시야가 흐려진다는데, 그런 거 아닐까요? 어디 아픈가봐요.” 비둘기를 잡으러 갈 때마다 비둘기에 대한 토막 상식이 쌓여갔다. 비둘기의 수명이 20년에 달한다는 것과 귀소본능이 뛰어나다는 것, 비둘기의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정부 예산이 거의 없다는 것, 길을 잘 찾기에 전서구(편지를 배달할 수 있도록 훈련된 비둘기)로 쓰이기도 했다는 것. 비둘기는 그냥 괄시 받기엔 억울한 면이 꽤 많은 동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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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동물은 없다
그 외에도 자꾸 차량 앞으로 뛰어드는 비둘기 몇 마리, 제대로 걷지 못하던 몇 마리, 등을 다쳐 털이 다 뽑혀 아파하던 비둘기 등이 카라 활동가들의 손을 거쳐갔다. 죽은 개체도 있었고, 무사히 살아남아 길 위로 돌아간 비둘기도 있었다. 비둘기를 구조하고 돌보던 사람들에게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도, 골칫덩이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생명일 뿐이었다.
멧비둘기 ‘유조’는 구조된 뒤 하루 정도 케이지에서 안정을 취했다. 비둘기를 구조하고 돌보던 사람들에게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도, 골칫덩이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생명일 뿐이었다.
2년 전, 다리에 처둔 방조망에 걸려 죽어가는 집비둘기 여러 마리를 발견하고 시민들이 서울교통공사에 구조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유해야생동물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며 비둘기를 풀어주는 일을 거절했다. 유해야생동물이라고 해서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방치할 수 있다는 법조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결국 비둘기들은 그대로 죽어야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적극적으로 비둘기의 목을 조르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그 죽음에 동참한 셈이다.
도시 비둘기는 살아갈 곳이 거의 없는 동물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어야 하고, 빌딩 숲이 늘어선 도시에선 마땅히 쉴 곳도 없다. 특히 새들은 하루 3-4번 목욕을 해야 하지만 도시에서는 청결을 유지할 만한 장소가 없다. 공원이나 하천, 강가에 비둘기들이 주로 모여 있는 이유다.
비둘기의 수가 줄어들면 사람이나 비둘기의 복지 또한 향상될 거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아직까지는 비둘기 개체 수 조절에 대한 불임모이 급여 등은 연구 단계에 있고 일반적인 정책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10년 집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분류한 것을 끝으로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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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에서 소외되는 생태 약자의 권리
인류가 자연 환경을 파괴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가 변화한 새로운 지질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른다. 인류세는 기후위기의 시대다. 인류세에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더 많이, 더 빨리 다치고 죽는다. 이는 최근 우리 사회에 들이닥치고 있는 여름의 폭우와 태풍이 증언한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구조적인 차별 속에 버텨볼 새 없이 희생된다.
비둘기에 대한 집단 혐오와 그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는 곧 비둘기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게 한다. 위키피디아코먼스
기후위기는 수많은 동식물의 죽음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둘기 혐오와 죽음도 그 맥락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비둘기에 대한 집단 혐오와 그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는 곧 비둘기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생명 윤리가 무시되는 사회에서는 인간동물도 비인간동물처럼 결코 안전하지 않다.
고작 비둘기 한 마리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비둘기 한 마리를 대하는 태도가 곧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비둘기의 목숨이 중한 것을 아는 것이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사람들임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기를 빈다.
글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