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티브이(TV)의 오리지널 드라마 <어쩌다 전원일기>에는 논밭의 초록색으로 꽉 찬 장면이 많다. 화면에서 풋풋한 풀 내음이 나는 것 같다.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가상의 시골 마을 ‘희동리’를 주요 무대로 삼았고, 계절 배경이 여름이라서다. 주인공 한지율(추영우)은 서울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인데, 할아버지의 ‘긴급’ 호출로 희동리의 가축병원을 잠시 맡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 안자영(박수영)은 희동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로, 희동리를 관할하는 파출소에서 일하는 순경이다.
지율과 자영의 로맨스가 큰 줄기를 이루는 <어쩌다 전원일기>에는 악역이나 심각한 갈등 요소가 없다.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볼 수 있는 ‘힐링물’인 셈이다. 시청자에게 아름다운 영상만큼이나 ‘힐링’을 선물하는 건 귀여운 동물 배우들의 활약이다. 특히 자영의 반려견 ‘누룽지’(룽지)는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시청자를 미소 짓게 만든다.
누룽지 역할을 맡은 동물 배우의 본명은 ‘복순이’로, 올해 연기 경력 6년차인 7살 믹스견이다.견성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복순이는, 드라마 곳곳에서 주인공 지율·자영의 감정 연기를 도우며 제 몫을 해낸다.
주인공 한지율(추영우, 왼쪽)과 안자영(박수영) 커플이 누룽지(복순이)와 함께 있는 장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쩌다 전원일기>에는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나오기 때문에,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소·돼지·닭 등 산업동물들도 종종 등장한다. 출연 수요가 많은 개의 경우 동물 배우를 키우는 훈련소나 연기학교가 존재하지만, 산업동물은 따로 섭외를 해야 한다. 제작진은 “(소·돼지 등은) 수의사를 통해 축주(축사 주인)를 소개 받고 동의 하에 섭외, 촬영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수의사 지율의 ‘환자’로 등장하는 동물들이 실제로는 아픔 없이 안전하게 촬영했을까? 올해 초 <한국방송1>(KBS1)의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과정에서 퇴역 경주마 ‘까미’(본명 마리아주)가 학대 받고 사망한 사건이 공론화된 바 있다. 방송 등 미디어에 출연하는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에 20만명이 참여했다. ‘살아있는 동물이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소품 취급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어쩌다 전원일기> 제작진은 동물 촬영과정에 대한 <한겨레> 질문에 “한지율의 직업이 수의사였던 만큼, 동물들이 많이 등장할 것을 염두에 두고 대본 작업 과정에서부터 수의사의 자문을 받아 동물들과 함께 안전하게 촬영하도록 내용들을 조정했다”고 답했다. 동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찍기 전에 수의사 자문을 받아 촬영 환경을 준비하고, 동물 촬영 때 수의사나 훈련사가 입회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전원일기> 대본의 동물 자문은 서울대 수의과대학 채준석·김단일 교수, 에이드동물병원 이창선 수의사가 참여했다. 대본 자문과 별도로, 동물 촬영 현장 자문에는 농협사료 경기지사 최요환, 권환흥·김동우·노준호·조재현·백철승 수의사 등 6명이 이름을 올렸다. 매회 오프닝 장면 다음에 “본 드라마의 동물 출연 장면은 전문 훈련사와 수의사의 현장 자문 아래 촬영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을 노출했다.
제작진은 룽지가 덫에 걸린 장면을 찍기 위해 동물에게 안전한 소품을 특수 제작했다. 프로그램 갈무리
촬영에 들어가기 이전에 “동물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은 동물 배우를 위한 소품 제작에서 빛을 발하기도 했다. 1부에서 누룽지(복순이)가 양계장 주인이 놓은 덫에 걸렸다가 주인공 두 사람에게 구조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주인 없이 들개처럼 지내던 누룽지는, 양계장을 운영하는 양씨 아저씨가 놓은 덫에 다리가 걸려 붙잡혔다. 양씨 아저씨는 자신의 닭 7마리를 몰래 먹은 야생동물을 잡으려고 덫을 놓았던 것. 이 사건을 통해 ‘도시 수의사’로서 지율이 지닌 기존 철학과, 동네사정을 잘 아는 자영의 ‘주민을 위하는 마음’이 서로 부딪쳐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드라마에서 누룽지가 걸린 덫은 창애처럼 생겼다. 실제 창애는 무거운 금속으로 만들어져 동물의 다리를 골절시키는 무서운 덫. 제작진은 “동물 배우에게 실제로 닿는 덫은 실리콘으로 특수 제작한 안전 소품”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장면에서 시청자의 몰입감은 깨지 않으면서 동물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한 조치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이 수의사이기 때문에, 사람 배우의 사실적인 연기를 위해서도 수의사 등 전문가의 현장 자문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권·생명 감수성이 높은 시청자가 늘어난 사회 분위기가 제작현장을 바꾼 것도 사실이다. 제작진은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묻는 <한겨레> 질문에 “드라마를 촬영하는 초반부터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이다. 요즘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높아진 분위기도 제작진 입장에서는 꼭 염두해야 하는 부분이었다”고 답했다.
<어쩌다 전원일기>는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둔 12부작 미드폼(1부당 30분 안팎) 드라마다. 지난 한달 동안 일주일에 3부씩 총 12부가 순차 공개됐으며, 카카오티브이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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