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4일 국회에서는 동물원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동물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쇼·체험을 금지하는 내용의 동물관련 법안들이 의결됐다. 지난해 어웨어의 ‘서울 내 야생동물 전시시설 실태조사’를 통해 방문한 도봉구 한 동물원 시설에서 원숭이가 먹이주기 체험에 이용되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또 동물이 사람에게 무참히 폭행 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해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 전
서울시내 번화가의 한 동물체험카페에서 벌어진 일이다. 킨카주는 개에게 물려 목숨을 잃고 사슴과 거위, 타조는 상처를 입은 뒤 방치돼 사망했다. 충격적이지만 놀랍지 않다. 그동안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코끼리는 쇼를 위해 두 발로 걸었고, 벨루가는 ‘서핑 보드’가 되고, 원숭이는 고드름이 잔뜩 언 사육장에 굶주린 채 남겨져왔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언제까지 흙도 빛도 바람도 없는 공간에 갇혀 눈요기로 살아야 할까.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동물 관련 법안에 따르면, 야생을 빼앗긴 야생동물들의 현실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는 11월24일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안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은 동물원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종별 사육기준을 마련해 동물원의 환경을 점검할 전문검사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동물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쇼도 금지될 예정이다.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한 채식식당에서 만난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이번 법 개정을 정부, 국회, 시민단체, 업계가 한 마음으로 동물원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흔치 않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동물원수족관법은 2016년 제정뒤 6년만의 전면 개정이다. 2020년부터 국회의원 10명이 발의한 12건의 법률안이 통합된 법안인만큼 내용도 방대하고 변경 사항들도 많이 담겼다.
과연 돈벌이, 눈요기로 전락한 동물들의 삶은 나아질 수 있을까. 그간 두 법안의 개정 필요성을 알리고, 법안 마련에 앞장서 온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에게 무엇이 어떻게 얼마만큼 달라지는지 물었다. 29일 서울 용산구 한 채식식당에서 만난 그는 이번 법 개정을 “정부, 국회, 시민단체, 업계가 한 마음으로 동물원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흔치 않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동물원수족관법은 사실 생긴지 얼마 안된 법이다. 그 사이 전면 개정이 왜 필요했는지 배경이 궁금하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이하 이 대표) “2010년 초반 야생동물카페, 체험동물원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지자체가 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겠다며 구청 앞마당에 사자를 전시하고, 사설 동물원에서 파리채로 바다코끼리를 쥐어 패던 시절이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비상식이 일반적이었다. 동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늘어난만큼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는 욕구도 컸던 것 같다. 그 시절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바다로 돌아갔지만 같은 시기 2011~2013년엔 수족관에 벨루가가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2020년 6월 경남 거제씨월드에서 돌고래, 벨루가 등을 타고 만지는 체험이 진행되어 온 사실이 알려지며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누리집 갈무리.
당시 장하나 전 의원이 동물원수족관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했고 19대 국회에 제정안을 발의했다. 한정애 의원도 더불어 야생생물법에 동물원에 대한 정의를 규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그렇게 2016년 제정되고 2017년부터 시행됐다.
발의안은 진보적이고 선언적인 법안이었지만, 법안 통과 과정에서 동물복지에 관한 내용이 많이 빠지게 됐다. 결국 제정안엔 정부의 의무가 포함되지 못했다. 관리, 감독 체계가 없었고 문제가 생기면 지자체가 나가서 과태료를 물리는 수준이었는데 거의가 사후약방문이었다.”
―법이 제정되었으니 무법천지는 끝난 것 아니었나?
이 대표 “그게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2017년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동물전시업’이 신설되면서 야생동물카페가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면 그런 동물 카페들은 동물원수족관법이 정한 동물원(야생동물 또는 가축을 총 10종 또는 50개체 이상 보유·전시하는 시설)에 해당하지 않았고, 야생생물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기준도 없이 야생동물들이 사육되며 끔찍한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코아티가 다른 동물에게 얼굴을 뜯어먹히고, 동물들은
인수공통감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최근 서울시내 한 동물체험카페에서 업주가 개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병든 사슴, 거위, 타조를 방치해 죽게 한 사건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2018년 정부가 이런 시설들을 관리할 5개년 계획을 세우도록 법이 한 차례 개정됐고, 문재인 정부도 ‘야생동물 관리 체계 강화’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보통 이런 법 개정은 시민단체가 요구하고, 정부가 끌려오기 마련인데 이번엔 정부가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해야 하니까 상황이 달랐다. 이번 개정은 사실 환경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드물게 정부, 국회, 시민단체, 업계 모두가 동물원 동물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으로 움직인 사례라 특별하다.”
―이번 법 개정 이후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지나?
이 대표 “동물원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뀐다는 점이다. 이제 야생동물을 전시하려면 일정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저는 이것이 ‘이제 동물을 막 대하면 안된다’는 확실하고 명확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허가만 내주는 것이 아니라 검사관 제도를 도입해서 사육환경을 직접 가서 평가하게 된다.
동물 관련법에 검사관 제도가 생긴 것은 우리나라에선 처음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동물원에게는 이러한 일상적 실태조사가 부담이 될 거다. 허가 받은 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벌칙도 기존보다 3배로 높아진 것이다.
제주의 동물쇼체험시설에서 코끼리들이 고난이도의 쇼를 선보이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현행 동물보호법에 비하면 굉장히 강한 법이 될 것 같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학대를 질병, 상해가 발생해야지만 처벌할 수 있지만 이번 개정에서는 금지행위(동물원수족관법 제15조)에 올라타기, 만지기, 먹이주기 등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 공포, 스트레스를 가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그간 육체적 직접적 행위만 학대로 봤던 것에서 나아가 동물의 정신적 복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동물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 감응력을 인정한 건데 동물복지 기준 전체로 놓고 보면 굉장히 큰 승리라고 할 수 있다. ”
―현재 하위법령을 논의 중인 걸로 안다. 쟁점이 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
이 대표 “어떤 환경과 행동이 동물에게 고통, 공포, 스트레스가 될 것인지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해서 정하게 되어 있다. 정부, 법률연구가, 동물원 전문가, 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서 어떤 내용을 금지할 것인지 논의를 진행 중이다. 동물체험이 관건이다. 가령 지금처럼 유리벽에 구멍을 뚫고 먹이를 주는 것이나 동물에 올라타는 것, 사육사가 없는 상태에서 만지게 하는 행위들은 앞으로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제 야생동물카페, 체험·이동동물원은 아예 없어지는 건가?
이 대표 “일단 보유동물을 다른 시설로 이동해서 전시하는 이동전시는 전면 금지된다. 종별 사육기준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야외 방사장이 필수인 사자, 호랑이, 라쿤 등은 실내에서 전시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만큼 실내동물원이 많은 곳도 드물다. 이 문제도 조금은 줄어들 걸로 본다.
현재 등록된 동물원, 수족관은 일단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되 법 시행일로부터 5년 안에 개정에 따른 허가기준을 갖추도록 했다. 야생동물카페, 체험동물원 등 동물원 외 시설도 금지 행위에 대해서는 바로 적용 받도록 야생생물법을 통해 보완됐다. 그러니까 이제 코끼리에게 1시간 넘게 고난이도 쇼를 시키는 시설이나 사자, 호랑이를 볕도 안드는 좁은 실내에 전시하는 동물원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지난 5월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어웨어 이형주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이후 더 나아가야 할 점이 있다면.
이 대표 “이번 개정으로 동물원의 기능이 굉장히 달라질 거라고 본다. 많은 시민들이 전시위주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단순한 동물 전시는 줄어드는 게 옳다. 대신 몰수된 사육곰이나 폐업으로 갈 곳이 없어진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굉장히 진일보한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현실에 타협한 부분들도 많다. 문제는 관리 규정만 만든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다. 하위법령에서 정하게 될 종별 서식환경도 현실적 수준에서 맞춰지게 될 것이다. 남은 숙제는 이제 그 기본적인 기준을 어떻게 더 상향하고 제대로 운영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