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시선으로 이기적이고 부조리한 인간 세상을 그린 영화 ‘당나귀 이오(EO)’가 10월3일 개봉된다. 영화사 찬란 제공
“네 모든 꿈이 이뤄지길 바라. 행복해야 해.”
당나귀 ‘이오’는 생일에 당근 케이크를 선물 받는다. 여느 다른 생명처럼 탄생을 축하받고 행복을 기원하지만 이후 이오 앞에 펼쳐진 여정은 그의 긴 울음소리처럼 서글프기만 하다.
동물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그려낸 영화 ‘당나귀 이오(EO)’가 10월3일 개봉한다. 영화는 서커스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던 당나귀 이오가 동물단체의 개입으로 구조된 뒤 경주마 사육장, 당나귀 체험농장, 축구장, 모피 농장, 몰락한 저택 등을 방랑하며 겪게 되는 갖가지 일들을 그리고 있다. 여섯 마리의 당나귀가 번갈아 열연한 영화는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올해 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당나귀 ‘이오’는 서커스단에서 구조되며 파트너인 카산드라와 헤어진다. 유일하게 교감했던 인간과 헤어지며 그의 앞에는 잔혹한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영화사 찬란 제공
영화는 서커스단의 이오가 파트너인 ‘카산드라’와 쇼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비록 사람들 앞에서 당나귀로서는 부자연스러운 쇼에 동원되고 있지만, 카산드라만큼은 이오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교감한다.
카산드라와의 일상은 이오가 경주마 사육장으로 옮겨지며 무너진다. 동물 서커스가 금지되면서 낯선 곳으로 보내진 이오, 그러나 무거운 수레를 끌며 다른 동물보다 천대받는 생활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유일하게 자신을 친구로 대했던 카산드라와 헤어지며 이오는 시련을 겪게 된다.
‘당나귀 이오’는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동물 착취를 당나귀의 시선으로 신랄하게 꼬집는다. 서커스 동물보다 더 나쁜 상황이 이오에게 있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서커스단을 나와 이오가 겪게 되는 상황은 동물을 물건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잔혹한 세상이다. 경주마가 극진한 대접을 받을 때 당나귀는 수레를 끌어야 하는 차별적인 세상이고, 짐꾼이 아니면 동물 매개치료 등으로 인간에게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다.
영화는 폴란드에서부터 이탈리아까지 이오의 긴 여정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사 찬란 제공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늑대는 숲에서 사살되고, 여우는 모피를 위해 뜬장에서 죽어간다. 물고기들은 ‘관상용’으로 어항에 갇히고, 당나귀는 축구팀의 마스코트가 되어 원치도 않는 추앙을 받거나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결국 도살장의 긴 죽음의 행렬에 동참하게 된다.
죽을 만큼 다친 이오가 로봇 개의 환상을 보는 장면은, 함부로 걷어차여도 항의할 수 없는 동물의 처지를 비유한다.
당나귀는 ‘가축계의 강아지’라 불릴 정도로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다. 기원전 4000년 전 이집트에서부터 인간의 농경과 노동을 도왔다. 여러 작품에서 어리석고 고집이 센 동물로 그려지지만, 오랜 시간 인간과 지냈다는 건 그만큼 영리하고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인간을 지켜보며 교감한 당나귀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짙은 회색 털 사이에 박힌 당나귀의 초연한 두 눈은 이기적이고 부조리한 인간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여섯 마리의 이오가 보여주는 이 한결같은 눈빛은 이오의 ‘마지막 선택’으로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당나귀 이오(EO) 포스터. 영화사 찬란 제공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