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사진가 김하연(47)씨. 길고양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하연 제공
사람이 떠난 서울시 종로구 세운상가, 길고양이 사진가 ‘찰카기’ 김하연(47)씨는 고인 물에 코를 박은 채 도로 바닥에 쓰러진 고양이를 발견했다. 상태를 확인하러 다가가자, 고양이는 머리를 들었다. 전날 비가 온 탓에 온몸이 젖어 있었다. 물을 찾아 겨우 왔지만, 탈수로 쓰러져버린 듯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을 찾아갔지만, 점성이 높아진 피로 주삿바늘을 넣기조차 힘들었다. 1시간가량 수액을 맞혔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마비된 신장 기능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수의사는 담담하게 안락사를 권했다.
“내가 너는 지켜주지 못했지만, 네 사진만큼은 끝까지 가지고 다니며 많은 사람이 기억하게 만들게.”
김씨는 결국 안락사를 선택했다.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그 고양이는 그렇게 그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혔다. 지금까지 9년 동안 길고양이 600여 마리의 사체를 수습한 김 씨가 가장 잊지 못하는 2009년 7월의 죽음이다.
‘길고양이 찍사 겸 집사’
김씨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30년째 신문 배달을 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시 관악구 봉천지국을 운영하고 있다. 지국장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 3학년부터 신문을 배달했다. 게임 월간지에서 편집장으로 일할 때도 신문은 계속 배달했다. 이제 그는 길고양이 전문 사진가다. 길고양이 중에서도 한국의 길고양이만 11년째 찍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 12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6시간 동안 서울 봉천동 일대에서 신문을 배달하며 사진도 찍고 길고양이 50여 마리의 밥도 준다.
막 해가 떠 푸른 빛이 돌던 지난 7월29일 오전 6시, 김씨를 만나러 찾아간 봉천동 한 고양이 급식소 근처. 그가 곧 올 거란 걸 아는지 검은 점박이 무늬 어미와 새끼 길고양이가 차 밑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신문을 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김씨는 검은 티에 반바지, 모자를 푹 눌러쓴 편한 차림이었다.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 노란 박스엔 카메라와 사료, 닭가슴살, 물통 등 고양이 먹이로 가득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사료를 가득 담은 검은 비닐봉지와 2리터 물통을 들고 고양이 급식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물과 밥을 갈아주고 이제 사진 찍을 일만 남았다. 노란 박스에서 카메라를 꺼내 어미와 새끼가 숨어 있는 차 밑으로 다가가 바닥에 몸을 바짝 붙였다.
새벽부터 한겨레신문을 배달하며 길고양이 밥을 준다. 노란 박스에는 카메라도 담겨 있다. 임세연 객원기자
김하연 사진가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임세연 객원기자
다음 장소는 급식소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한 주차장이다. 12마리 고양이들이 김씨를 마중 나와 있었다. 10마리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김 씨를 반겼고 2마리는 건물 지붕 위에 올라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닭가슴살, 캔 간식 등을 꺼내자 고양이들이 순서를 지켜가며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김씨는 놓치지 않고 지붕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닭가슴살을 찢어 던져주었다. 같이 먹이를 주던 ㄱ씨가 말했다.
“얘가 카이예요, 다 죽어가는 거 살린 애예요. 다른 데서 왔는데 3일째 가질 않고 늘어져 있더라고요. 선생님(김하연 사진가)한테 연락했더니 10분 내로 오셔서 구조해 병원 가서 치료했어요. 석 달 동안 숟가락으로 떠먹여 살아난 애예요. ‘카이!’ 하고 부르면 저기 있다 막 뛰어와요.”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자, 주차장에 있던 12마리 고양이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눈을 맞춘다…내가 보인다
길고양이를 찍을 땐 바닥에 드러눕는다. 그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다. 김씨는 눈을 맞춰야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을 지켜본 다음에야 그들에 대한 글을 쓴다. 김씨는 길고양이들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쓰다 보면 그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사진에 글을 붙이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길고양이 삶에 대한 최소한의 단서를 주고 싶어서 글을 써요. 생명에게 스토리가 붙는 순간 그 생명은 저와 다른 존재가 아니게 돼요. 2년 전에 왕초가 된 ‘길동이’의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살이 빠지고 눈매는 매섭고 볼은 푹 파여 있는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보였어요. 갑자기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글을 쓰다 보니 고양이의 삶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돼 있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길고양이들 얘기도 거기서 시작해요. 고양이의 삶도 우리랑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요.”
죽음의 원인이 ‘사람’이라 기록한다
그의 가방에 음식만 있는 건 아니다. 비닐봉지 2개와 호미도 들어있다. 차에 치이고, 병에 걸리고, 먹지 못해 결국 세운상가의 그 고양이처럼 죽음을 맞이한 고양이들을 묻어주기 위해서다.
“이번 주(7월16~20일)에만 5마리를 보내줬어요.”
송옥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에게 받은 ‘2014~2016년 로드킬 등 동물 사체 수거·처리 실적’을 보면, 2014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사체가 수거·처리된 동물은 총 1만7036마리다. 그중 고양이가 1만3604마리로 80%를 차지했다.
로드킬이 아니라도 길고양이에게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다. 최고기온 33℃를 웃도는 더위, 장마에 고양이의 독립 시기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이 계절을 견디지 못하면 어제까지 김씨에 살을 비비던 고양이는 죽음 앞에서 몸이 흐트러진 채 통나무처럼 굳어버린다. 수습은 김씨의 몫이다. 인근 산에 호미로 땅을 파 비닐봉지에 고이 담은 그들을 묻어준다. 7월이 되면 김씨의 눈물이 더 많아지는 이유다.
김하연 사진가는 스스로를 ‘길고양이 종군기자’라고 말한다. 길고양이가 죽는 무릎 밑 전쟁터에서 그는 사진을 찍는다. 임세연 객원기자
김하연 사진가는 길고양이를 찍기 위해 눈을 맞춘다. 임세연 객원기자
눈물이 난다고 숨지는 않는다. 그는 이 모습을 그대로 앵글에 담는다. 사진은 예쁘지 않다. 사진 속 고양이들은 피 묻은 도로 한 가운데 누워있고, 엉덩이 밑으로 내장이 쏟아져 나와 있고, 하얀 눈 언덕에 축 늘어져 있다.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그는 이 사진들을 블로그, 페이스북 등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작별’이라는 제목으로 추모하는 글과 함께 올린다.
그는 자신을 종군기자에 비유했다. 종군기자는 전쟁을 막기 위해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하반신이 없는 아이를 들고 가는 모습을 그대로 담는다. 김씨가 죽은 길고양이를 찍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가 사진으로 알리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고양이들이 사는 ‘무릎 밑 전쟁터’다.
“죽음의 원인이 사람이라 기록해요. 알려야죠. 불편하게 해야 한번은 생각하니까요. 길고양이들은 누구의 환영도 없이 태어나 배웅도 없이 떠나요. 최소한 그들이 황망하게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어미 고양이와 새끼가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어요. 충격적인 건 제가 도착했을 때 불붙은 담배꽁초가 사체 옆에 있었어요. 얼마 안 된 거죠. 재수가 없다며 욕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게 생명이 생명을 대하는 자세일까요? 사람들은 고양이를 치면 그냥 지나가 버리죠. 전화 한 통화만 해주면 다 짓이겨져 바닥에 납작하게 눌리는 그런 상황은 막을 수 있어요.”
고양이가 잘살면 사람도 잘산다
김씨가 고양이의 삶을 알리는 건 고양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 예전엔 싫어했다. 그런 그가 길고양이를 찍는 이유는 약한 생명체를 보듬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에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같은 생명인데 불쌍한 거죠. 고양이는 자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새끼 땐 20시간을 자고 성묘가 돼서도 10시간이 넘도록 자요.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눈을 감죠. 그런 고양이들이 자는 곳은 더럽고 열악해서 사람이 가지 않는 쓰레기 더미 옆, 차 밑 같은 장소예요. 도시에서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데가 그런 곳들뿐인 거죠.”
“공존이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사람한테 피해가 하나도 없을 순 없어요. 근데 우리가 아파트에 살기 위해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그들을 배려해주면 좋겠어요. 고양이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면 사람은 얼마나 잘 살 수 있을까요?”
2004년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2006년 최광호 작가가 주최한 ‘1019 사진상’에 당선됐다. 그 때부터 11년째 길고양이를 찍고 있으며 ‘고양이는 고양이다’, ‘화양연화’, ‘구사일생’, ‘너는 나다’ 등 40여 차례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출연했다.
임세연 객원기자
seyouny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