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쇠찌르레기. 한반도에 살지만 일본에서는 보통 발견되지 않는다. 이용상 제공
엔도 키미오는 한국 야생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날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일본의 동물작가인 그는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2009년), <한국의 마지막 표범>(2014년)을 통해 한국 대형포유류 멸종의 궤적을 진지하게 따르는 논픽션을 썼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대표적인 포유류에 대한 논픽션이 한국 작가가 아닌 일본 작가의 손에 의해 기록됐다는 점이다. 이 일본 작가가 한국의 동물을 취재하면서 가장 도움을 많이 받고 교류한 이가 바로 원병오 경희대 전 교수다.
지난달 말 출판된 <아리랑의 파랑새>(정유진·이은옥 옮김, 컵앤캡 펴냄)는 일본에서 1984년 초판이 발행된 비교적 오래된 책이다. 엔도 키미오는 한국의 ‘과학 명가’ 중 하나로 꼽히는 원홍구 박사와 아들 원병오 박사 가족을 취재해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기록을 했다.
1930년대 안주농업학교 시절에 원홍구 박사 일가. 왼쪽부터 원홍구와 장남 병휘와 넷째 병일, 원홍구의 처 최원숙과 둘째 병수, 막내 병오, 셋째 혜경이다. 원병오 형제는 빈손으로 월남해 가족 사진이 전혀 없었는데, 한국전쟁 중에 우연히 식모로 집안일을 하던 사람(아이 안은 이)에게 만나 사진을 얻었다고 한다.
아버지 원홍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유학생활과 교사를 하면서 조류에 대한 지식을 넓혀 온 한국 1세대 조류 연구자다. 우리말로 된 조류 명칭을 정리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제자 중에는 나비연구가 석주명도 있지만, 가족인 장남 원병휘 박사(동국대 전 생물학과 교수)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원병오 박사(경희대 전 생물학과 교수)가 유명하다.
원홍구 가족의 수난은 한국전쟁에서 시작된다. 전쟁 와중에 아들들이 남한으로 건너오게 되면서 생이별하게 된 것이다. 분단 이후 아버지 원홍구는 북에서 김일성종학대학 교수를 지내고 과학원생물학연구소장을 맡는 등 대표적인 생물학자로 성장한다. 아들들도 남한 동물학의 거목이 된다. 원병휘, 병오 형제는 각각 동국대와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로 일하면서 각각 포유류와 조류의 전문가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휴전선에 막혀 부자는 상봉하지 못한다.
그런데 북방쇠찌르레기 한 마리가 갈라진 가족을 이었다. 1964년 5월 도쿄의 야마시나조류연구소에 북한에서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모스크바를 경유해 도착한 이 편지는 일본의 조류 인식 가락지를 차고 있는 북방쇠찌르레기가 평양의 모란봉공원에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농림성 JAPAN·C7655’ 번호로 봐서, 일본에서 보낸 것을 알고 북한의 조류학자가 보낸 것이다. 그 조류학자는 북방쇠찌르레기가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점을 이상히 여겼다.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북방쇠찌르레기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의 가락지를 차고 있어서 매우 놀랐습니다.”
그럼 누가 어디서 가락지를 채운 걸까? 야마시나조류연구소는 과거 자료를 뒤진 끝에 1960년 국제조류보호회의 때 이 가락지를 한국에 제공했음을 알게 된다. 한국 농사원(농촌진흥청의 전신) 임업시험장으로 곧 연락이 갔고, 농사원은 다시 기록을 뒤진다. 쇠찌르레기에 가락지를 채운 건 1963년 6월6일 서울 청량리. 연구자는 원병오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원병오는 아버지인 원홍구가 가락지를 보고 일본 야마시나조류연구소에 편지를 보냈을 거라고 직감했다. 아들 원병오는 일본을 통해 북한에 편지를 보낸다. 아버지인 원홍구는 편지를 받고 감격에 겨워한다. ‘아들이 새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구나!’
이 이야기는 1965년 북한의 <노동신문>, 소련의 <프라우다>에 실리고 미국, 일본에 이어 한국의 신문에도 실리며 화제가 됐다. 사람은 넘지 못했지만, 동물은 넘을 수 있었던 휴전선. 쇠찌르레기가 가족을 이어준 것이다. “원홍구, 원병오 부자는 오백만 혹은 천만에 이르기도 한다는 이산가족 중에서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 첫 번째 가족”이었다고 엔도 키미오는 논평한다.
부자는 끝내 상봉하지 못했다. 6년 뒤인 1970년 북한의 원홍구 박사는 세상을 뜬다. 아들 원병휘 박사는 1995년 숨졌다. 현재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원병오 박사는 건강에 좋지 않음에도 책과 관련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고 이 책의 편집자는 밝혔다.
엔도 키미오는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때부터 1960년대까지 원홍구-원병오 가족의 일대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인세는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에 기부돼 멸종 한국 호랑이와 표범의 보전과 복원을 위해 쓰인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