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5층 본인 의원실에서 한 시민이 만들어 보낸 액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정미 정의당 의원(당 대표)은 ‘돌고래 국회의원’ ‘동물들의 대의원’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동물권을 위한 활동에 열심이다.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만나 동물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북핵, 사드 배치, 생리대, 신고리 5·6호기 같은 현안에 노동 토크까지… 환경노동위 소속인데 당 대표까지 맡아 무척 바쁘시겠습니다.
“의원이 여섯뿐이어서 모두 2~3인 역을 해야 합니다. 환노위는 정의당이 지향하는 가치를 가장 뚜렷하게 대변하는 상임위죠. 상임위 배정할 때 1, 2, 3순위를 모두 환노위로 적었어요.”
-환노위를 지원하는 의원들을 보면 대개 환경보다는 노동 때문이던데요.
“환경문제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까지는 알았어도 이 문제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는 건 몰랐어요. 환노위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혹시 동물 문제가 한가한 주제 아니냐는 지적을 받지는 않습니까?
“‘사람 먹고사는 것도 바쁜데 뭐 그런 일을 하나’라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약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인간 사회도 훨씬 나아지는 것 아닌가요. 인간 사회의 수많은 약자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동물 문제를 다루는 것이지, 다른 문제에 눈감는 건 아닙니다.”
-6월 당 대표에 출마할 때 ‘페미니즘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동물에 대한 관심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겁니까.
“페미니즘을 달리 해석하면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약자,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권리는 영역이 점점 확장됐습니다.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성 소수자 이렇게 말입니다. 그 속에는 당연히 동물권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것과 동물권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던 고양이 ‘나비’ 떠난 뒤
코트에서 털만 나와도 주저앉은
동물들의 대의원, 돌고래 국회의원
일찍이 동물복지 당원모임서 활동
이젠 진보정당 대표로 뛰면서
동물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 추진
-어제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는, “새로운 헌법은 동물을 포함해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생명 헌법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취지입니까?
“현재 헌법이 30년 됐는데, 그 사이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권리의 영역도 확장됐고요. 그런데 지금 헌법에는 아동권도 없습니다. 여성도 보호의 대상이지 권리의 주체라고 명시돼 있지 않아요. 새 헌법에서 확장된 권리의 영역이 모두 명시돼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권, 아동권, 동물권 이런 것들을 헌법의 기본 내용으로 다 명시하자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최근 동물 문제에 대중적인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 인기에 영합하는 것 아니냔 지적은 받지 않습니까?
“포퓰리즘이라고 욕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게 역설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만 반려 시대가 돼 사람들이 이제 동물을 가족처럼 대하게 됐지요. 동물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됐고 좋은 제도가 나올 여건이 마련됐거든요.”
-동물 문제가 ‘표’가 되기 훨씬 전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으셨죠?
“정의당 안의 동물복지 당원모임에서 활동도 하고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어요.”
-정의당 안에서는 동물 문제를 어떻게 보나요?
“정의당 안에도 당원마다 경험이나 인식의 편차가 큽니다. 지난해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주관한 개 식용 종식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하려는데 당내에서 ‘잘못 건드렸다간 당이 공격을 많이 받을 텐데 우리가 굳이 그렇게까지 나설 필요가 있냐’며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고 나니 개고기를 먹던 당직자 중에서도 인제 그만 먹자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이정미 정의당 대표(맨 왼쪽)가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홍섭 <애니멀피플> 기자(맨 오른쪽),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후유증도 있었지요?
“개 농장 분들이 당사에 와서 다 부수고 뒤집어 놓고 갔지요(웃음). ‘이정미 응징위원회’도 만들었어요.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그분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유일하게 들어주는 정치인이 또 저인 거예요. 갈등을 회피하거나 침묵하면 해결책도 안 나오죠. 함께 해결책을 찾는 쪽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한 차례 간담회도 열었고요.”
-개 식용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어 인제 그만 먹자고 얘기할 때라고 봅니다. 흔히 개 식용을 전통문화라고 하는데, 살아가면서 문화도 바뀌는 것 아닌가요. 내 이웃이나 친척은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데 나는 그걸 먹는다?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굳이 안 먹어도 영양섭취가 충분한데 말입니다.”
-결국 개 농장이 문제가 되겠군요?
“언제까지 개 농장을 완전히 폐쇄하겠다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어 놓고 농장주, 정부, 동물보호단체가 한자리에서 합의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언제까지 폐쇄하기로 로드맵을 만들어 놓고 농장주들이 개 사육을 더는 못하게 됐을 때 어떻게 보호해 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지 등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죠. 폐쇄 전까지 팔리는 개들은 어떻게 규제하고 관리할지 등도 하나의 그림을 그려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곰 사육 문제와 비슷한 해법인데, 단기간에 해결이 가능할까요?
“지난해 기본적인 실태조사를 했는데 적어도 2030년까진 걸릴 겁니다. 중요한 건 농장주들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변화의 포인트입니다.”
-개 사육농가가 다양해서 용돈을 벌기 위해 몇 마리 기르는 이들도 있지만, 기업적으로 수천 마리를 기르는 농가도 있습니다. 자칫 대규모 개 사육 농가 위주의 대책이 될 우려는 없을까요.
“그렇게 흐르지 않도록 꼼꼼히 살피는 게 정책결정자가 할 일이라고 봐요. 이를 위해서 개농장 실태를 정부 차원에서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큰 개농장이 유지되려면 식당 등 연계된 부문이 많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있고요. 이렇게 얽히고설킨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제대로 정책을 낼 수 있겠죠.
-결국 사회적 비용이 문제가 될 텐데요. 개농장주들은 적극적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이것을 비용을 들여서라도 꼭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뭘 비용까지 들여 하느냐’는 여론도 분명히 있습니다. 비용은 어느 정도 들어갈까요.
“어느 정도 비용이 들 것인지, 지원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는 정확한 실태조사를 한 뒤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뒤에 자생적으로 업종전환을 할 수 있거나 유도할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하고, 개 사육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분들에 대해서는 지원을 해서 업종전환을 유도해야 하겠죠. 비용을 어떻게 산정할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다른 동물 문제 가운데 입법을 추진 중인 것이 있나요?
“축산물의 날짜와 생산지에 더해 어떤 방식으로 사육했는지까지 표기하도록 하는 축산물 위생관리법 개정안을 6일 발의했습니다. 소비자 선택으로 공장식 축산을 줄이자는 취지이죠. 또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민법 개정안은 이미 발의돼 있습니다. 돌고래쇼장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추진 중입니다. 돌고래는 수천 킬로를 헤엄치는 동물이고 수족관 안에서 엄청난 소음에 시달리고 있어요. 길들어진다 하더라도 너무 고통스럽지요. 아이들을 위한 교육 목적을 위해서도 발달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바다를 노니는 돌고래를 수족관에서보다 훨씬 더 감동적으로 볼 수 있어요.”
-돌고래 말고 다른 야생동물 문제도 있지요.
“얼마 전 반달곰 토론회를 주최했어요. 이 나라에 돌봐야 할 동물이 얼마나 많은지(웃음)… 수도산 반달곰 사건을 계기로 야생동물과의 공존 문제를 이번 국감에서 본격적으로 파보려 합니다.
-동물복지국회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지요.
“각 당에 한 명씩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20대에 들어와 유권자들의 관심 높다 보니 인기 포럼이 됐어요. 40명 가까운 의원이 회원이고 의회 밖의 전문가 그룹, 자문 그룹도 25명쯤 됩니다.
-개인적으로 동물 문제를 깊이 느낀 계기가 있었나요?
“몇 년 전 버려진 고양이 ‘나비’를 입양해 기른 적이 있었어요. 일 년 반 내내 아프다가 결국은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병원에 가면 너무 답답했어요. 어디가 아픈지, 좀 나아졌는지 표현하지 못하니까요. 고양이는 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약한 생명을 돌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일인가 절실하게 느꼈어요.”
-지금은 반려동물이 있습니까?
“전에 입었던 코트에서 고양이 털이 떨어져 나오면 그 자리에 한동안 주저앉곤 했어요. 아직 (새 반려동물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됐습니다. 바빠서 함께할 여건이 안 되는데 욕심을 부리기도 싫고요.”
-공장식 축산이 큰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치킨을 끊으셨다는 얘기가 있던데.
“저는 솔직히 고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동물복지 관련 일을 하면서 이렇게 고기를 좋아해도 되나 하는 마음에서 개인적으로 괴로웠어요. 그런데 임순례 감독이 이런 조언을 했어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완전히 끊을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는 거다. 끊었다가 다시 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죄책감을 가지면 안 된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나는 이건 안 먹을게’라며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게 치맥인 거예요. 그래서 소, 돼지, 닭 중 하나는 끊자 해서 닭을 안 먹기로 했어요. 몇 년 됐습니다.”
-과거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할 때도 동물 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나요.
“아니요. 사회운동 하려면 누구나 노동운동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았지요. 동물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나비를 키우면서입니다. 그 전까지 동물이 인간과 교감하고 친구로 지내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나비는 제가 정치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때 큰 위로가 되었어요.”
-예를 들어 노동자나 농민의 이해와 동물복지가 충돌한다면 어느 쪽 편을 들겠습니까.
“모든 문제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것을 슬기롭게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존재 이유라고 봅니다. 예컨대 돌고래쇼장을 폐쇄하면 조련사들의 생계문제가 생기지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치가 있는 것 같아요.”
-한겨레가 동물전문 매체인 <애니멀피플>을 만들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언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정치의 기능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라면 언론은 어떤 갈등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는지 분명하고 보여주고 다양한 해결책을 소개해 주는 구실을 하지요. 동물 이슈를 계속 부각해 국회 담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분투하시길 기대합니다.
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녹취 유지인 교육연수생
z_o_z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