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폐선박에 실려 북미 해안에 상륙한 갯민숭이과의 연체동물. 존 채프먼 제공.
2011년 3월 11일 규모 9의 지진과 함께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후쿠시마를 덮쳤을 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생물의 대규모 이주 사태가 벌어졌음이 확인됐다. 300종 가까운 동물이 대양을 건너 7000㎞ 떨어진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도착했다. 여러 해에 걸친 이들의 표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대규모 플라스틱 등 인공 쓰레기였다.
쓰나미 이후 1년 반이 지났을 때부터 하와이 섬을 비롯해 캐나다와 미국 캘리포니아 서해안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항만 구조물부터 선박, 상자, 부이 등 크고 작은 폐기물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제임스 칼턴 미국 윌리엄스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이 쓰레기를 타고 이주해 온 동물을 조사한 결과, 이전까지 한 번도 태평양을 건너온 적이 없는 289종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 29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일본 후쿠시마와 북아메리카 서해안 사이의 해류와 표류한 생물을 나타낸 그림. 칼라 쉐퍼/ AAAS 제공.
표류해 온 동물은 게 등 갑각류, 말미잘 등 자포동물, 연체동물, 환형동물, 이끼벌레 등 무척추동물이 85%를 차지했다. 척추동물 가운데는 반쯤 가라앉은 어선에 고인 물에서 비쩍 마른 물고기도 발견됐다.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 동물들이 먹이도 없고 환경도 다른 대양을 4년이 넘게 표류해 무사히 건넜다는 사실이다. 논문은 이번 표류가 “가장 오랫동안 대양에서 생물이 생존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후쿠시마에서 미국 워싱턴주 롱비치에 표류한 선박 잔해에 아시아 산 빨강따개비가 잔뜩 붙어있다. 제임스 칼턴 제공.
해양 동물이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잘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유리섬유, 스티로폼 등 인공 쓰레기 덕분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흔해 대규모 폭풍이나 홍수로 작은 숲이 통째로 표류하는 사례도 있지만 결국 분해돼 대양을 건너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일부 동물은 이런 플라스틱 폐기물에 기대어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뗏목’에서 3세대까지 번식하기도 했다.
북아메리카 해안에 도착한 이들 동물이 외래종으로서 해안 생태계를 교란할지는 몇 년 더 조사해야 알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공동 저자인 존 채프먼 미국 오리건 주립대 해양학자는 “이 동물들이 그토록 험한 환경을 뚫고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러니 앞으로 오리건 해안에서 일본 동물이 살아가는 걸 보더라도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일본 미사와의 항구 구조물에 붙어 미국 오리건주 뉴포트 해안에 상륙한 동북아산 아무르불가사리. 존 채프먼 제공.
이 연구결과는 자연재해와 사람의 영향이 겹쳐 지구 차원의 새로운 생태적 사건이 더 자주 벌어질 것을 예고한다. 해안 개발이 가속해 플라스틱 등 인공 쓰레기는 늘어나는데, 쓰나미가 아니더라도 기후변화로 열대폭풍은 점점 거세질 것이다. 그 결과 대양에는 가라앉지 않는 대규모 인공 뗏목이 수없이 떠다닐 테고, 이를 타고 해양 동물의 이동이 늘어 외래종으로 인한 피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
세계적인 외래종 전문가이기도 한 주저자 칼턴 교수는 “해마다 200개 가까운 나라에서 1000만t이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 그 양은 2025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이들 대규모 쓰레기를 바다로 쓸어 넣을 허리케인과 태풍의 강도는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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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ames T. Carlton et al, Tsunami-driven rafting: Transoceanic species dispersal and implications for marine biogeography,
Science 29 Sep 2017: Vol. 357, Issue 6358, pp. 1402-1406 DOI: 10.1126/science.aao1498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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