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 주공아파트 길고양이들은 오랜 삶의 터전을 벗어나 이주를 앞두고 있다. 길고양이들이 담을 넘으려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고양이들은 모른다. 그들 삶의 터전이 올 7월이면 무너지리라는 것을. 재건축 공사를 앞둔 면적 46만㎡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에는 약 250마리의 고양이들이 산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공사가 진행되어도 다른 지역으로 알아서 이주할 가능성이 작다. 이들이 거대한 공사판에서 생매장되지 않도록 골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국회 사무처 사단법인 한국동물복지표준협회가 주최한 ‘둔촌 주공아파트 길고양이 이주 대책 세미나’가 열렸다.
1980년 지어진 둔촌 주공아파트는 5930가구가 살았던, 전국 재건축 추진 단지 가운데 최대 규모다. 재건축 아파트에서 주민과 공존하던 길고양이 이주 대책을 논의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공간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주민 이주로 현재 단지는 거대한 유령도시처럼 황량하다. 온기가 사라진 공간에서 고양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주어진 생을 살아가고 있다. 주민 이주 전 50~60명의 주민이 이곳의 고양이를 돌봤지만, 현재 20~30명이 남아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둔촌캣맘즈’ 송재식 대표와 ‘나비야사랑해’ 유주연 이사는 오도가도 못하는 고양이들의 현실을 전하고 대책을 제안했다. 송재식 대표는 “둔촌 주공아파트는 3면이 도로, 한 면이 습지로 둘러싸여 있는 거대한 섬과 같은 아파트로 고양이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 경험이 거의 전무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도로 중 하나는 8차선에 이르는 큰 도로로, 인근 지역으로 고양이를 이주했을 경우 원래 살았던 곳으로 가려는 습성 때문에 로드킬 당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덧붙였다.
11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둔촌 주공아파트 길고양이 이주 대책 세미나’ 참여자들이 발표 자료를 보고 있다. 신소윤 기자
길고양이들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이태형 캣로드사업단 동물복지 지원 부단장, 위혜진 캣로드사업단 의료단장, 박순석 한국동물복지표준협회 공동대표는 타 지역 이주 전 전염성 질환 등 건강 상태 확인과 치료에 대한 의견을 냈다. 박순석 대표는 “이곳 고양이들의 건강 상태가 한국 도심 생태에 있는 고양이들의 상태를 대변할 수 있다. 이주 과정에서 둔촌 주공아파트 고양이들의 질병 유병률, 감염성 역학조사를 해서 앞으로 길고양이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선례를 남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태주호 교수는 이주 후 관리를 위해 위치추적시스템 등을 통한 이주 고양이 모니터링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내장형 마이크로칩, 위치추적시스템 등을 활용해 이주 고양이들의 건강 상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이주 과정을 통해 고양이와 사람이 같이 살아나가는 방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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