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애피’와 만난 김현성 편집장이 인터뷰하며 생각에 잠겼다.
올해로 9년째. 동물과 환경을 이야기하는 월간지 ‘오!보이'는 김현성 편집장 혼자 만들다시피 한다. 그러다 보니 “마감을 딱 넘기자마자 바로 마감”인 연중 마감 모드다. “바쁜 게 싫고, 일하는 것은 정말 싫은” 그가 10년 가까이 꾸준히, 한 호도 빠트리지 않고 잡지를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만났다.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는 어떤 공간인가?
“1~2층에 동물복지와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 만든 제품들을 판매하는 쇼룸을 운영한다. 여기 판매되는 모든 제품들(화장품, 비누, 가방, 신발, 책 등)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친환경을 추구하는 제품들이다. 물건을 사지 말라고 주장하는 내가 쇼룸을 운영하는 건 좀 말이 안 되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지 않는 대신 타임리스 디자인의 제품을 사서 현명한 소비를 했으면 좋겠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아름다운 물건으로 쇼룸을 채우고 싶었다. 지하는 동물과 환경에 관한 세미나나 워크숍을 하는 공간으로 쓸 예정이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나 사용하는 물건도 오래된 것들인가.
“무엇이든 안 산 지 오래됐다. 지금 입은 옷들은 적어도 10년은 된 것 같다. 양말만 새것인데, 환경에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제작한 브랜드의 제품이다.”
-동물복지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오래 잡지를 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아직 한국에서는 환경이나 동물 뉴스에 반응이 극명하게 나뉜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소통을 해야 하리라 생각했다. 해외로 출장을 다니다 보면 그 나라 동물들을 유심히 보는데 표정·행동·습성이 다 다르다. 동물의 본질이 나라마다 달라서 그런 걸까. 그게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닐까. 한국의 길고양이는 유독 사람을 피해 다니지 않나. 사람들이 하는 행동 때문에 그런 거다. 반려동물 가구가 천만을 넘었다고 하는데도 동물을 왜곡된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동물을 싫어하거나, 동물에 관심 없는 사람보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제대로 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무가지를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잡지 만들고 배포처에 까는 것까지는 할 수 있겠는데, 돈 받고 파는 건 서점이랑 영업도 해야 하고 복잡한 일이 많아진다. 배포처에 뿌리면 초기엔 1~2시간 만에 잡지가 없어지곤 했다. 독자들이 제발 돈 받고 팔라고 해서 정기구독을 받고, 오프라인 판매처 두 곳(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 퀸마마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게 해뒀다.”
김현성 편집장이 키우는 개 ‘유부’가 쇼룸에 내려왔다. 학대받았던 개 유부는 반려인이 아닌 타인에게는 여전히 겁이 많고 위축돼 있다.
-가족의 동물 사랑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특히 어머니는 유기동물을 오래 돌보신 거로 유명한데, 동물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영향인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는데… 어머니는 30~40년 전 ‘유기동물’이라는 말조차 쓰이지 않은 시절에도 길에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돌봤다. 칠순이 넘은 지금도 동네 고양이들을 다 돌보신다. 어릴 적 나의 하루 일과는 개밥 주는 걸로 시작해 개똥 치우는 걸로 끝났을 정도였으니 동물과의 일상은 특별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잡지를 만들어야겠다 마음 먹은 직접적인 계기가 있나.
“결혼을 하면서 데리고 간 검은 푸들 ‘먹물'과 아내가 데려온 ‘밤식'이라는 밤색 푸들이 있었다. 자식 같은 아이들이었다. 2008년 먹물이 심장이 나빠져서 죽었다. 나이가 비슷한 밤식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쇼크사를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슬픔은 처음이었다. 두 마리가 죽고 너무 힘들고 허전해서 동물 관련 일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의 개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고통 받는 동물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먹물과 밤식이 이후 더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 마음먹었지만 2년쯤 전부터 아이들을 입양했다.”
-지금 키우는 개, 고양이들은?
“믹스견인 ‘뭉치'는 사과 박스에 담겨 시외터미널에 버려져 있었다.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까지 가서 내가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데려왔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뭉치는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유부’는 어디선가 학대를 받은 개다. 아직도 집 밖으로 나오면 벌벌 떨고 작은 소리만 나도 움찔한다. 산책은 아직 꿈도 못 꾼다. 고양이 ‘도로’는 저희 직원이 퇴근하는 길에 구조했다. 도로에 딱 붙어 죽어가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뭉치와 유부가 도로를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셋이 잘 지내는 편이다.”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본 동물 뉴스는 무엇인가.
“여러 이슈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육식 문제. 어떻게 보면 되게 심각하고 희망적이지 않은 문제인데, 채식주의자가 느는 속도에 비해 육식 인구가 느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육식은 자신의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기아, 공장식 축산업계의 횡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육식을 하지 말자고 말하긴 어렵다. 나 역시 고기 육수를 낸 평양냉면을 끊지 못하고 있으니까. 다만 육식을 함으로써 우리가 끼칠 수 있는 안 좋은 영향에 대해 잘 알았으면 좋겠다.”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 쇼룸에 걸려 있는 물건들.
-잡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직접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거리 입양제'나 동물보호소 건립 목표 등이 그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나.
“잡지로만 계속 소통을 하다 보니 직접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생명공감’이라는 단체와 거리입양제를 기획해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올해도 진행할 거고, 비슷한 다른 기획도 많이 고민 중이다. 제대로 된 동물보호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현실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궁극적인 목표는 보호소 건립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게 생명존중과 동물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글·사진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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