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리’는 잦은 출산을 겪고 질병에 방치된 개였다. 구조 당시 딱한 몰골 때문에 앞으로는 ‘럭셔리’하게 살라는 의미로 셔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려동물을 처음 키우거나 입양을 하게 되면 몇 날 몇일 이름 짓기에 고민할 것이다. 복 많이 받으라고 복순이, 복돌이라는 이름을 짓고 행운이 따르라고 럭키, 또는 평소에 좋아하는 단어를 떠올리며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이름을 짓기 위해 골몰할 것이다.
주인 없는 동물 보호소 동물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 수많은 동물들이 새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름 짓기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하지만 지켜야 할 기준이 있기에 쉽지는 않다. 보호소 내에 같은 이름이 존재하면 헷갈리고 입양 이후의 관리도 있기 때문에 겹치지 않고 기억하기 쉬운 작명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에는 300마리의 동물이 있다. 같은 이름은 없다. 불법 투견장에서 구조한 ‘두유’ ‘우유’, ‘온유’는 싸움을 시키기 위해 훈련 받았던 공격성이 없어지고 성격이 순화 되기를 바라며 온순한 느낌의 이름을 지어줬다. 너무 별나서 ‘순진이’, 너무 착해서 ‘착한이’ 등 성격적인 특성을 따서 이름을 짓기도 한다.
‘햇살이’는 어둡고 더러운 연탄 창고에 갇혀 지내던 개다. 구조 후
구조한 지역의 지명이나 위치도 이름 짓기에 활용된다. 울산시 울동에서 구조한 ‘울동이’, 서강대교 위에서 구조한 ‘서강이’,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에서 구조한 ‘청아’, 충남 당진시에서 구조한 ‘당당이’와 ‘진진이’, 레미콘 아래에서 구조한 ‘레미’처럼.
때론 유명인이나 연예인의 이름도 활용한다. 컨네이너 밑에 새끼를 낳고 힘겹게 살던 어미 개 ‘하이’와 6마리 강아지의 이름은 ‘혜교’, ‘중기’, ‘가인’, ‘태희’, ‘지현’, ‘나영’이다.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30마리가 넘는 동물이 한 번에 구조되어 보호소에 들어오면 이름 짓기에 비상이 걸린다. 질병이 있는지 파악하고 특성을 정리하려면 이름을 빨리 지어 정리해야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 채소 이름을 따서 ‘감자’, ‘비트’, ‘호박’, ‘케일’, ‘당근이’로 이름이 정해지기도 하고, 열대 과일의 이름을 따서 ‘망고’, ‘두리안’, ‘파파야’가 되기도 한다. 악기 이름을 따서 ‘대금이’, ‘야금이’, ‘(거)문고’, ‘소고’도 된다. 구조 직후 동물병원에 입원시키면 병원에서 이름을 지어줘서 고민을 덜기도 한다. ‘일빵’, ‘이빵’, ‘삼빵’이처럼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으로.
5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구조된 개 ‘오층이’(왼쪽)와 석면 가득한 지붕 안에 숨어살던 고양이 ‘붕붕이’.
한 때 유행했던 바다, 우주, 강이 산이, 들이 등 자연을 본 딴 이름은 수명이 짧아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미신으로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 영어 이름을 쓰는 아이들도 있다. 품종 없어 억울한 혼혈견 ‘랄프’와 ‘찰스’는 아직 보호소에 남아 글로벌하게 살지 못하지만 ‘루이스’는 곧 캐나다 토론토에서 새 삶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름대로 되길 바라기도 한다. ‘대한이’와 ‘민국’이는 어서 나라를 구하고 ‘밍키’는 요술 부려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다. 뜨거운 물에 산 채로 담겨 ‘나비탕’이 될 뻔 했던 ‘루비’에겐 귀하고 빛나는 보석 같은 삶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냥 너무 예뻤던 ‘예삐’와 ‘예쁜이’는 하늘에서도 예쁨으로 열일하고 있겠지. 동물자유연대가 결성된 지 어언 20년. 3000개 이상 새로운 이름이 탄생했고 이름 없이 구조된 동물들이 존재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해왔다. 새로운 이름과 함께.
글·사진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