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위에서 편안하게 잠자는 침팬지. 야생 침팬지의 잠자리는 동물원 우리의 악취와는 전혀 다른 깨끗한 환경인 것으로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는 공통으로 매일 잠자리를 새로 만든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엮어 받침을 만든 뒤 그 위에 나뭇잎을 푹신하게 덮은 복잡한 구조의 둥지를 매일 나무 위에 만드는데, 여기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둥지를 만들 장소와 재료로 쓸 나무를 세심하게 고른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660만∼1200만년 전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으므로, 사람의 조상도 이들 영장류처럼 나무에 매일 잠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2만∼3만년 전부터 사람은 집을 짓고 고정적인 잠자리에서 자기 시작했다. 나무 위의 일시적인 잠자리와 고정적인 집의 잠자리는 생태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침팬지 잠자리와 주변의 미생물과 절지동물을 조사한 첫 연구결과가 나왔다.
탄자니아 연구자가 야생 침팬지 둥지에 올라 면봉으로 미생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피오나 스티워트 제공
미건 퉤미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박사과정생 등 국제 연구진은 탄자니아 이사 계곡에 있는 침팬지 잠자리 41곳에서 면봉으로 둥지 표면을 문지르고 진공 흡입기로 곤충과 거미를 빨아들여 조사했다.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 과학’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사람의 침실과는 너무 다른 생태계여서 놀랐다”고 밝혔다.
사람의 집은 주변 환경과 차단된 그 자체의 생태계를 이룬다. 수천종에 이르는 집 생태계의 미생물은 대부분 피부, 입, 배설기관 등 인체에서 기원한 것들이다. 건축자재와 음식에서 나온 미생물은 있어도 토양, 숲 등 외부 환경에서 비롯한 세균은 거의 없다. 침대 세균의 35%는 사람 몸에서 기원한 종류다.
침팬지 둥지의 미생물은 당연히 사람과 달랐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미생물이 나무 위 주변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퉤미스는 “침팬지 잠자리에서는 침팬지의 분변, 구강, 피부 세균이 거의 없어 좀 놀랐다”며 “곤충과 거미 등 절지동물 기생충도 꽤 많을 거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침팬지 몸에 전적으로 기생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흡혈 절지동물 한 종 4마리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논문을 보면, 연구자들은 침팬지 둥지에서 세균 1896 분류군을 확인했는데 이는 주변 환경에서 찾은 1784 분류군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둥지에서는 침팬지 배설물에 가장 많은 세균 5개 속 가운데 4개 속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고 1개 속 세균도 시료 5%에서만 나왔다. 전체적으로 침팬지의 몸과 관련한 세균은 시료의 3.5%에서 주로 구강 관련 세균이 나왔을 뿐이다.
서로 털 고르기를 해 주는 침팬지 무리. 이런 행동을 통해 외부 기생충 대부분을 제거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침팬지가 매일 집을 새로 지어 병균과 해충이 축적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침팬지가 쉬면서 노출되는 세균과 벌레는 전적으로 환경에서 기원한 것이며 계절과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침팬지가 이, 진드기 등 60종의 기생충을 보유하는데도 잠자리에서 검출되지 않은 것은 “효과적인 털 고르기(그루밍)의 결과로 추정된다”라고 연구자들은 덧붙였다.
뒤집어 보면, 인간은 정주생활을 선택하면서 환경 유래 미생물을 모두 차단하고 그 자리에 자기 몸에서 나온 미생물로 채웠고, 절지동물도 실내생활에 적응한 종들로 바꾼 셈이다. 퉤미스는 “이 연구는 인공 구조물이 우리의 바로 곁 환경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잘 보여준다”며 “깨끗한 환경을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이 실제로는 우리 주변 환경을 덜 이상적인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hoemmes MSet al. 2018 Ecology of sleeping: the microbial and arthropod associates of chimpanzee beds.
R. Soc. open sci. 5: 180382. http://dx.doi.org/10.1098/rsos.18038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