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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반여동 냥이들, 남은 평생 꼭 살릴 거예요”

등록 2018-06-28 14:36수정 2018-06-28 17:45

[애니멀피플] 부산 반여동 재개발지역 ‘캣대디’ 고재규씨
사람 떠난 빈 골목 밥 짊어지고 매일 출근
이주 대책 마련 못해 ‘애피’에 사연 전해
오갈 데 없는 고양이 위해 사람들 뭉쳤다
고재규씨가 집에서 싸온 고양이 밥을 나눠주고 있다. 사료와 함께 고기, 생선 등을 삶거나 구워서 챙겨온다. 고기와 생선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닭고기 가게, 생선 가게 지인이 조금씩 챙겨뒀다고 싸주곤 한다.
고재규씨가 집에서 싸온 고양이 밥을 나눠주고 있다. 사료와 함께 고기, 생선 등을 삶거나 구워서 챙겨온다. 고기와 생선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닭고기 가게, 생선 가게 지인이 조금씩 챙겨뒀다고 싸주곤 한다.
지난 22일 ‘애니멀피플’은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1동 1332번지 일대 재개발지역에 사는 길고양이 30마리의 소식을 전했다. 이 지역 주민이었던 고재규씨(60) 혼자 돌보던 고양이들이다. 철거를 코 앞에 두고, 고씨는 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정이 전해지며 20~30대 시민을 중심으로 ‘반여1동 철거구역 길고양이 생존권 연대’가 꾸려졌고, 애피가 이 소식을 전했다.(관련기사: “부산 반여동 길고양이 살려주세요”) 보도 이후, 꿈쩍 않던 해운대구청이 연대에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고, 애피를 통해 입양, 사료 기부 문의가 이어졌다.

고양이들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27일 애피가 고재규씨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1시간 여의 전화 통화 동안 고재규씨는 고양이들의 험난한 삶을 전하며 때때로 목이 매었다. 진솔했던 그 목소리를 가감없이 싣는다.

철거가 시작되면 고양이들은 낯선 중장비와 사람들, 소음에 놀라 더 깊은 곳으로 숨어 있다 압사될 가능성이 높다. 영역 동물이라 쉽사리 다른 곳으로 단체 이주하기도 어렵다. 안전한 이주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철거가 시작되면 고양이들은 낯선 중장비와 사람들, 소음에 놀라 더 깊은 곳으로 숨어 있다 압사될 가능성이 높다. 영역 동물이라 쉽사리 다른 곳으로 단체 이주하기도 어렵다. 안전한 이주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보도 이후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애피, 지역신문 등에 보도 이후)에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누가 20kg짜리 사료를 두 개 보내줬어요. 내가 5년간 고양이를 돌보면서 사료 지원을 처음 받아봤어요. 20kg 하나 사면 딱 8일 먹이거든요. 해운대구청에서도 연락이 왔대요. 요구 사항을 전부 확인해서 만나보자고 제안이 왔대요. 금요일에 아가씨들(반여1동 철거구역 길고양이 생존권 연대)하고 만나서 얘기한 다음에, 그 다음 주에 구청이란 만나기로 했어요.”

-많은 분들이 애써 주셔서 다행이에요.

“집을 뿌수고 철거를 시작하면, 내가 솔직히 드러누워서라도 언론에 알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인터넷에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해운대구) 우동에 사는 젊은 사람들인데, 한번 볼 수 있겠냐고 해서 오라고 했지요. 오자마자 사람들이 주저 앉아서 막 엉엉 울어요. 사람 하나 없는, 그 빈 동네에서 내 차 소리만 듣고 애들이 뛰어나오는 걸 보고, 그 애들을 보고….”

-입양 가정도 나타났다고요.

“경기도 파주에서 두 마리를 데리고 가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확인을 해보니 고양이를 좋아하고, 실제로 2마리를 키우고 있기도 하고, 농사 짓는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입양 보낼 애들 사진을 찍어보내줬지요. 무조건 내려오겠다고 하더라고요.”

- 입양 가는 두 마리는 어떤 아이들인가요? 몸이 약하거나 사람 손을 특히 많이 탄 5마리가 있다고 들었어요.

“사람 손을 타서 이주하면 적응하기 힘든 애 둘이에요. 그 중에 하나가 ‘야옹이’라는 애예요. 이 친구를 왜 먼저 보내냐면, 어느날 밥을 주는데 동네 대장 고양이가 자꾸 어디로 뛰어가고, 또 뛰어가고 그러는기라. 가보니까 누가 키우다가 버린 애 같은데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요. 대장이 (자기 영역에 들어왔다고) 야옹이를 쫓아내려고 계속 때려요. 구석에 앉아서 야옹이는 감당도 못하고 맞고만 있지. 사람이 가도 도망도 안 가고, 딱 안았는데 얼마나 말랐으면 뼈가 다 느껴져요. 그래서 내가 막 뭘 먹였더니 지금은 정말 훌륭하게, 멋진 고양이로 컸어요. 내가 밥 주는 데가 (철거지역 내에서) 다섯 군데인데, 야옹이가 젤 첫번째 구역에서 먹는 애예요. 내가 가면 기다리고 있다가 지가 딱 인솔을 합니다. 얘는 집고양이랑 똑같아서 이동하면 백발백중 죽을 것 같아서 최우선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 고양이들 돌본 지 5년째,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 집에서는 네 마리 고양이를 기르신다고.

“내가 58년생이에요. 아이고, 내 진짜 ‘냥이’를 내가 너무 늦게 알았지. 늦게 알아서 정말 미안하고, 미안해요. 내가 직업이 용접이다보니까 일이 있어서 인천으로 1달 반쯤 출장을 가게 됐어요. 그때 아내가 집에 혼자 있으니까 마음이 그렇다고 자꾸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고 하는기라, 그기 5년 전. 그러다가 집사람이, 울산에서 세 집을 돌다가 다 못 키우겠다고 해서 다음날이면 안락사 당한다는 고양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급하게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올라갔대요. 그게 지금 집에 있는 ‘깡치’예요. 나는 ‘아, 고양이가 집에 왔는갑다’ 하고 집에 갔지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고양이란 정말 동물이 멋지더라고요. 그기 새끼를 7마리 낳았어요. 전부 분양하고 하나 남았는데, 젖 떼고 걷지도 몬하는데 어째 남의 집에 보내겠노. 걔가 ‘대박’이에요. 그기 지금 우리한테 효자짓을 할라고 하지요.

나머지 둘은 ‘달이랑 ‘별이’라는 애들이에요. 어느날 골목에 밥 주러 들어갔는데, 차가 많이 안 댕기는 도로인데 고양이 하나가 차에 치어 죽었드라고. 그걸 수습할라꼬 하는데, 눈 갓 뜬 고양이가 둘이 있어요. 소리도 몬내고 입만 쩍쩍 벌리고 있더라고. 사람들 먹는 우유 끓여서 먹였는데 잘 먹대요. 그런데 다음날 설사를 해가지고 병원에 바로 달려가고, 허허. 병원 신세 많이 졌어요. 이 애들은 이제 갓 1년 지났어요.”

- 다리가 하나 없는 ‘나비’ 등 아직 갈 친구들이 더 남았다고요.

“나비는…(한숨) 한 6살로 추정되는데, 발이 잘린 게 인간 때문인 건지 사람을 굉장히 경계를 해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비한테 제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데, 그게 1미터. 그 이상은 못 가요.

어쩌다가 내가 나비 새끼 낳는 것을 네 번을 봤어요. 우리집에 2층이었는데, 집에서 나비 사는 데가 보였어요. 집 앞에 조그만 무궁화연립이라는 데가 있었는데, 거기 사는 할머니들이 몸도 힘들고 하니까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걸 조금씩 창밖으로 그냥 던져 버렸거든요. 나비는 그걸 받아 먹을라고 항상 그 집 밑에 앉아 있는기라. 새끼도 거기서 낳고.

어느날은 나비가 새끼를 낳고 있는데, 누가 음식을 던졌나봐요. 탯줄을 덜렁덜렁 단 채로 그걸 먹겠다고 뛰더라고. 그걸 보고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집에서 음식이고 뭐고 나비 주위로 다 던져줬어요. 사람도 안 그렇습니까, 산모가 잘 먹어야 애도 살지요. 나비는 몸이 약해서 그런지 새끼를 낳는 족족 오래 못 살고 죽더라고.

비오는 날 차를 타고 동네에 들어오다가 나비를 본 적이 있어요. 비가 오면 틀림없이 어디 숨을 앤데 뭐 하나 싶어서 차로 살살 뒤를 따라 가봤어요. 가보니까 지 새끼 입에 먹을 걸 물려주는기라, 지는 그렇게 못 먹으면서. 그걸 보고 내가 ‘이 놈, 니는 내가 꼭 평생 책임질게' 그 약속을 어기기 싫어서 지금도 퇴근하고 가고 그러고 있지요.”

한쪽 다리가 없는 ‘나비’는 사람을 두려워 해 고재규씨에게도 1m 이상 곁을 주지 않는다.
한쪽 다리가 없는 ‘나비’는 사람을 두려워 해 고재규씨에게도 1m 이상 곁을 주지 않는다.
반여1동 철거지역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가 밥을 먹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반여1동 철거지역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가 밥을 먹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 나비 말고도 꼭 입양 보내고 싶은 아이들이 있나요.

“‘치즈’(노랑무늬 고양이) 형제가 있어요. 골목에 들어가서 ‘노랑이 형제!’ 이렇게 부르면 얼른 뛰어와요. 그런데 둘 중에 한 마리가 사나흘 안 좋아보여서 걱정했는데, 어제 나왔길래 캔을 뜯어줬어요. 그런데 안 먹어요. 나를 경계 안 하던 앤데, 슬금슬금 경계를 하고. 오늘 또 안 나타나더라고. 마음이 굉장히 아파요.

둘은 저번 겨울에 알게 됐어요. 작년에는 부산에도 눈이 오고 제법 많이 추웠거든요. 둘이 꼭 우리집 앞에 와서 자더라고. 그런데 어느날은 아침에 보니까 등 위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았어요. 그 한끼, 두끼 얻어먹으려고 추위를 견디고 거기서 자고 있는거지. 안되겠다 싶어서 집을 만들어줬드만 둘이 그렇게 오붓하게 잘 자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요즘 차 몰고 밥 주러 들어가면 차 대기도 전에 쫓아나와 있는 애가 이 둘 중에 하나예요.”

- 남은 고양이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도 계속 돌보실 계획인가요?

“그라믄요. 지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이동을 준비해야하는데, 장마 때문에 밥주는 데 비가 고여서 3m 정도 옮겨봤어요. 이만큼도 낯설어하더라고.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래도 고양이들 눈을 보면 배신을 할 수 없어요. 솔직히 지금은 나이 들어서 일이 많이 없는데도, 들어가는 돈도 하나도 안 아까워요. 어차피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거 나눠 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반여1동 철거구역 길고양이 생존권 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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