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려진 경고등
2006년 이래 원인 미상 폐질환 사람과 증상 일치
사회적 참사 특조위 “사람·동물 건강 문제 밀접…
‘원 헬스’ 개념 대처했다면 대참사 없었을 것”
늘 사람 옆에 붙어 있길 좋아했던 까미(맨 왼쪽)와 두리, 유기견이었던 까미와 두리를 키운 김은경씨는 “다른 집에 갔더라면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자책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은경 제공
“그 소리가 아직 귀에 생생해요. 애가 숨이 점점 막혀오니까, 숨을 쉴 때마다 비명을 질러요. 평소 개들이 ‘깨갱’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과는 달라요. 너무 호흡하기가 힘드니까.…”
27일 <애니멀피플>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김은경(가명, 52)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12년 전 일이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르던 두 마리 개가 세상에 없다는 것이고, 같은 것이라면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치밀어오른다는 것이다. 2006년, 까미와 두리는 2달 간격으로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숨이 끊어졌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확인할 줄은 몰랐다. 이들 죽음의 뒷편에는 가습기 살균제가 놓여 있다.
사람과 흡사한 동물 건강 피해 증상
올 3월 공식 출범해 11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꾸려졌다. 특조위는 본격 활동에 앞서 진상규명 소위원회를 여는 등 사전 점검에 나서고 있다. 21일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반려동물 피해 관련 보건·수의학 전문가 간담회’ 또한 점검의 일환이다. 이날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동물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이고, 트라우마 등 정신적 피해 지원을 고려할 때가 됐다”며 “같은 생활 공간에서 사는 사람과 동물의 보건이 별개가 아닌 ‘원 헬스’ 개념으로 이해하고 대처했다면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동물 피해 점검의 배경을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현욱 해마루동물병원장은 2006년 1월 까미를 진료했다. 그는 당시 진료 기록에 “2달 전부터 숨을 가빠하고 운동성이 떨어짐, 내원 1~2주 사이에 심하게 숨을 헐떡거림, 다른 특이 소견은 없음”이라고 썼다. 산소를 공급하고, 항생제와 이뇨제 처방도 해봤으나 듣지 않았다. 까미는 통원 치료를 하다 증상이 심각해져 입원한지 하루 만에 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은경씨는 같은 증상의 또 다른 개를 안고 병원에 달려갔다. 이번엔 두리였다.
다시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던 김씨는 더욱 적극적으로 두리를 살리는 데 매달렸다. “얘한테는 더 미안한 게, 호흡하기 편하라고 두리 집 쪽으로 가습기를 틀어놓고 개집 창문을 랩으로 덮었어요. 두리가 나오려고 하면 ‘여기 있어야 숨 쉬기 편하대’하고 밀어넣기까지 했죠.” 김씨는 숨쉴 때마다 두리가 지르던 비명을 잊을 수 없다. 두리는 까미보다 더 급격하게 악화됐다. 가망이 없다는 진단에 안락사를 결정했다.
김씨의 집에는 까미와 두리 외에 또치, 시원 등 두 마리가 더 있었다. 또치와 시원도 엑스레이 판독 결과 앞서 간 두 마리와 상태가 같았다. 남은 두 마리를 위해 병원에서 두리의 부검을 권했다. 부검 결과 독성 물질에 의한 급성 반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히, 가습기 없는 거실에서 주로 생활한 또치와 시원은 이내 증상이 개선됐다. 보건복지부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에서 “가습기까지의 상대적인 거리가 짧을수록, 주관적 흡입량이 많을수록 환자군이 유의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까미와 두리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7마리가 유사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개들은 다른 증상없이 폐가 딱딱해지며 호흡을 힘들어하다 사망했다. 스테로이드, 항생제 등 다른 폐 질환에 효과를 보이는 약이 듣지 않는 것도 같았다.
2008년 3월 서울대동물병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코카스파니엘 6마리를 키우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연이어 같은 증상이 발발했다. 숨쉬기를 힘들어했다. 호흡 문제 외에 다른 임상 증상은 없었다. 두 마리가 1주일 사이로 죽고, 이어 3마리가 폐사했다. 당시 폐 조직 조사 결과 미국 엔텍은 중등도 미만의 폐 출혈, 서울대동물병원은 경미한 간질성 폐렴으로 진단을 내렸다.
2011년 1월 서울대동물병원을 찾은 고양이도 같은 증상이 기록돼 있다. 양측 폐 후엽에 침윤이 보였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기관지 이완제, 산소 공급, 수액 처지 등을 실시했으나 역시 호흡이 개선되지 않았다. 이 때 진료를 담당했던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여러 변수를 물었고, “최근 한 두 달 사이 가습기 클리너 변경”했다고 적었다. 서울대동물병원은 호흡에 미치는 독성 유무 평가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비용 등 현실적 문제로 끝까지 추적하지 못했다.
2010년 10월과 2013년 11월 건국대동물병원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었다. 2010년 방문한 8살 개의 경우 흡입성 독성으로 인한 폐 질환을 의심했다. 지속적으로 기침 치료를 받았으나 폐는 점점 더 딱딱해졌고 결국 사망했다. 2013년 사례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동물이 수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특조위는 “같은 생활 공간에서 사는 사람과 동물의 보건이 별개가 아닌 ‘원 헬스’ 개념으로 대처했다면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동물 조사의 배경을 밝혔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특조위, 동물 피해 수만 건 이를 것으로 추정
당시 수의사들은 이 폐 질환의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다. 2006년 사람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던 원인 미상의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과 같이 다수의 환자가 발생했는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동물의 경우 의료 기록이 소멸되거나 병명 코드가 통일돼 있지 않은 데다 보호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나서야 어렴풋한 원인이 손에 잡혔다. 21일 특조위 간담회에서, 보건복지부 ‘폐손상 조사위원회’ 조사 책임자로 활동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나노 사이즈의 입자가 말단 기관지에 침착해 염증을 일으켜 폐가 딱딱해지고, 공기가 폐로 못 들어가게 된다. 염증성으로 보여 자칫 감염성으로 오인할 수도 있지만, 폐렴과 다른 점은 약이 듣지 않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증상이 흡사하다는 뜻이다.
특조위는 현재까지 발굴한 17건의 강력한 의심 사례 외에도 수만 건의 동물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2018년 8월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6천 명이고, 정부 인정자는 607명이다. 하지만 환경부가 환경독성보건학회에 연구를 의뢰해 밝힌 사항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400만 명에 육박한다. 이에 환경부는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중증 피해자가 4만 명,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인한 건강 피해자는 5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5명 가운데 1명 꼴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추세에 비춰보건대, 드러나지 않은 반려동물 건강 피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사람에 비해 의료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피해 발굴에는 난항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조위는 현재 파악한 반려동물 피해 가정의 반려인 건강 상태를 추적할 예정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