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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원숭이 도시 롭부리 사라지나

등록 2018-09-11 10:59수정 2018-09-11 14:15

[애니멀피플]
고대 서사시 배경의 원숭이 집단 서식지
도시 현대화하며 ‘귀찮은 존재’로 전락해
타이 정부의 선택, 공존 대신 대량 이주?
원숭이들이 롭부리 구도심을 돌아다니고 있다.
원숭이들이 롭부리 구도심을 돌아다니고 있다.
타이에는 인도의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라마의 여정)열풍 때문에 생긴 오랜 원숭이 도시가 있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도시 롭부리다. 이곳에는 현재 약 7천마리의 긴꼬리원숭이가 살고 있다.

2017년 기준 롭부리 인구가 약 77만7천명이니 인구 111명당 원숭이 1마리가 있는 셈이다. 원숭이가 구도심의 차도, 인도, 철도 그리고 상가 건물 외벽을 모두 점령하고 있다. 동물원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보는 원숭이가 신기해 한국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라마야나와 롭부리에 사는 그 많은 원숭이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라마야나는 라마가 납치당한 부인 시타를 구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모험담의 절정은 주인공 라마가 원숭이 하누만의 도움을 받아 시타를 구하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는 지난 5세기 동안 중국, 티베트, 타이, 버마,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유행하며 각국의 문화·정치적 상황에 맞춰 재생산됐다. 중국의 ‘서유기’도 라마야나를 원작으로 두는데, 원래 주인공 라마를 빼고 원숭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우다. 21세기에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일류(J-pop), 한류(K-pop) 등 초국적 문화 열풍의 원류라고 볼 수 있다.

타이에서는 라마1세 왕부터 후대 왕들이 내용을 보완해 ‘라마끼엔’이라는 타이 버전을 만들었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타이의 라마끼엔에서는 인도 원작과 달리 라마보다 원숭이 하누만을 더 긍정적인 등장인물로 묘사한다.

여기서 롭부리가 원숭이 도시가 된 배경을 설명하는 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하누만이 시타를 구출하고 라마에게 선물 받은 땅이 롭부리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버마·아유타야 전쟁 중 타이인들이 강물에 막혀 탈출하지 못할 때 원숭이들이 다리를 만들어줬다는 전설이다. 롭부리 주민들은 매년 11월 하루, 이 고마운 원숭이들에게 과일과 채소를 배불리 먹인다.

원숭이들이 운행 중인 버스 위에 올라 타 이동 중이다.
원숭이들이 운행 중인 버스 위에 올라 타 이동 중이다.
롭부리 시민의 어깨에 올라타 앉아 있는 원숭이.
롭부리 시민의 어깨에 올라타 앉아 있는 원숭이.
말레이시아 국립말라야대학의 싱아라벨루 교수(인도학)는 ‘타이 문화 속 힌두교’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지역 정부당국에서 도심의 바위 더미에 원숭이들의 집단서식지를 조성했다고 전해진다”고 썼다. 라마야나 열풍과 이를 둘러싼 상상력이 롭부리를 진짜 원숭이의 도시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원숭이들은 롭부리 구도심의 상징인 크메르 사원 ‘프라 프랑 삼 요드’와 그 주변 상가에 특히 많이 몰려 있다. 그러나 사원 앞 푯말은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탓이다. 외부인의 눈에도 원숭이와 주민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확연하다. 사원에서 사람들이 나눠주는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원숭이들은 상가의 식료품, 행인의 먹을거리를 훔쳐간다. 상가와 노점 주인들은 누구나 비비탄총, 새총, 긴 나무막대를 들고 있다. 원숭이를 쫓기 위해서다.

“먹을 게 없어서 그러는 걸, 이웃들은 원숭이 모여든다고 내가 먹이 주는 것도 싫어한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살아오던 생명체인데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라 프랑 삼 요드 매표소 맞은편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톤티웡 동(62)의 말이다. 그는 36년째 매일 200-300마리의 원숭이에게 렌즈콩 튀김과 개 사료를 주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 애(64)가 제안해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구도심 주민들에게 원숭이는 천덕꾸러기다. 지난달 20일 만난 롭부리 전력공사 소비자서비스센터의 사라웃 츠아사클은 “원숭이 관련 불평 접수가 늘고 있다. 원숭이가 전선을 물어뜯다가 감전사하는 경우도 있다”며 “2-3년 안에 사원 주변의 모든 전선을 지하로 매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돌아다니는 풍경을 뒤로 한 채 롭부리 시민이 길을 건너고 있다.
원숭이들이 돌아다니는 풍경을 뒤로 한 채 롭부리 시민이 길을 건너고 있다.
타이 국립공원부 산하 야생동물보호국은 2019년에 원숭이를 모두 도심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2일 야생동물보호국이 보내온 ‘원숭이 관리를 위한 자연 숲 보호구역 건설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롭부리 도심의 원숭이를 중성화한 후 ‘세 곳의 원숭이 자연 서식지’로 이동시키고,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 곳의 후보지는 3.2㎢ 넓이의 카오프라야 던 통, 약 14㎢의 카오 솜폿 야생동물사냥금지구역, 그리고 2.4㎢의 카오 에라완 야생동물사냥금지구역이다.

롭부리 왓 코우웡 프라찬 사원의 승려 프라 티라팟은 지난 20일 “원숭이가 많다고 정부가 일부를 다른 곳으로 옮긴 적이 있다. 죽이진 않는다는데 가혹하게 포획했다”며 “원숭이는 이곳에서 500년 전부터 살아왔다. 지구에서는 영혼이 있는 모든 생물은 평등한 관계”라며 원숭이와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고 말했다.

롭부리(타이)/ 이슬기 애니멀피플 동남아시아 통신원 skidolma@gmail.com

롭부리 크메르 사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원숭이들.
롭부리 크메르 사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원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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