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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철거 지역 유리밭에서 고양이가 죽어간다”

등록 2018-09-13 12:32수정 2018-09-14 11:15

[애니멀피플]
이름도 없이 말 못하고 죽어간 생명을 위한 장례식…
14일, 부산서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추모 집회 열려
양서연씨가 기르던 아롱이.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부산길고양이생존연대 제공
양서연씨가 기르던 아롱이.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부산길고양이생존연대 제공
14일 오후 2시, 부산 동래구청 앞에서 이 지역 철거구역에서 희생된 길고양이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린다.

추모식을 주관하는 ‘부산 길고양이 생존권연대’는 이번 집회와 관련해 “인간 중심의 지역 재개발 때문에 부당하게 생명을 잃은 길고양이들을 기억하는 한편, 길고양이들의 생존 대책과 생존 공간 마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는 온천2구역으로 명명된 이 지역 길고양이들의 영정 사진을 마련하고, 죽은 아이들을 위한 편지와 추모문을 낭독한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시간도 갖는다. 추모식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드레스 코드는 검은색이다.

이번 장례식 집회와 관련해 ‘애니멀피플’은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길고양이를 돌보던 주민 양서연(50)씨에게 현장 상황을 들었다. 말 못하고 죽어간 고양이들에게도 각자의 역사가 있다. 양씨가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전했다.

철거지역 빈 집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들. 양서연 제공
철거지역 빈 집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들. 양서연 제공
-이 지역 길고양이들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라고 들었다.

“10년째 동네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나는 사실 우리 집 근처 내가 챙기던 아이들밖에 모른다. 그런데 이주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사라지니 먹을 것을 찾아 아이들이 사람이 남아 있는 곳 근처로 많이 몰리더라. 이주가 시작되기 전 내가 돌보던 아이를 비롯해 30마리 정도를 쉼터에 데려다 놨다.”

-어떤 인연으로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나.

“아롱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11년 전, 우리 어머니가 ‘손가락만 하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아기 고양이었는데, 두 마리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있었다. 너무 추운 날이어서 아버지가 모자에 아이들을 담아서 집안에 데려왔다. 가족들이 동물을 잘 모르던 때긴 했지만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생선을 잘 먹는다며 하루가 멀다 하게 새벽에 자갈치시장에 나가서 소금 간을 안 한 조기를 사서 먹일 정도로 정성으로 돌보셨다. 몇 해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지금은 의사 표현을 못 하시는데, 건강하시던 시절 혹시 본인이 잘못되더라도 아이들은 끝까지 책임지라고 당부하실 정도였다.”

-이주 과정에서 고양이들과 힘든 일을 겪으셨다고.

“지난 7월 11일에 이 지역 이주가 완전히 끝났다. 우리가 살던 곳은 60평 주택이었는데, 시세의 절반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하더라. 이주 마감이 임박하니 용역 직원들이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하고, 한밤중에 트럭을 ‘갈 지’자로 운전하며 내 뒤를 쫓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은 우리에게 올여름 폭염보다 더 괴로웠는데, 우리 집 사면에 이층집보다 높은 가림막을 쳐 바람 한 점 들지 않도록 해뒀다. 가림막에서 곰팡이가 피었고 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병이 돌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들은 눈이 튀어나와 죽었고, 아롱이는 온몸의 털이 빠졌다. 좋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녀 봤는데도 수를 쓰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었다. 이주 과정 중 여러 다툼이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철거 용역 중 일부가 찾아와 ‘이모한테 미안해서 더 못하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잔혹했다.”

-이주가 끝나자마자 철거 작업이 이뤄졌나.

“7월 20일까지 고양이들 이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9일부터 창문을 깨부수는 등 굉음이 발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들, 소음에 더 위축되고 깊은 곳으로 숨는다. 동래구청에 찾아가 철거구역에서 아이들 구조할 때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구청은 철거를 유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용역 깡패가 창문을 부수어서 온 동네가 깨진 유리 조각으로 가득했다. 포크레인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철거가 아니라더라. 유리밭 속을 신발 신지 않은 고양이가 맨발로 걸었다. 신발 신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지만, 그런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기존에 돌보던 고양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주했나.

“미리 이주한 30마리 외에 10마리를 더 구조했다. 하지만 눈에 익은 아이 중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포함해 찾지 못한 고양이 10여 마리가 있다. 우리 집 근처, 내가 기억하는 아이만 이 정도다. 이곳에 아파트 4천 세대 규모로 들어오는데, 파악하지 못한 아이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구조된 40여 마리의 임시보호처를 급하게 찾고 있다. 구조된 아이를 누가 안전하게 맡아줘야 다른 아이들을 더 구할 수 있다. 이유 없이 죽어간 아이들 모두 재개발 피해자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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