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대지진 당시 미야기현 센다이시 해변가 마을에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센다이/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2일 오후 2시, 전국 관공서와 학교 등에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안내 방송에 따라 책상 밑에 숨거나 머리를 방석 등으로 가린 채 안전한 곳으로 달려나갔다. 지진 안전 주간을 맞아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가정해 대피 연습을 시행한 것. 이날은 2016년 9월 12일 5.8 규모의 경주 지진이 일어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도 지진에 있어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13일 저녁 7시, 서울 신촌에 있는 한 학원의 강의실에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재난 시 반려동물과 살아남는 법’을 주제로 국제구호전문가 김동훈 피스윈즈 코리아 디렉터와 채미효 반려동물재난위기관리사가 강연을 준비했다. 세미나에 앞서 국내 유일한 동물재난위기관리사인 채미효씨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반려동물재난관리사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국내 유일하기도 하다고.
“한국에는 아직 반려동물재난관리사라는 직업이나 자격 취득 과정이 없다. 전일본동물교육전문협회에서 자격을 취득했다. 일본에서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다음 직업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펫로스로 인한 트라우마, 정서적 불안과 충격 때문에 수요가 생겼다. 국가 차원의 재난 대비 매뉴얼도 반려동물과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등의 내용이 대대적으로 재정비됐다. 원래는 채식, 로푸드 관련한 일을 하면서 반려동물 건강을 위한 영양 교육과 레시피 개발도 했는데, 언젠가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나눠 먹을 수 있는 레시피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재난 상황에서는 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없어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할 테니까. 그때 재난에 대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
-어떤 과정을 거쳐 반려동물재난관리사가 되나.
“이론과 실습을 하는데, 자격증 취득 과정 중 가장 마지막 관문이 인상적이었다. 지진이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8시간 동안 산속에 들어가서 계속 과제를 받으면서 상황을 헤쳐나가는 시험이었다. 짝을 이룬 전문가는 피시험자가 대피하는 모습을 보며 채점을 한다. 대피 과정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대피 장소로 이동했을 때 비반려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그들과 어떻게 교섭하는지, 반려동물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비반려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지 등이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된다.”
-한국의 경우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체감이 낮은 편이지만, 최근에는 밤사이 건물이 내려앉거나 싱크홀이 발생하는 등 인공재해 또한 맞닥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어디 붙잡으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서 있을 수조차 없다. 그 와중에 반려동물까지 챙겨야 한다면? 반려동물은 그들 본능에 따라 자기 몸을 숨길 것이기 때문에 혼란은 더 가중된다. 우리는 재난에 대한 체감이 낮고, 이런 상황에서 국가적인 매뉴얼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재난은 개인이 대비할 수 없다. 정부에서 미리 준비해 톱다운으로 내려와야 시스템이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필요한 물건을 쟁여두고, 상황을 그려보고 그때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생각해보는 것 정도다.”
-동선을 그려본다는 것의 의미는?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기본은 반려인 자신부터 챙기는 거다. 본인이 안전해야 나머지도 구할 수 있다. 재난 상황에서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살아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는 거다. 그다음 동물을 챙겨야 한다. 동물을 여러 마리 키운다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는 성인 1명당 한 마리의 동물이 적정하다고 한다. 성인의 기준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는 고등학생 이상을 말한다. 우선순위는 각 가정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개와 고양이를 동시에 키운다면 개부터, 나이 든 반려동물과 어린 반려동물이 있다면 어린 친구를 우선으로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반려동물이 제 발로 반려인을 따라 걸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면 몸이 부자연스러운 아이를 먼저 챙긴다. 개와 고양이의 경우, 개를 우선하는 까닭은 고양이가 행동이 더 민첩하고 살아남기 위한 감각이 더 발달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만 개의 경우 수평으로 움직이는 데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기 쉽기 때문에 개부터 구출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이것도 원칙만은 아닌 것이, 만약 25kg 이상 나가는 리트리버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면 이때는 리트리버를 먼저 포기하라고 말한다. 사람이 안고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일 서울 신촌에서 채미효 강사가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남는 법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이웃 일본 외에 반려동물 재난 대비를 잘 하는 국가가 있다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려동물 문화가 우리보다 먼저 생긴 미국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2005년 카트리나 발생 당시 미국에 있었는데, 대피소로 마련된 호텔에서 반려동물도 당연히 같이 묵게 해주더라. 반려동물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뱀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마개를 해야 한다거나 케이지에 넣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조건이 없었다. 동물 복지 차원이라기보다는 사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긴 했다. '사람이 괴롭다잖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다잖아' 이런 차원인 거다. 반려동물 재난 대비가 어렵고 복잡하다면, 우선 사람을 중심으로라도 접근하면 빠를 것 같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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