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이 바닥에 놓인 먹이를 먹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집 잃은 길고양이들은 이사할 수 있을까. 국토 전체가 부동산으로 들썩이는 가운데 재건축·재개발 지역 문제는 사람의 문제를 넘어 그곳에 깃든 생명의 복지 문제까지 닿아 있다. 1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도시 개발 광풍에 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동물들을 대신한 ‘도시 재건축·재개발과 길고양이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 동물권행동 카라가 주최하고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구조를 하는 ‘둔촌냥이’ 주관으로 열렸다. 토론회에는 철거 현장에서 고양이 밥을 주거나 이주를 도맡은 활동가를 비롯해 길고양이 연구자, 수의사, 농림축산식품부, 서울시 관계자 등이 모였다.
2016년 기준,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준공된 지 20년 이상 된 공동주택은 762만 가구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이종찬 길고양이 연구자는 “노후화된 공동주택에 대한 재정비는 안전상으로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후로도 계속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 ‘말 못하는 원주민’인 길고양이들은 기존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재난 수준의 위기에 처한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고양이는 관찰을 통해 점진적 학습을 하는 동물이라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취약하다”며 “스트레스를 은신처에서 극복하는 종 특성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고양이들은 철거 현장에서 제때 구조되지 못해 압사당할 가능성이 크고,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이 떨어져 질병에 걸려 죽기도 한다.
대부분 재건축이 주요 도시 도로 접경 지역에서 이뤄져 로드킬 당할 가능성도 크다. 인근 지역에 자체 이동할 경우 연착륙하지 못하고 그 지역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확산해 나간 지역 길고양이 개체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재건축·재개발 지역 고양이를 이주하는 데는 법·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기제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아무런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도시 재건축·재개발과 길고양이 토론회’에서 ‘국회 캣맘’이기도 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철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은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생명권의 문제를 개인이 떠안아 가며 해결해야 한다는데 답답함을 호소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활동한 김경희씨는 “다행히 마포구청 담당자가 동물보호 의식이 높아서 활동에 협조적이었지만, 공익 차원의 활동임에도 개인이 과중한 노동을 책임져야 했다”고 밝혔다. 과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현주씨는 “고양이를 일단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내 문제를 돌아보지 못했는데, 석면에 노출돼 앞으로 계속 폐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지자체 지원과 정부의 보조 등 공공의 영역에서 매뉴얼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복지와 이주 문제가 법적 근거를 가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문선 서울시 동물정책팀장이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했다. 김 팀장은 “적극적, 강제적인 규정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시행하는 초기 단계부터 협의하는 방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재개발·재건축 시행과 관련한 부서에 중요한 시행 단계에서 동물 관련 부서에 통보해 이주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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