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사람 따르다 철창에 갇힌, 반달가슴곰 RM-62의 비극

등록 2018-11-07 14:10수정 2018-11-07 15:06

[애니멀피플]
러시아서 온 1살 반달가슴곰, 등산객 남긴 음식 먹으며 사람 쫓아
두 차례 이동방사 후 결국 철창행…야생 곰 자연성 뺏지 말아야
사람이 남기고 간 음료수를 먹고 있는 RM-62. 종복원기술원 제공
사람이 남기고 간 음료수를 먹고 있는 RM-62. 종복원기술원 제공
뉴스에서 페트병을 들고 있는 반달가슴곰(이하 반달곰) RM-62의 사진을 봤을 때, 나는 합성사진이라 생각했다. 북극곰을 등장시킨 어느 음료 회사의 광고처럼 반달곰을 등장시킨 흥미로운 사진쯤으로. 그런데 사진은 현실이었고, 내가 만난 반달곰 RM-62은 이미 드넓은 지리산에서 포획돼 1평도 안 되는 쇠창살에 갇힌 뒤였다.

사람의 달콤한 음식에 길든 어린 반달곰

RM-62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온 만 1살의 수컷 반달곰이다. R은 러시아(Russia), M은 수컷(Male)을 의미한다. 이름에 붙은 62라는 숫자는 우리나라에서 62번째로 이름 붙여진 반달곰을 뜻한다.

RM-62가 등산객들 사이에 목격된 건 지난 5월부터다. 지리산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음식 등을 먹으며 사람 가까이 다가와 깊은 산 속인 벽소령과 장당골로 두 차례 이동 방사했지만 그 사이 사람들이 주는 달콤한 음식에 길든 반달곰은 다시 사람 뒤를 쫓았고, 결국 회수됐다. 산길에서 만난 새끼 반달곰에게 귀엽다고 먹을 것을 주고, 사진을 찍은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새끼 반달곰의 자연성을 빼앗는 결과가 되었고, 결국 지리산에 살고자 러시아에서 온 두 살도 안 된 반달곰을 철창에 가두고 만 것이다.

지리산 인근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 사이에는 반달곰을 보고 겪은 이야기 몇 가지가 전해져 온다. 그런데 참 의외였던 것은, 지금 사람이 살지 않는 지리산 벽소령과 덕평봉 바로 아래 살았던 어르신들도 반달곰을 직접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직접 본 경우는 서울과 부산, 대구 등지에서 온 사냥꾼들이 산에서 반달곰을 잡았을 때였다고 했다.

지난봄, 반달곰의 흔적을 찾아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에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뵀다. 멸종위기에 있던 반달곰을 되살리는 우리 사회의 노력에 반달곰들이 응답하듯 한 마리는 수도산으로, 한 마리는 백운산으로 길을 나선 후였다.

자료에 의하면, 반달곰은 일제 강점기 때 해수 구제를 이유로 1300여 마리나 포획됐다고 한다. 1950년부터 1972년까지 지리산에서 포획된 반달곰만 해도 160여 마리라니, 그 당시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에 살았던 어르신들은 반달곰에 대한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분들이 보고 경험했던 반달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에서 목격된 반달곰 RM-62. 종복원기술원 제공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에서 목격된 반달곰 RM-62. 종복원기술원 제공
포획된 RM-62. 종복원기술원 제공
포획된 RM-62. 종복원기술원 제공
지리산 빗점골에 사셨던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에 가려면 어른들이 말씀하셨지. 곰 있는 산에 갈 때는 소리를 내면서 들어가고, 범 있는 산은 조용히 들어가는 거라고. 곰은 소리가 나면 다 피한다. 그러니 산에 갈 때면 냄비나 바가지 뭐 그런 것들을 치면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실재 산에서 곰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화개 의신마을에 사는 한 어르신은 오래 전 아버지가 반달곰에게서 피해를 보았던 경험을 말했다.

“곰이 영리한 동물이라. 우리 아버님도 지혜가 있는 분이고. 그해 봄에 산에 가셨던 아버지가 그만 곰이 있는 바위굴 뒤에 앉으신 거라. 그 바위 아래서 곰 앞발이 나와서 아버지 어깨를 감쌌고, 곰이 아버지를 뒤에서 껴안은 모양새였는데,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니 살가죽이 벗겨진 거라. 곰이 다행히 더 이상의 해코지를 안 해 살아나셨지.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던 시기였지.”

깊은 산에 살며,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구했던 산촌 어르신들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반달곰은 영리하고 소리가 나면 피하지만, 새끼와 함께 있는 봄철에는 위험한 동물이다. 또 사람들이 농사짓는 작물을 주 먹이원으로 하지 않으니 사람에게 입히는 피해도 작은 동물이다.

백운산 한재 아랫마을에 사는 어르신은 반달곰을 직접 봤다고 했다.

“봤지, 산에서 본 게 아니라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산에 가서 잡아왔어. 장에 내다 팔았다고 들었는데.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준 일은 없었는데… 백운산에 5마리쯤 살았어, 지금은 없고. 3마리는 우리 마을에서, 1마리는 산 너머 마을에서 잡았다고 했는데. 그때 어미는 잡히고 혼자 남겨진 새끼 곰이 있었는데, 어찌 됐나 모르겠네. 지리산으로 갔겠지. 곰들이 층층나무 열매를 좋아하거든. 저 몬당(꼭대기 혹은 산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에 있는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먹는 모습을 당시 마을 사람들은 자주 봤다고 하던데….”

현재 지리산에는 반달곰 약 60마리가 살고, 자연에서 출산한 개체가 방사한 개체보다 많다(2018년 11월 현재 방사 개체는 43마리, 자연 출산 개체는 44마리 이상이다. 자연도태 등으로 현재 총 개체 수는 약 60마리). 그래서 나는 지금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들이 ‘방사 반달곰’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된 반달곰이라고 생각한다. 이 반달곰들이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야 우리 인간도 안전하고, 저들 반달곰도 안전하니, 우리는 산에 들어갈 때는 어르신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하면 된다. “깊은 산에 갈 때는 여럿이 가야 하는 기라. 서로 소리를 지르며 잘 있는지 확인하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소리를 내야 해. 그래야 곰이 멀리 달아나지. 무섭지. 무서우니까 정신 차리고 다녀야지.”

국립공원종복원 자연학습장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는 반달가슴곰 RM-62. 윤주옥
국립공원종복원 자연학습장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는 반달가슴곰 RM-62. 윤주옥
“곰이 있는 산에 들어갈 때엔 소리를 내라”

산에서 반달곰을 만나는 상황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반달곰은 사람과의 만남에 놀라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그러나 새끼와 함께 있는 반달곰은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산에서 반달곰을 만나면 피해야 하고, 새끼 반달곰이라면 쫓아야 한다. 주변에 어미 반달곰이 있을 수 있고, 그 어미 반달곰은 우리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어미 반달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앞발과 발톱은 우리에게 치명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창에 갇힌 반달곰 RM-62를 처음 만난 날, 그 녀석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람에 대한 반달곰 특유의 경계심도 없고, 철장 안의 답답함에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 녀석의 호기심이 우여곡절 끝에 수도산에서 사는 반달곰 KM-53처럼 야생동물의 삶터를 넓히는 용기로 발휘되지 못하고, 평생을 우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이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