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은영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제주의 평범한 ‘고양이 집사’는 제주에 녹색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꿈이다. 개발로 몸살을 앓는 땅 제주는,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그의 목소리를 타고 불어오는 작은 변화에 조금 설을지도 모른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이기도 했던 고은영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생태와 평화를 외치며 제주 최초 여성 도지사 후보, 이주민 후보, 최연소 후보 등의 이름으로 대신 불렸던 그가, 진짜 바라는 이름은 무엇일까.
―세 마리 고양이 집사라면서요.
“만두, 쪼리, 까뮈에요. 첫째와 둘째는 저의, 셋째는 함께 사는 친구의 고양이에요. 만두는 ‘한강맨션 고양이’에요.(2006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 고양이가 집단 서식하는 지하실을 막아 감금하며 동물권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2010년생으로 한강맨션 인근에서 태어나 구조된 고양이에요. 둘째는 배수구에 빠져 울고 있다가 구조됐어요. 셋째는 집고양이 출신인데, 온몸이 까매서 작가 알베르 까뮈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셋이 잘 지내는 편이긴 하지만, 먼저 한 식구였던 만두와 쪼리가 특히 잘 지내요. 눈꼴 시려울 정도로요. 육지에서 내려온 친구들이라 비행기를 함께 타며 고생해서 그런가.”(웃음)
―세 마리 고양이 이전에도 동물과 함께 산 경험이 있나요.
“저는 아주 작은 가겟집 딸이었어요. 달동네에 있는 작은 슈퍼였는데, 그러다 보니 골목에 고양이가 정말 많이 살았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그때도 지금도 고양이를 나비라고 부르는데, 당시 나비들은 저희 가게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쥐를 잡으며 함께 살았어요. ‘외출냥이’인 셈이었는데, 마을에 워낙 고양이가 많았기 때문에 손님들도 가게 안에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데 개의치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공생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 마을이 재개발됐어요. 뉴타운 사업의 초기 버전이 시행됐던 지역이었는데, 근 20년 동안 지구별로 쪼개지면서 거대하게 개발이 됐어요. 우리 마을은 거의 마지막에 개발됐는데, 그러다 보니 재개발 끝물에는 동네에 고양이가 정말 많았어요.”
‘대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해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 정치인이 되어서 동물 그리고 더 넓게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쳤나요.
“저와 제 룸메이트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같이 살아요. 제주에서는 연세라고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데 그게 각자 조금 부족해서 함께 살게 된 거거든요. 같이 살면서 가장 먼저 고민이었던 게 고양이 합사 문제였어요.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잖아요. 자기 상황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대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집을 합치면서 고양이 문제를 1순위로 고려했던 것처럼, 도시를 개발할 때 동물한테 어떤 영향이 갈 것인지 등을 대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5월3일 고은영 당시 제주녹색당 도지사 후보가 제주시 한림읍의 한 유기견보호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복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제주녹색당
―철거민으로, 밀려남을 경험했던 것이 이 땅에 사는 인간 외 다른 생명체에 공감하는 데 영향을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거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에게서 시작된 괴로운 경험이 많이 투영되고 있어요. 제주 바다에는 남방큰돌고래가 살아요. 제주 연안 수백㎞를 돌 정도로 아주 활발한 동물이에요. 그런데 제주 연안이 해군기지를 비롯해 곳곳이 개발 중이니 지금 대정읍 앞바다에서만 서식하고 있어요. 다른 지역은 지나다닐 수는 있지만 새끼를 기를 수 없는 공간이란 뜻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서식처마저 해양풍력단지를 짓겠다고 해서 위기에 처했어요. 자본에 의해 밀려나는 도시 빈민의 삶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셈이죠.”
―도시와 농촌, 관광지가 한 섬 안에 존재하는 제주는 야생동물, 농장동물, 반려동물, 전시동물 등 많은 영역의 동물 문제가 뒤섞여 있지요.
“지금은 제도적인 부분이 축산 아니면 반려동물 이 두 가지에 초점이 맞혀져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얼마나 단편적인 정책인가요. 그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전시노동을 하고 있나요. 한라산이라는 국립공원이 있어 수많은 야생동물이 활동하는 건 어떻고요. 제주에는 로드킬이 정말 많은데 전수 실태 조사 결과를 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제주에 유일하게 있는 야생동물 구조센터는 야간에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아요. 2018년 예산을 확인하니까 여기 들어가는 돈이 연간 4억원이에요. 야간에 돌릴 수 없는 구조인거죠. 24시간 돌아가지 않는 야생동물 구조센터는 얼마나 무용한가요. 계속 틈새를 세분화해서 정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너무 많아요.”
지난 5월3일 고은영 당시 제주녹색당 도지사 후보가 제주시 한림읍의 한 유기견보호소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동물들과 인사하고 있다. 제주녹색당
―그럼에도 제주에서는 지금 대규모 동물 테마파크 건설 계획이 있다고요.
“2007년에 사업신청서를 낸 아주 오래된 사업이에요. 그 사이 사업 주체가 바뀌었고, 흑돼지, 말 등 제주 토종 동물과 곤충 등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였는데 지금은 51종 1200마리 동물을 들여오는 대형 동물원으로 주제가 바뀌었어요. 녹색당이 전국 회의를 한달에 한번씩 하는데, 이 사안을 말하니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지역도 그런 논의가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군요.
“지금 동물원, 전시노동 동물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호롱이 때도 그랬고, 지금 우리에게 동물원이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요. 근데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변화가 없어요. 동물을 산업 자본이나 관광 자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하고, 이 틈새에 대규모 자본이 파고 드는 거죠. 지자체에서 동물의 사회적인 선을 정하고, 국가는 아주 큰 우산이 되어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선거에서 동물들을 위한 약속을 내세우기도 했잖아요.
“선거 운동하며 제주의 아주 외진 곳에 있는 사설 유기견보호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동물에게 하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기자회견 제목이 ‘동물에게도 투표권이 있다면’이었어요. 제주에서 하루에 도살되는 동물이 2600마리 정도 된다고 해요. 흑돼지의 고장이잖아요. ‘두수’로 헤아려지는, 자신의 죽음을 목도한 그런 동물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제가 당선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는 전혀 다른 일을 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동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까지 이어진 걸까요.
“홍보대행사에서 4~5년 일했어요. 수많은 소비재들, 유니클로, 루이까토즈, 에르메스 등 의류 브랜드 뿐만 아니라 국책 사업과 도시 개발 사업도 홍보했죠.”
지난 5월 고은영 당시 제주녹색당 도지사 후보가 동물들(의 반려인으)로부터 받은 기탁금 인증 사진들.
―지금과 전혀 반대편에서 일을 한 셈이네요.
“지금 제가 입은 옷이 녹색당 점퍼인데, 구스 대체제를 쓴 옷이에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양질의 타조 가죽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질 좋은 가죽이 생산되는 어느 농장을 최근 인수했습니다’라고요. ‘저희 패딩 제품은 타사에 비해 오리 깃털과 솜털 비중이 얼마나 더 있다, 그럼에도 더 싸다’라는 얘기도 했어요. 일을 하며 딜레마를 느꼈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번 ‘현타’가 온 게, 홍보대행사 일을 그만 둘 즈음에 방글라데시의 한 의류 공장 붕괴 사고가 일어났어요. 제가 홍보하던 브랜드가 계약을 맺고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 무렵 저는 ‘한 해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을 부지런히 홍보하고 있었어요. 그 뉴스를 보고 내가 저런 상황에 부역했단 생각이 들면서 충격이 왔죠. 그러면서 착취의 구조 아래 소비 시장이 형성되고, 그 착취의 끝에는 동물이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어요. 그런 와중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 또는 동물원을 반대하는 사람에서 그런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사람으로 천천히 바뀌어 온 것 같아요.”
평화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
―‘긴 정치’를 고민하는 정치인이라고 스스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주민들을 만나며 때때로 벽에 부딪히는 경험도 했을 것 같아요.
“비자림이 베어져 나가는 도로 공사를 찬성하는 주민들을 만났을 때 그랬어요. 비자림로에 책정된 예산이 240억원이었는데, 이걸 개발 안 하면 주민 입장에서는 240억원을 놓치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같은 예산으로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마을을 다른 방식으로 가꾸는 등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그런 선택지를 던질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명한 개발과 불가결한 보존에 대해서 밸런스를 잡아가면서 제시를 하는 긴 정치가요.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생태민주주의 이런 어려운 말들이 많은데, 평화나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제 언어로 표현하자면 똑같이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인간 주체들도 목소리를 똑같이 나누는 데서 서로 배제되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거기 동물, 나무, 바위는 없잖아요. 어떤 공동의 합의를 위해서 의견을 내야하는데, 지금은 그 합의의 무게가 한쪽에 굉장히 몰려 있잖아요. 그걸 풀어내고 해체하는 작업들을 제주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