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처음 먹는 사과 한쪽…사육곰들의 긴 여행이 시작됐다

등록 2018-12-11 11:05수정 2019-01-10 18:25

[애니멀피플]사육곰 구출 프로젝트 ②
강원도 동해시 사육곰 농가에서 구출된 ‘반이’ ‘달이’ ‘곰이’
시민들의 힘으로 농가에서 임시보호소 동물원으로 이사가던 날
사육장에서 만난 반달가슴곰들은 끊임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하고 있었다. 사진 박선하 피디 salud@hani.co.kr
사육장에서 만난 반달가슴곰들은 끊임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하고 있었다. 사진 박선하 피디 salud@hani.co.kr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던 한파가 찾아온 지난 7일, 강원도 동해시의 한 사육곰 농장. 철창 한 귀퉁이, 콘크리트 바닥을 옴폭하게 다져서 만든 물구덩이에 고인 물은 얼어붙어 있었다. ‘특수견 사료’라고 적힌 빈 사료 봉투 몇 개가 철창 근처에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물도 밥도 없이 굶주린 6마리 곰들은 마리당 2평 남짓 할당된 공간에서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좁은 공간에 갇힌 스트레스로 정형행동을 하는 곰들은 1분당 40회 이상 철창 양끝을 오갔다. 이 농가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사육곰 구조 계획에 따라 3마리 반달가슴곰을 단체 쪽에 양도하고, 최종적으로는 사육곰 농장을 포기하는데 동의한 첫번째 농가다.

“조금만 기다려, 여기서 나갈거야”

해당 농장의 총 30마리의 반달가슴곰 가운데 6마리는 농장주 집의 뒷마당에 설치된 철창에 있었다. 나머지 24마리는 인근 농장에서 지낸다고 했다. 이날 녹색연합은 시민 모금액으로 구출하기로 한 ‘반이’,‘달이’, ‘곰이’를 데려나와 청주랜드동물원과 전주동물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세 마리 곰은 2014년 1월10일생인 남매들로, 태어나 단 한번도 철창 밖을 나서본 적이 없다. 하는 일이라곤 하루 1번 정량의 3분의1 가량되는 개 사료를 배식 받아 먹는 것 밖에 없었다.(관련 기사▶반이, 달이, 곰이는 철창 밖 삶을 꿈꾼다)

구출을 위해 마취총을 맞은 반달가슴곰. 녹색연합 제공
구출을 위해 마취총을 맞은 반달가슴곰. 녹색연합 제공
마취를 마친 후 들 것에 실려 무진동 차량에 실려 청주와 전주로 향했다. 녹색연합 제공
마취를 마친 후 들 것에 실려 무진동 차량에 실려 청주와 전주로 향했다. 녹색연합 제공
“달이야, 조금만 참아봐. 배고프지? 오늘 여기 나갈 거야.”

활동가 한 명이 소란한 틈에 달이에게 다가와 나즈막히 말했다. 고독한 일상을 깨고 이른 아침부터 활동가와 취재진 등 낯선 사람이 몰려드니 곰들은 흥분한 듯했다. 동물원 이송 시 마취가 계획되어 있어 24시간 금식을 한 터라 더욱 그랬다.

사람에 길들여진 사육곰들은 야생의 곰들과 다르게 사람을 먹이 주는 존재로 인식한다. 단체 쪽은 취재진에게 곰이 먹을 것을 찾아 철창 사이로 앞발을 내밀 수도 있으니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다. 곰들은 철창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간들에게 다가와 몸을 일으켜보기도 했다가 별다른 성과가 없으니 반대편 벽으로 돌아 걸어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청주랜드동물원 수의사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이 마취를 하고 곰들을 차례로 준비된 무진동 차량으로 이송했다. 항온, 항습 기능이 있는 이 차량을 타고 곰들은 청주와 전주로 생애 가장 긴 여행을 떠난다. 들것에 실려 여행을 떠나는 곰들은 이미 다 자랐지만 새끼곰 만큼 작았다. 좁은 철창에서 움직이는 동안에는 털이 수북해 그나마 커보였는데, 힘이 쭉 빠져 들 것에 실려나올 때는 매우 작고 말라보였다.

김정호 팀장은 “야생에서는 150kg까지 나가는 곰들인데, 이 친구들은 (체중이) 생각보다 적게 나간다. 한 3분의 2 혹은 2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녹색연합 임태영 활동가는 “곰들이 많이 먹지 못해 자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농장을 떠난 세 마리 곰 뒤로 남은 세 마리 가운데 유독 어쩔 줄 몰라하는 한 마리가 있었다. ‘들이’는 반이, 달이, 곰이와 같은 날 태어난 형제다. 마지막으로 마취총을 맞고 쓰러진 곰이 바로 옆 철창에서 지내던 친구이기도 했다. 내내 정형행동만 하고 있던 들이는, 곰이를 마취하는 순간에는 철창 천정까지 기어올라 높은 곳에 매달려 곰이가 마취총을 맞고 사람들에게 실려나가는 모습까지 빠뜨리지 않고 지켜봤다.

들이는 이 농장을 자주 드나들던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반이, 달이, 곰이, 세 마리 곰에 이은 ‘반달곰들’이라는 의미다. 녹색연합 측은 시민 모금액으로 4마리 남매를 모두 매입할 수 있었지만, 들이를 받아줄 임시보호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의사가 동행한 차량에 실린 곰들은 시간마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이동했다. 오전 10시에 동해시 농가를 출발해 오후 3시30분께 청주랜드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세 마리는 모두 깨어나 있었다. 무진동 차량 문이 서서히 열리고 취재진과 동물원 관계자들이 몰려들자 금속 상자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곰들이 “킁킁” 콧김을 뿜어내며 흥분했다. 앞발을 뻗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기보다 잔뜩 위축돼 있는 것으로 보였다.

수컷인 반이와 달이가 실린 두 개의 상자를 먼저 차량에서 내렸다. 두 마리는 청주랜드동물원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청주랜드동물원에는 1993년생, 1994년생, 2003년생 반달가슴곰 세 마리가 살고 있다. 곧장 이들과 합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1달 여 간의 적응 기간을 보낸다. 두 마리 또한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왔지만, 갑작스럽게 낯선 환경에서 합사할 경우 싸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울타리를 두고 대면 훈련을 하는 등 차차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청주랜드동물원은 늘어난 곰 식구를 보듬기 위해 내년 곰 사육 시설 보수를 앞두고 있다.

청주랜드동물원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은 곰들이 오래 시멘트 바닥만 밟고 살다보니 발에 상처와 염증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선하 PD
청주랜드동물원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은 곰들이 오래 시멘트 바닥만 밟고 살다보니 발에 상처와 염증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선하 PD
청주동물원으로 이동한 반달가슴곰이 태어나 처음 먹는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청주동물원으로 이동한 반달가슴곰이 태어나 처음 먹는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태어나 처음으로 먹은 사과 한 알

조금이나마 더 넓은 공간에서 반이와 곰이의 정형행동 등은 나아질까. 김정호 팀장은 “(고착화되어) 완전히 개선되긴 어렵겠지만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과 약물 처치 등을 하면 좋아지리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청주랜드동물원은 이날 두 곰에게 생닭, 달걀, 사과, 당근 등으로 첫 식사를 차려줬다. 평생 개 사료만 먹었던 곰들은 처음 먹는 사과를 아주 맛있게 먹고 닭을 입에 꼭 물고 한쪽 구석으로 달려갔다.

무진동 차량에서 대기 중이던 남은 한 마리, 곰이는 이날 저녁 6시30분께 전주동물원에 도착했다. 추운 날 영문도 모른 채 긴 여행을 했을 곰이를 위해 전주동물원 곰사에는 따뜻한 난로가 켜져 있었다. 곰이는 아웅이와 다웅이라는 이름의 반달가슴곰과 함께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세 마리 곰이 무사히 여행을 마친 날이기도 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적응 훈련을 잘 마쳐야 곰들은 기존 동물원의 곰들과 공간을 나눠쓰며 함께 지낼 수 있다. 세 마리 곰이 고단한 잠에 빠져들었을 이날 밤, 이 땅의 어느 곳에는 홀로 남은 들이를 비롯해 537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추위에 떨며 하루를 겨우 견뎠을 것이다.

동해·청주/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