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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학대받은 ‘누룽지’는 어디로 가야 할까

등록 2019-03-03 13:34수정 2019-03-03 14:25

[애니멀피플] 동물 학대자가 동물 키워도 될까
술 취한 반려인이 휘두른 칼에 맞아 상처 입은 개 ‘누룽지’는 현재 서울시 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술 취한 반려인이 휘두른 칼에 맞아 상처 입은 개 ‘누룽지’는 현재 서울시 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지난 2월2일 낮 서울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개의 비명이 공기를 갈랐다.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1살 비숑프리제 누룽지를 칼로 찌른 사람은 누룽지의 반려인 ㅇ씨였다. ㅇ씨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

누룽지는 경찰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를 거쳐 서울시 동물복지지원센터로 옮겨졌다. 누룽지는 오른쪽 목 뒤편에 약 7㎝의 자상을 입었다. 0.5㎝ 깊이로 몸을 가른 상처는 불행 중 다행으로 피부만 손상했다. 개를 넘겨받은 센터는 누룽지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경찰을 통해 ㅇ씨에게서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았다.

누룽지가 법적으로 ㅇ씨의 ‘재산’인 한 반려인의 동의 없이 치료 및 수술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센터 소속 수의사에게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은 누룽지는 지난 25일 <애니멀피플> 취재 당시 2주간의 치료를 마치고 회복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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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한 반려인이 “내 개 돌려달라”

센터 쪽은 누룽지가 회복을 마치면 입양 공고를 내고 지원자 면담을 한 뒤 새 가족을 찾아 줄 계획이었다. 누룽지는 사람에게 공격받았지만 트라우마가 심하지 않았고 어린 개라 몸도 마음도 금세 회복해갔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뒤 아침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설 연휴 직후였다. 누룽지의 반려인이라고 밝힌 ㅇ씨는 자신이 기르던 개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소유권 포기 각서를 쓴 것은 기억하지만,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누룽지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동물보호법상 소유자로부터 학대를 받아 적절한 치료 및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은 시·도지사의 권한으로 학대 재발 방지를 위해 격리를 할 수 있다.

현행법상 동물을 학대한 반려인의 소유권을 박탈할 근거가 없다. 한 핏불이 철창 밖을 지켜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현행법상 동물을 학대한 반려인의 소유권을 박탈할 근거가 없다. 한 핏불이 철창 밖을 지켜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보호조치 중인 동물에 대해 소유자가 보호 비용을 부담하고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동물을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학대자인 ㅇ씨가 보호 비용을 내고 데려가겠다고 하면 돌려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센터는 사건 발생 당시 ㅇ씨가 쓴 소유권 포기 각서에 의지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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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 반려동물들

센터 쪽은 ㅇ씨에게 법적 검토를 마친 뒤 반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ㅇ씨와 직접 통화한 노창식 서울시 동물복지시설 관리팀장은 “반려인이 센터 쪽에서 누룽지 소유권을 가져갈지 말지, 빠른 판단을 해주길 원했다. 그는 ‘나는 개가 필요한 사람이고 누룽지를 돌려받지 못할 경우 다른 강아지를 사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사건과 관련해 서국화 동물권연구 변호사단체 ‘피엔아르’(PNR) 공동 대표는 “술김에 소유권 포기 각서를 썼어도 당사자가 각서를 쓴 것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진의의 표현이다. 이걸 무효로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직접 소송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ㅇ씨와 마지막 통화에서 “새 개를 사겠다”는 말을 들은 노 팀장은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누룽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했지만 다른 개가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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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와 학대의 반복

실제로 학대 현장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단체들은 동물보호법 위반을 한 학대자가 피학대견의 반려인일 경우 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어 애로를 겪는다.

지난해 6월 부천에서 체중이 1㎏에 불과한 상태로 발견된 프렌치 불도그가 애니멀호더로 추정되는 반려인에게 지속해서 학대를 받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반려인은 이전에도 동물 학대 행위로 이웃과 갈등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나연 동물권단체 카라 활동가는 “사건 이후 반려인을 지속해서 관찰했는데, 그가 다시 동물을 구매한 것으로 확인했으나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며 답답해했다.

반려인에게 학대받은 동물에 보호조치를 취해도, 반려인 보호 비용을 지불하고 반환 의사를 밝히면 돌려줄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려인에게 학대받은 동물에 보호조치를 취해도, 반려인 보호 비용을 지불하고 반환 의사를 밝히면 돌려줄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자유연대는 2017년 12월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개를 방치해 굶겨 죽인 사람을 고발했다. 당시 해당 반려인은 구청을 찾아가 보호조치 중인 개들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6개월 뒤 그는 다른 일로 구치소에 수감돼 반려견들을 관리하지 못해 3마리 이상을 또 굶겨 죽였다.

이 사건 이후 동물자유연대는 상습 동물 학대 행위자에 대한 강력 처벌과 동물 학대자의 소유권 제한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서국화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 학대를 한 사람이 동물 관련 영업을 할 경우 등록이나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이 경우처럼 동물을 이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자 생명으로 본다면 당연히 그에 맞는 소유권 제한 규정을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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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쉽게 사는 구조, 문제의 핵심”

김나연 활동가는 “모든 동물 문제의 근간에 동물을 쉽게 살 수 있는 구조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이 생명이 아닌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물건으로 다뤄지고 그로 인해 유기와 방치, 학대에 쉽게 노출되는 구조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이와 관련해 피엔아르 등은 동물 학대자가 일정 기간 소유권을 갖지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입법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구의 것도 아닌’ 누룽지는 3월 중순께 새 가족을 만나 ‘견생 시즌 2’를 열 예정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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