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동물해방’을 꿈꾸는 청년들. 왼쪽부터 이지연, 윤나리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 전범석 소식 공동대표.
서울 용산구 남산 중턱의 동네 해방촌에는 ‘동물해방촌’이라는 곳이 있다. 간판도 없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동물해방촌이라 부른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채식·사찰 음식 레스토랑 소식은 해방촌 고개 어귀에서 나란히 붙어 지낸다. 소식에 손님이 많으면 동물해방물결이 사무실을 내어주고, 동물해방물결에서 캠페인이라도 할라치면 소식이 도시락을 싸서 지원한다. 동물해방물결은 동물권 운동의 최종 종착지가 ‘비건’이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두 곳의 공감대는 여기에 있다. 동물권 단체와 식당은 어떻게 만나서 공생하게 되었을까. 8일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윤나리 공동대표와 소식의 전범선 대표를 동물해방촌에서 만났다.
동물권 운동을 하는 단체와 식당이 연대 형식으로 운영된다는 게 독특하네요. 어떻게 함께 하게 된 건가요?
전범선(전): 사실 이지연 대표랑 저는 10년 지기 친구예요.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고, 동물해방물결을 만들 때부터 관심 있게 보고 있었는데 두 대표처럼 상근 활동가로 뛰어들진 못하고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어요.
세 분이 생각하는 비건이란 무엇일까요?
이지연(이): 저희는 같은 말에 한국어 단어가 있으면 그걸 쓰고 싶은데, 비건은 대체할 표현을 찾기가 어려워요. 비건이란 게, 번역하면 완전 채식 정도로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채식이라고 하면 먹는 행위잖아요. 비건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 쓰는 것 모두 포함되는데 그걸 한국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워요. 제가 생각하기에 비건은 제 생활 양식에 있어서 동물성 물건을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동물 착취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동물 착취 불매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불매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완전무결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완전하다, 아니다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렇게 동물 착취를 하는 산업 구조에 대한 반발, 그걸 사지 않음으로써 뜻을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채식도 불매 운동의 일부인 셈이죠.
동물해방물결은 동물 학대 종식을 바라며 다양한 캠페인을 벌인다. 지난달 21일, ‘동물임의도살금지법’ 통과 촉구를 위해 식용 개 이동 트럭을 형상화한 ‘악당 트럭’ 퍼포먼스를 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한국에서 비건을 실천하기가 쉽지만은 않지요.
윤나리(윤): 많은 사람이 완벽성을 높은 장벽으로 생각하는데, 그래서 비건 지향이라고 얘기하는 게 더 안전할 거 같아요. 한국에서 비건이라고 하면 제 주변만 둘러봐도 제가 거의 처음이거든요.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잘 안 알려져 있는데, 제가 실천함으로써 더 많이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이: 입는 것, 바르는 것 모두 내가 비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생활 양식에서 동물 착취 제품을 쓰는 게 0%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각 개인의 생활은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예컨대 요즘은 물감에도 연지벌레를 쓴 원료가 들어가니까 난감할 때가 많아요. 완벽성에 기대면, 100% 비건을 못했을 때 나는 비건이 아닌가 이런 자괴감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 것들로부터 좀 자유롭게 시도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건 지향인인 셈이죠. 비건 지향인이 더 많아지고, 그리고 그걸 지향하는 방향이 가능하면 99%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비건을 지향하려 한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 비건 양식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큰 플랫폼이 없어 이거 살 땐 여기 가고, 저거 살 땐 저기 가고 하게 돼요. ‘비건위키’라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국내 다른 동물단체 활동가 분이 운영하시는 거라고 들었어요. 비건 제품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시중에서 쉽게 구하는 비건 제품이 무엇인지 등을 정리해뒀어요. 이외에도 ‘채식한끼’라는 앱은 비건 식당을 찾을 때 편하고요. 해방촌에 있는 ‘비건스페이스’라는 곳도 동네 슈퍼처럼 비건 음식부터 샴푸, 린스, 비누까지 다 팔아요. ‘비거트’, ‘비건팜’ 등도 자주 애용해요.
윤: 이렇게 확장되다 보면…. 얼마 전에 저희 세 명이 미국 LA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거기서 불편한 걸 거의 못 느꼈어요. 대형마트에만 가도 웬만한 비건 제품이 있어서 다 해결이 됐거든요. 그런 시점까지 오면, 우리도 비건이 가족이든 누구와도 생활하기 쉬워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사찰 음식을 재해석한 소식도 비건 문화를 알리는 측면이 있죠.
전: 해외에서 한국 사찰 음식에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경험했어요. 한국의 사찰 음식이야말로 비건 푸드인데,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고급화되어 있는 경향이 있었어요. 시중의 비건 레스토랑은 다 샐러드, 샌드위치 위주이고요. 왜 그럴까, 뭔가 다른 건 없을까 하던 중에 같이 할 멤버들을 만나게 됐죠.
록 밴드 보컬(전범선), 디자이너(박연), 파인다이닝 요리사(안백린)가 힘을 합쳐 소식을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전: 박연은 제 지인의 소개로 만났어요. 그 사람 말이 너희 둘 다 미국에서 공부했고, 한복 입고 다닌다,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2017년 11월 박연씨가 경리단길에서 열던 전시회에 찾아갔는데 말이 잘 통했어요. 마침 박연이 사찰음식 대중화와 현대화에 관한 프로젝트를 했다고 얘기했어요. 그때 막 동물해방물결이 발족했고, 이 단체도 동물권 운동에서 채식으로 최종적으로 가야 한다,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 하고 있었는데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작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러던 중에 동물해방물결이 해방촌에 사무실을 얻었어요. 마룻바닥이 깔린 공간을 보고 여기서 뭔가 해보자, 생각했죠. 안백린 셰프는 비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재원이었는데, 이 친구를 초빙해 사찰 음식 콘셉트로 팝업 레스토랑을 열어보자고 했죠. 동물해방물결 사람들이 퇴근하고 저녁에만 문을 열었어요. 임시로 하루 해본다는 게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됐죠. 저는 요식업계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마 동물해방물결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뛰어들지 않았을 거예요.
사찰 음식을 재해석한 비건 레스토랑 소식은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소식서울 제공
소식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전: 콩갈비가 인기가 많고요. 나물에 싸인 송이버섯도 맛있어요. 노루궁뎅이 버섯 꼬치도 많이 드시고요. 사찰 음식을 표방하지만 종교적으로 불교와 관계된 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오신채를 쓰고, 전통주도 팔아요.
소식의 메뉴도 그렇지만, 운영에서도 비건을 지향한다고요.
전: 동물권, 순환의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려 해요. 가능하면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을 쓰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게 하는 식으로 노력해요.
그럼 손님들도 음식을 남기면 안 되나요?
전: ‘발우’라는 메뉴가 있어요.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그릇에서 따온 건데, 마음 같아선 (발우공양 하듯) 설거지까지 하셨으면 좋겠지만…(웃음). 쉽지 않죠.
공감대가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활동을 하는 단체와 식당이 만나서 얻는 시너지는 무엇인가요?
이: 이제 막 시작했지만, 앞으로 점점 시너지를 더 낼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단순하게는 소식에서 얻은 수익 가운데 10%로 저희를 후원하기로 했어요.
전: 아직은 적자로 못 주고 있지만요.
윤: 저희가 캠페인할 때 박연 디자이너가 작업을 많이 도와주기도 하고요, 이벤트를 할 때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상품으로 마땅한 게 없었는데 소식 식사권 등을 제공하면 사람들에게 비건에 대한 인식도 높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