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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19년 동안, 두발로 서고 구르고…쇼장의 코끼리들

등록 2019-05-13 09:44수정 2019-12-31 09:34

[애니멀피플]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① 점보빌리지의 쇼 코끼리들
코끼리는 수시로 두 발로 서며 야생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코끼리는 수시로 두 발로 서며 야생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는 관광지라는 이름 아래 시대착오적인 동물 쇼가 매일, 매 시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끼리, 돌고래, 바다표범, 원숭이, 흑돼지, 거위 등 여러 동물이 쇼에 동원됩니다. 동물들은 길게는 십수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생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강요받으며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현재 제주 조천읍에는 야생 동물 수천 마리를 곶자왈 인근의 조용한 마을에 들여오려는 대형 사파리 공사가 계획 중입니다. <애니멀피플>은 4월29일~5월1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쇼, 전시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러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노예 동물들의 섬에 가다’를 네 차례에 이어 싣습니다.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① 19년 동안, 두발로 서고 구르고…쇼장의 코끼리들

② ‘돌고래 체험’ 어디에도 교감은 없었다

③ 흑돼지·거위들의 아찔한 질주

“챙챙챙챙.”

코끼리는 어설픈 탬버린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코끼리 친구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코끼리 친구들을 맞아주세요!” 녹음된 사회자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코를 축 늘어뜨린 코끼리가 무대 뒤에서 나왔다.

제일 앞에 선 코끼리가 코를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코끝에 쥔 탬버린으로 콧잔등을 툭툭 치며 옹색한 연주를 시작했다. 뒤를 이어 몸을 화려하게 치장한 다섯 마리 코끼리가 손에 손을 잡듯 앞 코끼리의 꼬리를 코로 붙들고 줄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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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 서서 걷는 코끼리

5월1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점보빌리지. 노동절이었던 휴일 오전 10시30분, 이날의 첫 쇼를 보기 위해 1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쇼는 하루 4차례(동절기 3차례), 회당 50분씩, 2~3시간 간격으로 이어진다.

평소 중국 관광객이 많은 듯 무대 양쪽에 건 화면으로 중국어 자막이 올라왔다. 이날 오전 관객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는데, 절반 정도는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온 단체 관광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를 대동한 가족이었다.

눈을 부릅 뜬 늙은 코끼리가 야윈 다리로 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눈을 부릅 뜬 늙은 코끼리가 야윈 다리로 제 몸을 지탱하고 있다.

“으라차차.” 사회자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기합을 넣자 코끼리가 갑자기 두 발로 몸을 지탱해 일어섰다. 그렇게 일어선 코끼리들은 사람처럼 두 발로 직진해 작은 원형 테이블을 딛고 섰다. 수년째, 매일 반복되는 쇼에 코끼리들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코끼리들은 수시로 직립 보행했다.

오래전 유행한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오자 어느 코끼리는 그 선반을 붙들고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았고, 어느 코끼리는 두 발로 선 채 코로 훌라우프를 돌렸다. 사람처럼 허리를 펴고 선반 위에 앉는가 하면, 앞발로만 몸을 지탱한 채 엉덩이와 뒷다리를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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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보기 어려운 쑈”

관객들도 무대에 동원됐다. 코끼리들은 무대에 오른 관객들에게 코와 발로 안마를 해주고, 가마 태우듯 실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관객과 함께 하는 무대의 하이라이트는 코끼리가 일렬로 누워 있는 다섯 팀의 관객을 발로 넘어 지나가는 행위였다. 코끼리가 제 발을 사람 몸 위에 올릴 듯 말 듯 하다 지나가길 반복했다. 일부 관객은 아이와 함께 나와 바닥에 누웠다. 관객과 코끼리의 거대한 발 사이에는 얇은 천 조각 한 장뿐이었다.

쿵작쿵작 흘러나오는 음악은 코끼리가 사람을 내팽개치거나 발로 밟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지 못하게 했다. 이 외에도 코끼리들은 50분 내내 야생에서 하지 않을 여러 행위를 했다. 코로 볼링을 하고, 축구와 농구를 했다. 관객을 향해 얼굴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 듯한 행동을 하고, 옆으로 갑자기 쓰러지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쇼가 끝난 뒤 관람객들과 만나는 시간
쇼가 끝난 뒤 관람객들과 만나는 시간

점보빌리지는 이 쇼를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놀랍고 즐거운 쇼, 코끼리들의 재롱잔치”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일부 관객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단체 관광객 무리에 섞인 한 할머니는 “아이고 잘한다”라며 박수를 치면서도 이내 “저렇게 잘하려면 연습하면서 얼마나 두드려 맞았을까” 한숨을 내쉬며 모순된 감정을 토로했다.

쇼는 관객들이 무대 안으로 뛰어들어가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때가 낀 싸구려 금박 천 조각을 몸에 두른 코끼리는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교감도 없이 아득한 시선으로 눈을 부릅뜬 채 서 있었다. 공연장의 출구는 자연스레 트래킹장으로 이어졌다. 무대 뒤편에 꾸며진 정원을 코끼리를 타고 5~6분가량 세 바퀴 도는 코끼리 트래킹은 쇼 시간과 상관없이 상시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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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장 밖에선 흥분한 코끼리들

트래킹장에는 19년째 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47살 암컷 ‘메냐’도 있었다. 메냐는 점보빌리지 개장 당시 2001년 라오스에서 임대 형식으로 들여온 9마리 코끼리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개체다. 사람의 검버섯처럼 콧등과 귀가 하얀 반점으로 뒤덮인 메냐가 목에 쇠사슬을 건 채 초록색으로 칠한 시멘트 바닥 정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트래킹장 옆 계류장에는 쇼를 마친 코끼리들이 다음 쇼를 위해 대기 중이었다. 울타리 안에 있던 5마리 코끼리 가운데 3마리는 1m도 안 되는 쇠사슬에 한쪽 발이 묶여 있었다. 무대 밖의 코끼리들은 쉽게 화를 냈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코끼리들은 콧소리를 내고, 울부짖으며 울타리 외곽으로 다가왔다. 발이 묶여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코끼리들은 더 광분했다. 사육사가 달려 나와 라오스 말로 소리를 치니 코끼리들은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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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노동에 저체중 우려”

수년째 코끼리 해방을 주장해온 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 전채은 대표는 이날 촬영한 코끼리들의 사진과 영상 자료를 확인하고 코끼리의 건강 상태를 염려했다. 전 대표는 “등뼈 모양이 드러날 정도로 말랐다. 먹이 공급이 제대로 되는지 의심이 되며 가혹한 노동으로 인해 정상 체중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끼리들의 난폭한 성향에 대해서는 “사육사들의 말은 고분고분 들었지만 공연장 밖에서 관람객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사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 전문 저술가인 버지니아 모렐은 동물의 인식과 감정을 들여다본 책 <동물을 깨닫는다>에서 코끼리가 동료애와 가족애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등 인간과 다름없는 감정의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모렐의 말을 토대로 한다면, 점보 빌리 지의 코끼리들은 19년간 몸도 마음도 결박당한 채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쇼에 동원되고 있다.

제주/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② 쇼·체험에 혹사당하는 돌고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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