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미바튼 호수의 기적
5. 지구의 운명같은, 구슬똥
5. 지구의 운명같은, 구슬똥
미바튼 호수 바닥에 감춰진 기적 같은, 완벽한 공 모양의 녹조류 구슬똥. 아르니 에인아르손, 위키미디어 코먼스
완벽하게 지구를 닮은 녹조류 구슬똥은 특별한 형태의 녹조류이며 라틴어 학명은 아에가그로필라 린나에이(Aegagropila linnaei)이다. 아에가그로필라는 가축의 위장 안에서 볼 수 있는 섬유로 된 구슬을 말하며 린나에이는 칼 폰 린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린네는 18세기 스웨덴의 생물학자로서 동물과 식물의 범주를 나누고 속과 종을 분류하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이명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린네가 생물의 진화연구에 기여한 것은 전혀 없었고, 다만 마치 그가 노아의 일을 도와주기라도 한 듯 신의 피조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똑같은 모양을 한 구슬똥엔 인간들이 살고 있는 행성에 대한 사랑이 무의식적으로 또는 완전히 의식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항상 녹색일 수 있는 이유 거의 모든 식물은 체적에 비교하여 가능한 넓은 표면을 발달시켰고 이 때문에 나뭇잎은 대부분 두께가 얇다. 공 모양의 식물은 체적과 비교해볼 때 크게 자랄수록 표면은 작아진다. 공 모양 형태의 식물이 광합성작용을 하기엔 불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모양의 식물들은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공 모양의 식물은 침전물이 많이 쌓여 진흙과 같은 호수의 바닥에서 살기에 적당하다. 구슬똥의 형체는 호수 바닥의 침전물이 제 몸에 쌓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호수 바닥을 이동하면서 자기 몸에 쌓인 불순물을 닦아내는 것이다. 구슬똥은 물결에 따라 몸을 자유자재로 회전시키면서 몸 전체가 빛을 받을 수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항상 녹색을 띠고 있다. 우리가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 호수로 소풍을 갔던 날은 한여름의 환상적인 날이었다. 호숫물은 밑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물이 이렇게 맑게 보이는 날은 미바튼에서 일 년에 겨우 며칠밖에 없을 정도로 드물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그날 우리는 물속을 통해 호수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전혀 몰랐던 세계가 새롭게 열리는 것 같았다. 눈앞에 구슬똥의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자연이 만든 구슬똥 천국 같았다. 구슬똥은 두세 겹의 층을 이루어 쌓여 있었다. 맨 아래에 있는 구슬똥은 물결이 세게 일어 층이 섞이지 않으면 죽고 만다. 그런데 이들은 빛을 받지 않고도 여러 달을 지탱한다. 구슬똥은 살아남기 위한 영양분을 저장할 수 있고 엽록체가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햇빛이 화창한 여름날 서로를 껴안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물결을 따라 가볍게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_______
구슬똥이 미바튼 호수로 돌아오는 날 구슬똥은 녹색의 모든 좋은 것, 생태학적으로 싱싱하고 푸르른 지구에 대한 상징이다. 내가 맑디맑은 물속에서 어마어마한 구슬똥을 본 지 일 년이 지나, 정확히 말하면 2006년에 미바튼의 구슬똥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구슬똥은 호수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미바튼에서 마지막으로 구슬똥이 관찰된 때는 2014년이다. 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구슬똥 집단서식지가 완전히 사라진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그사이 구슬똥은 생태계가 아주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해주는 상징이 되었다. 나는 멜랑콜리한 기분으로 수년간 키워온 구슬똥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구슬똥이 다시 미바튼 호수로 돌아올 날이 있을까? 그런 희망은 그저 헛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귀한 생물이 자신들의 서식지에서 멸종하는 것을 아무런 대책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구슬똥은 담수호의 건강함을 알려주는 척도이다. 구슬똥은 오염에 아주 민감하고 외부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이들은 생태환경이 개선되면 구슬똥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남조류의 강력한 번식을 억제함으로써 일조량이 개선되고 호수 바닥이 지금보다 훨씬 맑아지면 구슬똥은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모든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던 시절 아르니 에인아르손이 쓴 구슬똥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할 것이다. 호수 속 구슬똥은 얌전히 몸을 움직여 부드러운 화단 위를 굴러간다. 구슬똥은 고요한 밤이 산꼭대기에 걸릴 때까지 떠돌아다닌다. 구슬똥이 꿈꾸는 행복한 삶. 사랑과 내면의 아름다움. 우리도 또한 그런 것을 꿈꾼다. 글 운누르 외쿨스도티르 <미바튼 호수의 기적> 저자, 번역 서경홍 사진 출판사 ‘북레시피’ 제공, 그림 아르니 에인아르손
구슬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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