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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가장 슬픈 동물원’이 존재하는 이유

등록 2019-09-09 09:33수정 2019-09-09 09:57

[애니멀피플] 신소윤이 만난 애니멀피플
영화 <동물, 원> 왕민철 감독·김정호 수의사
어린 시절 사육사들에게 키워져 동물원 직원들과 교감이 남다른 표범 ‘직지’. 시네마달 제공
어린 시절 사육사들에게 키워져 동물원 직원들과 교감이 남다른 표범 ‘직지’. 시네마달 제공
물범이 태어나고, 나자마자 죽을 뻔한 유황앵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고, 노후한 몸을 이끌고 전시장에 기대 있던 할아버지 호랑이는 생을 마감했다. 5일 개봉한 영화 <동물, 원>의 배경이 된 청주동물원에서는 그렇게 한 해에만 몇 마리의 동물들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나고, 생명을 다시 얻기도 했다.

영화 <동물, 원>은 동물이 전시되는 공간, 한편으로는 멸종위기종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공간, 사람과 야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동물원을 그린다.

동물원 밖 사람의 시선으로 동물원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 본 <동물, 원>의 왕민철 감독은 “동물원을 미화하기도, 그렇다고 비참하게 그리기도 싫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는 쓸쓸한 눈으로 울타리 밖을 보는 사자를 비추면서, 갓 태어난 새끼 물범이 물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며 종일 교대 근무를 하는 동물원 직원들을 동시에 조명한다.

영화 <동물, 원>의 왕민철 감독과 김정호 수의사.
영화 <동물, 원>의 왕민철 감독과 김정호 수의사.
영화에 출연한 수의사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영화에서 “(야생동물들이) 하루를 살아도 밖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동물해방론자에 가까운 이다. 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왕 감독의 작업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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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반대론자였던 수의사

―오랜 시간 꼼꼼하게 동물원을 들여다봤는데, 왜 여러 동물원 중에 청주동물원에 유독 주목했나요?

왕민철(왕): “햇수로 총 4년을 촬영했어요. 처음에는 청주미술관에서 하는 공연 기획 작품의 하나로 무성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만난 벨기에 출신 음악가가 청주동물원을 얘기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물원’이라고 하더라고요. 보니까 뭔가 제가 알던 동물원의 느낌이 아니었어요. 아주 작고 오밀조밀한 느낌도 있고, 산을 따라 조성된 것도 특이하고, 시설이 아주 오래되고. 김정호 수의사님과 첫 인터뷰에서 자기는 동물원 반대론자라고 했던 것도 인상적이었고요(웃음).”

청주동물원에서 관람객이 호랑이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하고 있다. 시네마달 제공
청주동물원에서 관람객이 호랑이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하고 있다. 시네마달 제공
―촬영을 끝내고 다시 본 동물원은 어땠나요?

왕: “동물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나 감정은 보통 두 개로 나뉘잖아요. 소풍 가는 놀이공원 같은 밝은 이미지랑 동물을 가둬 놓고 키워놓는 공간이라는 데 대한 반감. 개인적으로 저는 (동물원에) 좋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영화를 다 마치고 돌아보니 그동안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반감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동물원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특별히 관심도 없으면서 싫어하기만 한 거죠. 근데 제가 촬영하면서 보니까 그냥 무작정 안 가는 것보다 현실에서 조금씩 도움이 되는 변화부터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사육 곰에게 해먹 달아주는 게 얼마나 큰 이야기가 되겠어요. 하지만 실제 사는 아이들에게는 엄청 큰 변화거든요. 이런 부분을 사람들이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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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사회의 수준”

―스웨덴의 한 작가는 동물원에 대해 “가장 잔인한 동물은 창살 뒤에 있는 게 아니라 창살 앞에 있다”고 썼다고 해요. 수의사님은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얘기하는 곳이어야 하지, 동물을 조그만 우리에 가둬놓고 돌 던지고 놀리는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기도 했죠. 어려운 관람객을 만났을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왕: “동물을 막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가서 소리 지르고 무언가를 던지고, 관람료를 냈으니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 텐데, 사회적으로 이런 행동이 용인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동물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개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 사회의 수준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청주동물원의 물범. 사육사들은 좁은 수조가 늘 마음에 걸린다. 시네마달 제공
청주동물원의 물범. 사육사들은 좁은 수조가 늘 마음에 걸린다. 시네마달 제공
―동물원도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공간이다 보니 수의사, 사육사들 사이에서 동물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다른 점도 흥미로웠어요. 김정호 수의사님은 동물해방에 가까운 쪽인 것 같던데요.

김정호(김): “동물원에서 녹을 먹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직을 와해하자고 하는 건 아니지만, 감독님을 처음 만난 2015년에는 시설이 굉장히 열악했어요. 청주동물원은 (공영동물원이 한창 만들어지던 시기의) 끝물인 1990년대에 만들어졌고, 이 상태로 이어져 오고 있었어요. 동물 관리에 집중하는 수의사로서 동물에게 좋은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야생 환경이 앞으로 좋아질지 아닐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좋아진다면 야생에 사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생겼어요. 정부에서 압수한 사육용 반달가슴곰들을 데리고 왔잖아요. 그들을 위한 ‘곰생츄어리’ 같은 보호기관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서식지보존기관으로서 멸종위기종 보존 역할의 한 축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방향성이 생겼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동물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1999년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 지난해 생을 마친 수컷 호랑이 ‘박람이’. 디스크 치료 과정에서 명을 달리 했다. 시네마달 제공
1999년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 지난해 생을 마친 수컷 호랑이 ‘박람이’. 디스크 치료 과정에서 명을 달리 했다. 시네마달 제공
영화에 따르면 1980년대 한국에서는 유행처럼 지역마다 공영동물원이 들어섰다. 당시에는 동물 행동을 깊이 이해하는 건축·설계 전문가가 부재했기에 동물의 삶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전시 위주의 구조물만 들어섰다. 1997년 문을 연 청주동물원도 이런 유행에 휩쓸려 지어졌고, 그 공간에 수백 마리의 동물이 채워졌다. 이들은 여전히 열악한 시설에서 생을 이어간다. 2017년 여름, 청주동물원은 사육사와 수의사들의 끈질긴 요청 끝에 표범 방사장을 넓히는 공사를 했고, 2019년에는 곰 사육장을 전면 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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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 해먹이 바꾼 변화

―영화에 출연한 권혁범 사육사는 “좁은 방사장을 넓히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거니까, 그 안에서 행동 풍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어요. 동물원 동물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정신적 스트레스인데요. 행동 풍부화로 환경을 개선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김: “공간이 아주 넓고 서식지 같은 환경이면 행동 풍부화 자체가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저희처럼 좁은 공간일수록 행동 풍부화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해요. 왕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곰사에 해먹을 설치한 적이 있어요. 별로 할 일이 없던 맨바닥이었는데, 곰들이 해먹만 생겨도 거기서 밥을 먹고, 눕고, 놀기도 하고 굉장히 다용도로 잘 쓰더라고요. 수면의 질까지는 모르겠지만 시시티브이로 저희가 확인을 해보면 더 편안해 보이기도 해요. 그러면서 움직임이 다양해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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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없는 게 이상적이지만…”

―충북야생동물센터와 독수리와 동물원 독수리의 운명을 맞바꾸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물원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요. 한국 동물원에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면 무엇이 있을까요?(충북야생동물센터에서 구조된 부리가 비뚤어진 독수리가 구조·치료 후 야생 생존 가능성이 낮아 안락사 위기에 놓였는데, 이 독수리를 동물원에서 받고 동물원 독수리를 센터로 보내 야생 적응 훈련을 시켰다)

왕: “사실은 동물원이 없는 게 제일 이상적일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말은 좀 어폐가 있는 것 같고, 청주동물원이 (지금 처한 상황에서) 이상적으로 바뀐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곰생츄어리 사업 같은 걸 가져와서 이런 걸 동물원의 영역에서 흡수하면 좋겠어요.”

물범 가족 세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시네마달 제공
물범 가족 세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시네마달 제공
김: “한국 기후에 맞는 동물들이 한국 동물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물원이 토종 동물 생츄어리가 되면 어떨까요. 관람객들이 다른 외국 동물이 보고 싶다면, 요즘에는 워낙 증강현실 등 기술이 발달하기도 했고요.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대체할 수 있는 좋은 영상이 많으니까요. 그런 걸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을 동물원에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청주동물원은 국내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삵의 인공 번식 시술을 하는 청주동물원 수의사들. 시네마달 제공
청주동물원은 국내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삵의 인공 번식 시술을 하는 청주동물원 수의사들.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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