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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제주는 우연히 노루를 만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등록 2019-11-04 10:24수정 2019-11-06 18:39

[애니멀피플] 제주 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며/고은영
대명이 제주에서 동물원 사업을 철회한다고 해도, 이 돈과 아이디어는 다른 지역을 향할 수 있을 겁니다.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 싸움은 제주뿐 아니라 어디에도 신규 동물원과 수족관이 들어서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대명이 제주에서 동물원 사업을 철회한다고 해도, 이 돈과 아이디어는 다른 지역을 향할 수 있을 겁니다.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 싸움은 제주뿐 아니라 어디에도 신규 동물원과 수족관이 들어서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주 여행자 시절, 사려니숲길을 걷다 작은 물길을 건널 무렵이었습니다. 숲 안쪽에서 물을 마시던 작은 노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몸이 굳고 머리가 하얘지더군요. 혼자 걷던 차였기에, 노루와 저는 서로 몸이 굳어 잠시간 눈빛 교환을 했습니다.

‘저게 노루구나! 내가 움직이면 도망갈 거야! 노루는 야행성이라던데 거기서 뭐 하냐! 아기인 것 같은데! 주변에 어미가 있나! 어떡하지!’ 저의 동공지진을 눈치챘는지 노루는 이내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제주에 이주한 뒤 수많은 노루와 조우했지만, 맨 처음 노루를 마주친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하겠지요.

제주에는 많은 동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루는 우리나라의 개체 대부분이 제주에 있습니다. 노루는 ‘컹! 컹!’하고 짖습니다. 선인분교 아이들은 밤마다 그 소리를 듣는다고 해요. 집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노루를 자주 마주친다고 합니다. 선인분교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입니다. 선인분교는 제주 선흘2리에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는 제주동물테마파크가 바로 이곳, 선흘2리 마을 안에, 선인분교 500미터 옆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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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오는 동물들이 너무 불쌍해요”

제주동물테마파크는 58만㎡(약 17만평) 부지에 호랑이와 사자, 코뿔소 등 동물 1000여마리 규모의 동물원, 리조트 등이 들어서는 사업입니다. 사업자는 대명리조트로 잘 알려진 대명그룹 ㈜대명홀딩스의 자회사입니다. 극심한 주민 반대와 절차적 하자에도 최근 모든 사업 심의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사실상 도지사의 승인만 남은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선흘2리 주민들의 반대 활동이 불붙은 상황입니다.

람사르습지도시인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주변에 동물테마파크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선흘2리 주민과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선훌2리 마을회 제공
람사르습지도시인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주변에 동물테마파크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선흘2리 주민과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선훌2리 마을회 제공

맨 처음 아이들은 제주교육청 교육감과 제주도지사에게 편지를 써서 전달했습니다.

“교육감님께. 제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요, 동물원이 생겨서입니다. 저희에겐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중략) 끌려오는 동물들이 너무나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새끼 사자를 가져가서 우리에 가둔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직접 피켓을 만들어서 학교에 가지 않고 시내에 나와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고요. 다른 지역의 교육청들에서 학교 인근 축사 등을 유해 환경으로 규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제주의 교육감은 학부모들과의 면담에서 사업은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주도지사는 아직도 묵묵부답입니다. 그래서 선인분교 아이들은 예정부지 앞에서 정치와 대명의 입장 변화를 호소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지요. 기사에는 순진한 ‘아이들을 내세우지 마라,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냐’ ‘공부나 해라’는 악플이 쏟아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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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이 부른 비극

어른들도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마을 총회의 결정 없이 사업자와 상생협약을 맺은 마을 이장을 임시총회를 열어 해임하고, 동물테마파크를 반대하는 새로운 이장을 선출했습니다. 침묵하는 도의원들과 시장을 압박하고 일깨웠습니다. ‘주민 반란’이 일어나자 사업이 너무 막바지라 자포자기했던 단체들, 도의원들을 포함해 제주시장까지 이 사업의 적절성에 대해 따져 묻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역과 중앙 언론이 관심을 크게 보이자 최종 승인이 늦어지며 사실상 ‘임시 보류’ 국면에 들었습니다. 자,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주동물테마파크 조감도
제주동물테마파크 조감도

21세기 대명천지에, 애초에 왜 사업 추진이 가능했는지 살펴볼까요? 잠시 심각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주의 가장 큰 자산인 생물 다양성이 국제자유‘투기’도시를 조성하는 수단이 되고 있고, 동시에 위협 받는 위중한 상황이거든요.

제주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한 특별한 곳입니다. 300조가 넘는 방대한 이 상위법은 전국 곳곳의 경제특구와 마찬가지로 내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고 관광을 진흥하는 데에 특화된 법률입니다. 법에 근거해 맨 처음 1호 투자진흥지구로 선정되었던 곳이 현재 제주동물테마파크의 전신이며, 현재는 총 62개소의 대형 업장이 운영 또는 건설, 유치 중입니다.

이렇게 세금을 감면받고 사업을 진행 중인 62개소의 부지는 대부분 곶자왈 또는 중산간 지역의 난개발을 초래하며, 근방의 경관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건설됐습니다. 제주도지사는 국립공원 관리부터, 다른 지자체장에 비해 가진 권한이 4000여 항목이 넘는데요. 그렇게 이양된 권한은 각종 심의 절차들이 통과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편법이나 부실 논란, 마을 공유 부동산 매입에 절차, 내용상 하자 논란이 있어도 보완 또는 협의를 단서 삼아 통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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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학대의 섬, 제주

62개소 중 제주해양과학관(한화 아쿠아플래닛), 라온더마파크(마상쇼, 실내 동물원), 제주폴로 승마리조트 등 동물 전시, 노동 사업을 병행하거나 주요 시설로 하는 사업자들도 연이어 승인되어 세금을 감면받았습니다. 또한 승인받은 사업계획서와 별도로, 사업장 내 콘텐츠 운영을 제3자에게 위탁해 동물쇼를 진행하는 일은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법만 문제일까요?

2017년 국회에서는 동물 전시·노동을 하는 전국의 21개 식물원과 박물관이 공개되며 박물관 운영 관련법의 허점이 지적되었는데요. 박물관업의 사회 공헌적 목적에 따라 세금을 감면받으면서도 동물을 전시·노동하고 있는 사업장들이었는데 그 중 10개가 제주였습니다. 지난 5월 <애니멀피플>이 고발했던 흑돼지쇼가 있던 공원이나 조류를 전시한 식물원들이 그에 해당합니다. 탈법을 조장하는 이 낡은 법도 계속 살펴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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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으로 동물을 보호할 순 없다

제주동물테마파크를 반대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근원적 문제들이 너무 많이 발굴되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이미 도민들과 주민들, 의회가 모두 반대를 외치는데 행정과 사업자가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현실도 사실 개탄스럽습니다. 최근에는 전북 정읍에서 오랜 주민 싸움 끝에 소싸움장이 부결된 사례를 주민들과 공유하고, 녹색 자치의 힘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선인분교 아이들을 포함해 선흘2리를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대명이 제주에서 사업을 철회한다고 해도, 이 돈과 아이디어는 다른 지역을 향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또한 반대합니다.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 싸움은 제주뿐 아니라 어디에도 신규 동물원과 수족관이 들어서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식지가 아닌 곳에서 동물을 보호할 수는 없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동물원에 동물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서식지를 보호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함을 애니멀피플의 독자들께서 널리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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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온 동물들을 마주할 수 없다면

제가 두 번째로 노루와 가까이한 것은 제주에 이주한 뒤, 비자림로 도로 위에서였습니다. 파닥거리는 큰 물체가 있어 살펴보니 교통사고를 당해 목만 움직이는 커다란 노루였습니다. 야생동물 구조 신고를 했는데 노루는 이내 숨을 거뒀습니다. 저와 눈을 마주친 채로, 노루가 숨을 거두던, 심장이 철렁 내려앉던 그 순간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제주에는 많은 동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주에 들러 산책을 하다 우연히 노루를, 돌고래를 조우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팔려온, 죽어가는 동물들과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면, 이 싸움의 전국적인 확산을 위해서 손가락 행동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고은영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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