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뀐다고 가혹한 동물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을 테지만,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2019년보다 한 걸음 더 동물에게로 가닿기를 바란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권 보호단체가 저지른 무분별한 안락사 뉴스로 시작된 2019년. 사람들은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라고 호들갑이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상륙하자 (아마도 삼겹살값 폭락과 축산업 몰락의) 예방적 차원에서 건강한 돼지들을 구분 없이 죽이고 땅에 묻었다. 그것도 모자라 야생 멧돼지들까지 마구잡이로 사냥했다.
애초부터 사람을 위해 길러진 농장동물도, 사람 곁에 두려고 데려온 반려동물도, 사람과 무관하게 살아온 야생동물에게도 언제나 그랬듯 힘겨운 한 해였다. 해가 바뀐다고 가혹한 동물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을 테지만,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2019년보다 한 걸음 더 동물에게로 가닿기를 바란다. 애니멀피플이 2019년을 되돌아보고 10가지 동물뉴스를 선정했다.
유기견·보호소·안락사 화두 던진 ‘케어’
1월 국내 유명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무분별한 안락사가 폭로됐다. 2015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모두 200여 마리의 개가 죽었다. 이유는 ‘보호소 공간 부족’이었다. 당시 제보자는 “질병으로 인한 안락사는 10%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안락사를 부인해왔던 박소연 대표의 ‘거짓말’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곳곳에서 박 대표의 ‘구조 지상주의’가 부른 부작용이란 지적이 나왔다. 박 대표는 케어의 안락사 논란이 불거진 뒤에야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대규모 구조가 안락사로 이어진 케어 사태는 우리 사회에 늘어나는 유기견, 사설보호소 관리와 인도적 안락사라는 화두를 던졌다.
ASF, 다시 시작된 살처분의 악몽
돼지들이 죽음의 구덩이로 내몰리는 비극이 다시 시작됐다. 올 9월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11월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파악한 살처분 규모는 38만 마리에 이른다.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농가를 설득해 멀쩡한 돼지들도 예방적 살처분에 동원했다.
10월 중순 이후 사태가 비교적 잠잠해지면서, 죽음의 총구는 멧돼지에게도 향했다. ‘복병’으로 지목된 멧돼지의 포획 포상금은 2만원에서 20만원까지 뛰었다. 돌아서면 반복되는 축산업 농가를 타격하는 전염병, 예방적 살처분… 이 잔인한 지옥의 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유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 식용 산업은 사라질까
12월19일 서울고법 형사5부는 전기가 흐르는 꼬챙이로 개를 감전시켜 도살(전살법)한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씨의 파기환송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살법을 ‘잔인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이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이를 뒤집는 판단을 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식용견 도축이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이번 판결은 개 식용 산업에 파급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는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알려진 부산 구포 개시장 골목이 폐쇄한 해이기도 하다.
동물이 예고한 비극, 가습기 살균제
12월24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7명이 추가로 인정됐다.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람보다 먼저 쓰러진 동물들이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3월 ‘가습기메이트’에 노출된 반려동물이 폐섬유화, 천식, 호흡곤란, 사망 등 사람과 유사한 건강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했다. 검찰 재수사는 끝났지만 특조위의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고, 동물 피해 사례도 여전히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동물 피해 사실이 규명되면 그동안 동물 실험을 근거로 유해성이 없다고 주장해 온 기업들의 논리를 강력하게 반박할 수 있게 된다.
지구·환경·동물 생각하는 ‘뉴노멀’ 비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대전망 2019’에서 올해가 ‘비건의 해’가 될 거라고 전망했다. 국내서도 올해는 유난히 탈육식 움직임이 두드러진 한 해가 됐다. 지난 2월 한국에 처음 출시된 식물성 고기 브랜드 ‘비욘드 미트’는 출시 한 달 만에 1만 팩이 팔려나갔고, 하반기 국내 편의점 업계도 연이어 채식 메뉴를 내놨다. 9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국내 상륙은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애니멀피플이 연속 보도한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기획은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해 내년 1월 서울 용산구 해방촌 ‘소식’에서 일일 저탄소 식당을 개업한다.
‘메이법’은 제2의 메이를 막을 수 있을까
복제견 메이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평생을 공항검역탐지견으로 일한 사역견이었지만, 은퇴 후 다시 대학 실험실로 돌아갔고 지난 4월 그곳에서 죽었다. 메이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했다. 코피를 쏟으며 허겁지겁 사료를 먹었으며, 앙상하게 말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메이가 돌아간 곳은 서울대학교 수의대 이병천 교수 연구실이었다.
‘스마트 탐지견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메이와 같은 은퇴 사역견들은 이 교수의 실험에 동원됐다. 뒤늦게 알려진 ‘메이의 비극’은 이런 사역 동물을 이용한 동물 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 일명 ‘메이법’ 발의를 불러왔다.
‘개들의 지옥’ 애린원이 사라졌다
‘동물판의 숙제’라 불리던 애린원이 마침내 철거 됐다. 20년 전 경기도 포천에 문을 연 애린원은 국내 최대 규모 사설 유기 동물보호소였지만, ‘개들의 지옥’라고 불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한때 유기견들을 적극 수용해 유명해졌으나 관리 미비로 개체 수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9월25일 철거 당일 공개된 애린원 내부는 혼돈 그 자체였다. 하루 동안 구조된 개들의 수만 1천여 마리가 넘었다. 11월18일 철거된 애린원 부지에 희망의 터전이 마련됐다. 첫 철거 52일만이었다. 현재 1300여 마리 개들이 이 보금자리에서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2020년대에는 동물 쇼 아웃
미래의 숫자 같았던 2020년에도, 시대착오적인 동물 쇼가 이어질까. 올해 동물이 ‘볼거리’로 취급받는 현장은 곳곳에서 목격됐다. 애피는 지난 5월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기획을 통해 쇼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19년째 노예처럼 쇼에 동원되는 라오스 출신 코끼리부터, 좁은 수영장에서 죽은 생선을 받아먹으며 묘기를 부리는 돌고래까지, 동물들은 야생성을 몰살당한 채 돈벌이의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었다.
같은 달, 서울시 어린이대공원에서는 고양이, 물개, 펭귄, 원숭이 등 역대 가장 많은 종의 동물들이 출연하는 공연이 펼쳐져 도마 위에 올랐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개들
강아지를 컨베이어벨트 위에 진열하며 가격을 매기는 곳. 반려동물 경매장은 번식장-경매장-펫숍으로 이어지는 생산·유통 과정 중 핵심 현장이다. 번식장에 더 많은 개를 생산할 것을 유도하고, 품종주의를 확산시킨다.
애피는 지난 여름, 외부자의 접근을 엄격히 차단하는 경매장 현장을 잠입 취재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농식품부가 발표한 자료를 종합하면, 한해 20만 마리 개가 경매장을 통해 유통되고, 12만 마리 동물이 유기·유실된다. 수많은 동물이 버려지는 배경에는 동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드리워 있다는 것을 경매장에서 확인했다.
‘길고양이 학대범’에게 철퇴를…
사흘이 멀다 하고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발생한다. 머리에 화살을 쏘고, 불로 지지고, 독극물을 먹이고, 사체를 훼손해서 보란 듯이 올리는 엽기 살해범까지 등장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 학대를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길고양이 혐오 범죄는 오히려 더 잔혹하게 변하고 있다. 동물권활동가들이 더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 책거리에서 발생한 고양이 ‘자두’ 살해사건의 피의자가 최근 이례적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김지숙 신소윤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