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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시간이 멈춘 곳, 한국 동물원

등록 2020-02-03 09:55수정 2020-02-03 11:05

[애니멀피플] 국내 공영동물원 복지 실태
콘크리트 바닥과 비좁은 사육장…“감금하고 지배하는 19세기 방식”
코끼리의 발 건강은 생명과 직결된다. 흙바닥이 아닌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방사장에 나와 있는 코끼리. 어웨어 제공
코끼리의 발 건강은 생명과 직결된다. 흙바닥이 아닌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방사장에 나와 있는 코끼리. 어웨어 제공
3년 전 아이와 동물원에 처음 갔을 때 아이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우와” 혹은 “신기하다”가 아니었다. 쓸쓸함이란 감정을 알까 싶었던 4살 꼬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저 곰은 엄마가 보고 싶은가봐.”

아이는 사육장에 홀로 있는 곰을 쇠창살 사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곰은 사육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반복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전형적인 정형 행동이었다. 아이는 곰의 불안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날 우리는 유리창 안에서 바깥세상을 내다보고 있는 사막여우, 사람이 던지는 먹이에 재롱을 떠는 곰 등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는 의외로 그 모든 시간을 지루해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책에서 보던 동물을 실물로,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어떤 새로운 것도 보고 느낄 수 없었다. 동물들은 인공적인 조경이나 페인트로 칠한 그림 사이에 놓여 있었다. 십수 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온 동물원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후 동물뉴스팀에서 일하며 1년에 몇 차례씩 동물원을 찾았다. 일부 사육장이 서식지와 가깝게 리모델링되는 등 개선이 됐지만 전체적인 변화는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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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형 한국 동물원

지난 1월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발표 및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국내 동물원의 오늘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번 토론회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와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실에서 국내 최초로 전국의 지역동물원들을 들여다보고 조사한 결과를 쓴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열렸다.

사람이 던져 준 먹이에 비만이 된 반달가슴곰. 어웨어 제공
사람이 던져 준 먹이에 비만이 된 반달가슴곰. 어웨어 제공
어웨어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공영동물원 10곳(전체 18곳 가운데 대표적 지역동물원)을 각 1~3차례 현장 방문해 서식 환경과 관리 상태를 조사하고, 이 가운데 5곳의 동물원 종사자를 면담하고 설문 조사 등을 벌였다.

한국의 동물원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발제자들이 한국 동물원의 문제로 가장 먼저 짚은 것은 100~20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관람 시설이었다. 과거에 고여 있는 열악한 동물원 시설은 동물 삶의 질과 직결된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21세기 동물원은 서식지 및 종 보전 방면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한국의 동물원은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통제를 상징하는 감옥형 전시장에서 동물의 신체를 관찰하는 19세기 동물원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동물원에서 조금 발전한 20세기형 동물원은 나무 밑동이나 바위 등 구조물이 들어가고 철장이 유리장으로 바뀌는 등 형태가 바뀌었지만 해당 종의 행동생태에는 무의미한 변화였다. 그리고 약 40년 전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최대한 자연 서식지를 재현하는 단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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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바닥과 비좁은 사육장

이런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국내 일부 동물원은 병렬식으로 이어붙인 철장에 행동 범위가 넓은 표범을 가두는가 하면, 인지 능력이 뛰어난 침팬지에게 아무런 자극을 줄 수 없는 철제구조물만 덩그러니 던져 놓는 식으로 운영된다.

그런 탓에 조사 대상 전체에서 정형 행동과 침울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달가슴곰 등 대형포유류, 일본원숭이와 같은 영장류, 늑대, 타조, 청금강앵무 등 종을 가리지 않고 반복된 행동을 하거나 털을 뜯는 자해의 흔적을 보였다.

인지 능력이 뛰어난 침팬지가 행동 풍부화 요소가 없는 이중 감금 시설에 갇혀 있다. 어웨어 제공
인지 능력이 뛰어난 침팬지가 행동 풍부화 요소가 없는 이중 감금 시설에 갇혀 있다. 어웨어 제공
동물원 동물에게는 각 종에 맞는 복지 기준이 필요하다. 조사에 참여한 수의사를 포함한 연구원들은 동물원에서 보편적으로 사육되는 대표적인 동물 10종을 선정해 서식 환경과 복지 상태를 평가했다. △설가타거북 △청금강앵무 △사막여우 △일본원숭이 △다마사슴 △호랑이 △늑대 △아시아흑곰 △아시아코끼리 △침팬지 등인데, 모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규정하는 멸종위기종이거나 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종이다.

발표에 따르면 청금강앵무는 8곳 가운데 6곳이 무동력 비행 행동 등 정상적 행동을 하기 어려운 짧은 사육장에 살고 있었다. 일본원숭이는 9개 동물원에서 전시되고 있었는데 모두 콘크리트 바닥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마사슴을 사육하는 한 동물원은 수컷끼리 싸움으로 인한 부상을 막기 위해 뿔을 잘랐다. 번식기 수컷 사슴의 공격성을 관리하기 위해 뿔을 자르는 동물원의 사례는 중국의 몇몇 동물원 외에 세계적으로 보고된 바가 없다고 한다.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의 침팬지 사육장. 자연 서식지와 가까운 시설에 다양한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다. 침팬지는 보이지 않는다. 21세기형 동물원의 특징은 동물이 사람의 시선에 언제나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웨어 제공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의 침팬지 사육장. 자연 서식지와 가까운 시설에 다양한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다. 침팬지는 보이지 않는다. 21세기형 동물원의 특징은 동물이 사람의 시선에 언제나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웨어 제공
호랑이는 영역 동물이라 개체마다 구분된 생활권을 갖고 있어 넓은 면적의 개체별 사육공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동물원이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동물원이 방사장 개수보다 많은 수의 호랑이를 보유해 개체마다 적절한 생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뜻한 지역에서 온 벵골호랑이를 추운 계절에도 별도의 난방 없이 방사하는 동물원도 관찰되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를 단독 사육하는 동물원이 있는 곳도 있었다. 코끼리의 발 건강은 생명과도 연결되는데,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방사장 바닥에 충분한 흙을 깐 동물원은 6개 가운데 2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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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무관심을 키우는 동물원

보고서는 사육 환경을 단계적으로 개선하는 곳도 있었지만 많은 동물원이 예산 부족, 환경 조건 등을 이유로 개보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이형주 대표는 “2018년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에 의해 주요 동물군별 일부 종에 대한 기준이 마련됐으나 공영동물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며 안타까워했다.

7살이 된 아이는 오래전 기억을 잊고 종종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육장에 갇힌 동물의 초점 없는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아 아이의 요구를 외면하곤 했다. 동물복지와 권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이 동물원을 보이콧한다. 보고서에 쓰여 있듯 “야생동물을 관람 목적으로 감금 상태에서 사육하는 동물원의 구조가 윤리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렁이는 것이다.

한국에서 동물원은 위락 시설에 불과하다. 청각이 예민한 동물이 놀이공원의 지속적인 소음에 노출되는 모습. 어웨어 제공
한국에서 동물원은 위락 시설에 불과하다. 청각이 예민한 동물이 놀이공원의 지속적인 소음에 노출되는 모습. 어웨어 제공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황주선 수의사는 전시된 야생동물의 자연 습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전시시설에서 동물을 본 관람객을 조사한 결과, 오히려 사람들이 해당 동물에 대한 공포, 무관심 등 부정적 태도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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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바꾸는 동물원이 필요하다

황 수의사는 “동물에 대한 복지는 해당 동물원의 보전, 연구, 그리고 보전교육 기능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야생동물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단순한 구경거리로 전시하는 동물원은 보전교육은 커녕 오히려 야생동물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동물원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행동변화를 불러일으킬 동물원이다. 황 수의사는 “보전 활동을 제대로 하는 동물원에 다녀온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야생동물의 보전을 위한 궁극적 행동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동물원에서 고릴라를 보고 온 한 사람이 야생에 대한 감동과 경외심을 느끼고, 당장 자신의 휴대폰(스마트폰 부품 원료인 콜탄의 주요 생산지가 고릴라 서식지와 겹침)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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