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포천 관음사서 로드킬·학대 피해 동물들의 천도재 열려
“고양이 N번방, 대전 살묘남 사건 피해동물들 넋 위로”
포천 관음사서 로드킬·학대 피해 동물들의 천도재 열려
“고양이 N번방, 대전 살묘남 사건 피해동물들 넋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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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경기도 포천 관음사에 학대, 로드킬, 유기 등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물 천도재’가 열렸다.
사료, 간식, 장난감 빼곡한 ‘동물 제사상’ 지난 2일 경기도 포천 관음사에서는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물 천도재’가 열렸다. 천도재란 죽은 생명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치르는 49재도 이런 천도재에 해당한다. 보통 천도재라고 하면 사람만을 위한 의식으로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동물도 윤회하는 중생으로 여겨 천도재, 수륙재(水陸齋·물과 육지를 떠도는 영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는 불교 의례) 등을 지낸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법당 안은 천도재 준비로 분주했다. 활동가들은 전날까지 밤새워 만든 동물 액자, 반려인들이 보내온 손편지와 공양물, 동물들이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물건들을 제단에 올리기 위해 정리 중이었다. 사료부터 주식으로 먹던 캔, 짜먹는 간식과 어묵 꼬치 장난감, 담요와 축구공까지 정말 가지각색 물건들이 법당 한쪽에 모아졌다. “생전에 주고 싶었던 걸 보내신 것 같다”고 신정숙 조남동보호소(경기 시흥시) 소장이 말했다. 커다란 제기에 개 사료와 고양이 사료도 각각 그득하게 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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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 제단에는 동물들의 사진과 함께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 등이 놓였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천도재 제단에는 동물들의 사진과 함께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 등이 놓였다.
2시간 반 이별 의식…“사람 천도재와 똑같아” 흙동이 뿐이 아니었다. 천도재에 이름을 올린 302마리의 동물들은 대부분 학대로 사망했거나 유기, 질병, 로드킬 등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동물들이다. 지난 10여년 간 고양이를 죽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는 ‘대전 신탄진 살묘남’ 피해동물부터 재개발·재건축으로 희생당한 개·고양이, 로드킬로 생명을 잃은 길고양이들, 어렵게 입양된 뒤 식용이 된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생명이었다.

스님들은 북, 태평소, 바라 등의 불교 예불 악기 등을 연주하며 살풀이춤, 바라춤 등으로 동물 영가들을 위로했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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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동물들의 이름을 읽고 있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일요일 오후에 3시에 시작한 ‘동물 천도재’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이름 없는 동물들’까지 챙긴 사람들 사실 이날 천도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고양이들’에 있었다. 관음사는 지난해 ‘묘연 깊은 곳’으로 화제가된 바 있다. 스님은 지난 2013년 유기 고양이 한 마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사찰에서 약 50여 마리의 길고양이를 돌봐왔다. 그러던 도중 개체수 조절이 어렵게 되자 몇몇 개인 활동가가 이를 도우며 ‘관음사 프로젝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관음사 고양이들 중 성묘들은 모두 중성화 수술을 마쳤고, 어린 고양이들은 입양을 가 약 24마리의 고양이가 절에서 지내고 있다.

관음사 주지 혜영 스님은 2013년부터 유기 고양이를 돌본 인연으로 현재까지 사찰 내에서 고양이 20여 마리를 키우며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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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냥이는 지난 4월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천도재에 참가하고자 하는 반려인들을 모집했다. 좋은냥이 제공

실제 사진 대신 일러스트로 오른 고양이 영정들. 길고양이 활동가 ‘캣츄’(@__cat_chu__)가 고어전문방 학대사건 피해 고양이로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흙동이’(왼쪽)와 올 초 수원 지역 교육기관 앞에서 살해된 아기 고양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좋은냥이 제공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과정” 천도재가 끝나고 제단에 올려졌던 동물의 사진은 모두 재가 됐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고양이별에선 행복하게 지내렴’ 같은 메시지가 담긴 손편지와 작은 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액자, 동물의 얼굴도 모두 불 속으로 사라졌다. 전날 밤을 새워 이 준비물들을 만들었던 좋은냥이 김 아무개 활동가는 연신 눈물을 닦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천도재는 제단에 올렸던 동물의 위패와 사진을 태우며 극락왕생을 비는 의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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