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중랑구에서 실종된 뒤 로드킬 당한 개 ‘랑랑이’. 랑랑이 보호자는 8일 동물 유실을 방지할 법안을 만들어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렸다. 사진 랑랑이 보호자 제공
“서울의 한 병원에 강아지 ‘랑랑이’를 맡겼는데 죽은 채 돌아왔습니다.”
지난 주말 중성화 수술 뒤 병원에 진료를 갔던 강아지가 관리 소홀로 유실된 뒤 로드킬을 당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실종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며 시민 500여 명도 자발적으로 수색을 도왔지만, 강아지는 유실 사흘 만에 결국 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유실견은 반려동물 내장칩이 삽입되어 있었으나 로드킬 사고 이후에도 보호자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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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500명이 찾은 랑랑이, 결국 사체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을
‘동물 실종을 방지하는 랑랑이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랑랑이의 보호자인 청원인은 “지난 6월3일 동물병원에 맡긴 랑랑이가 병원의 부주의와 서툰 대처로 실종됐다. 500여 명의 시민분이 도와주시면서 6월6일까지 수색이 이어졌지만, 결국 랑랑이는 실종 당일 로드킬 이후 냉동고에 보관되지 않아 사체가 심하게 부패한 채로 발견됐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누구보다 악몽 같은 나흘을 보내며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에 대해 입법을 요청한다”며 ‘동물 실종 방지법’ 제정을 제안했다. 청원글에서 그가 주장한 내용은 △동물 케어 서비스업 위기 대처 교육 의무화 △동물 케어 서비스업 안전문 규격 법 개설 △로드킬 동물 수거시 내장칩 확인 및 냉동 보관 의무화 등이다.
‘랑랑이법’ 제정을 촉구하는 ㄱ씨의 청원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랑랑이 보호자 ㄱ씨는 8일 애피와의 통화에서 “랑랑이 사건으로 시민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았다.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세 가지 예방책을 법으로 만들어, 더 이상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민들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해 청원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ㄱ씨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3일 랑랑이는 동물병원 보호 중 병원 관계자들이 보지 않는 사이 열린 문틈으로 밖으로 나가게 됐다. 6개월령이던 랑랑이는 3개월 전 ㄱ씨가 입양한 유기견이었다. 얼마 전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검진을 가며 이날 병원에 데이케어(돌봄 서비스)를 부탁한 것이다.
ㄱ씨가 병원이 제공한 시시티브이(CCTV)를 확인한 결과, 랑랑이는 외부인이 병원으로 들어오며 열린 문 사이로 빠져 나갔다. 외부 문 안쪽으로 안전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사람이 문을 연 사이 빈틈이 생긴 것이다.
또한, 병원은 유실 발생 당시 바로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가 랑랑이를 맡긴 것은 낮 12시 30분경, 오후 4시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랑랑이가 실종된 지 30여 분이 지난 뒤였다. 이후에도 병원 쪽에서는 20~30여 분을 더 병원 안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ㄱ씨는 “랑랑이가 제 목소리와 부름에 잘 반응하는데 왜 더 일찍 연락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ㄱ 씨는 “동물 유실사고를 애초에 막기 위해서는 관련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랑랑이 보호자 제공
그는 “유실사고가 발생할 수는 있다. 개가 달려나가면 쉽게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애초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뉴얼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며 “사고 당시 병원 쪽은 체계적인 대응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기적 훈련과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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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에 내장칩 있었으나 보호자 안내 없어”
이후 랑랑이를 찾는 그의 게시물이 인스타그램, 당근마켓에 알려지며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까지 운영하게 됐다. 채팅방에는 시민 300여 명이 참여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와 조언에 따라 중랑천 일대와 동부간선도로 등을 수색했고, 전단지·현수막 등이 제작됐다. 사흘간 다방면의 수색이 이어졌지만 랑랑이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는 동부간선도로를 지난 한 차량의 블랙박스에서 발견됐다. 사고 지점에서 랑랑이의 넥카라가 발견되고, 랑랑이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랑랑이를 찾는 그의 게시물이 인스타그램, 당근마켓에 알려지며 시민 500여 명이 랑랑이 찾기에 동참했다. 사진 랑랑이 보호자 제공
뒤늦게 확인한 사체의 상태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체가 수거 뒤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담당 구청의 설명과는 달리 사흘간의 폭우와 더운 날씨 탓에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ㄱ 씨는 “랑랑이는 유기견 출신으로 입양 전부터 내장칩이 삽입되어 있었다. 넥카라와 목줄 등을 착용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주인이 있는 개였지만 담당 부서는 사체 수거 뒤에도 보호자에게 아무런 안내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현행법상 동물이 죽으면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된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야생동물이나 주인이 없는 동물의 사체는 지자체에서 수거해 처리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로 등록된 동물의 경우는 소유자가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곧바로 사체 처리를 할 수 없지만, 이를 지자체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거나 미확인 시 처벌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청소업체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서 지난해에도 경북 포항에서 내장칩이 삽입된 유실 동물이
동물등록 확인 절차 없이 소각돼 논란이 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반려인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동물등록을 제도화해 규제하면서도 정작 로드킬에 당한 반려견에 대해서는 확인 절차도 없이 쓰레기로 소각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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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동물 매뉴얼’ 재정비 필요
전문가들은 특히 도심에서 로드킬을 당하는 개의 경우 유기·유실 동물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욱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은 “도시에서 야생적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동네 고양이와 달리 개들은 대부분 유기 혹은 유실 동물들이다. 동물보호 차원에서라도 관련 법이나 시행규칙 등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의무등록 대상의 동물일 경우, 지자체에서 내장칩을 확인하고 이미 사고를 당한 개체라 하더라도 반려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따로 공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채 팀장은 “도로에서 로드킬 사고를 낸 당사자도 원칙적으로는 도로교통법상 경찰에 신고할 의무가 있다. 현행법상 동물도 물건의 지위를 갖기 때문이라”며 “반려동물의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하고, 이를 경찰이 지자체에 알려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매뉴얼이 정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9일 오전 현재 랑랑이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에는 시민 6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