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놀던 아이들이 사라진 축구 골망에 검은딱새가 날아와 앉았다.
가방을 멘 아이들이 사라진 섬마을 등굣길에는 이른 아침 아이들 대신 새들이 날아든다. 지난해 두 명의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학교는 이제 폐교의 길로 가고 있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길 95-7 어청도초등학교. 전북 군산항에서 72㎞, 여객선으로 2시간 반 걸려 도착할 수 있지만, 지난 1925년에 개교해 100년 가까이 1180명의 학생이 졸업해 나갔다. 작은 섬이라 샘과 물이 풍부하지 않고 평지가 거의 없는 형편에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있는 학교는 섬을 지나던 새들이 잠시 내려 날개를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뛰놀던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 낡은 축구 골망에 검은딱새가 날아와 앉았다. 새는 꼬리를 위아래로 까닥까닥하며 연신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 먹이를 발견하곤 잽싸게 날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기를 반복한다.
인조잔디가 깔린 도시의 여느 학교와 달리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잔디를 심어놨다. 과거 어청도 주민들이 잡초를 뽑고 관리하면서 용돈 벌이도 하던 곳이다. 이젠 학생들 흔적마저 희미해지고 있지만, 멀고 험한 이동길에 쉼터로 이용하는 새들이 운동장을 메우고 있다.
유리딱새도 운동장 단골손님이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겁 많아 보이지만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다. 봄철 이동 시기에 서해 도서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접근해도 멀리 달아나지 않고 조금 떨어진 나뭇가지 끝으로 날아가 빤히 바라보곤 한다. 꽁지깃을 까딱이다 사람 발밑까지 날아와 먹이를 물어 가기도 한다.
검은딱새와 유리딱새는 모두 솔딱새과의 새로 비교적 높은 곳에 앉아 있다 사냥하는 습성이 있다. 운동장 한가운데 어른 손 한 뼘 만큼 웃자란 쑥 더미 위도 새들은 서로 경쟁하듯 즐겨 찾는다. 낡은 철봉과 미끄럼틀, 귀퉁이 한쪽이 무너진 학교 담장에도 날아와 앉는다.
어른 손 한뼘 만큼 올라온 쑥대 끝에 앉은 검은딱새가 먹이를 찾고 있다
한동안 축축한 운동장을 헤매던 호랑지빠귀가 큼지막한 먹이를 물었다.
작은 운동장이지만 새마다 좋아하는 구역이 따로 있다. 담벼락 근처는 항시 그늘이 져 축축하다 보니, 호랑지빠귀 차지다. 잡초 사이를 헤집으며 지렁이류를 찾는 호랑지빠귀를 보려면 비 내린 다음 날 학교로 가보면 된다. 번식할 무렵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히~, 히~”하고 구슬픈 소리를 내지만,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겁이 많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운동장에 내려앉은 개똥지빠귀가 발을 구르고 뛰며 먹이를 찾고 있다.
같은 지빠귀류 새인 개똥지빠귀도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 역시 약간 습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발을 구르거나 뛰어다니며 땅속 먹이를 잡는다. 진동을 내어 놀라 땅 위로 나오는 지렁이를 사냥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호랑지빠귀 춤추니, 지렁이가 꿈틀꿈틀). 조심성이 많고 낯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새를 보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온 탐조객의 기척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날아가기 일쑤다. 수풀이 무성하고 낡은 동상 몇 개 서 있는 학교 화단이 주 도피처다.
꼬리 바깥쪽 끝에 흰 반점이 있고 노랑 눈 테가 선명한 붉은배지빠귀도 학교 담장 옆 나무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운동장에 자란 잡풀 사이에서 쇠붉은뺨멧새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고 있다.
얼굴과 가슴에 푸른빛이 도는 회색 번식깃을 가진 촉새.
잔디보다 잡풀이 더 많아 보이는 운동장에는 민가 주변에 널리 자라는 풀이 많다. 잔개자리가 무성한 운동장 한가운데는 쇠붉은뺨멧새와 촉새 차지다. 흔하게 통과하는 나그네새로 여러 마리씩 무리를 짓기도 한다. 평편한 초지나 농경지 주변의 잡목림 등 다소 개방된 환경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소 땅 위서 풀씨를 먹거나 작은 나뭇가지에서 곤충을 잡기도 하는데 운동장 잡풀 속에서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다.
사막 모래나 자갈이 있는 곳에서 먹이를 찾는 쇠종다리는 운동장 모래밭을 좋아한다.
봄가을 서해안과 도서 지역을 지나는 드문 통과 철새로 알려진 쇠종다리는 잔디가 벗겨져 맨땅이나 모래가 드러난 곳을 좋아한다. 모래가 두툼이 쌓인 훈화대 앞에서 먹이를 찾곤 한다. 땅에 내려올 때는 하늘 높이 날다 크게 원을 그리며 착지한다. 운동장에 잡풀이 점점 무성해져 걱정이다. 한 뼘쯤 남은 모래밭이 사라지면 쇠종다리를 계속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학교 담장 넘어 하수구에는 큰유리새가 들락거린다. 코발트 빛 푸른색의 몸에 윤이 나는 머리, 푸른색이 스민 검은색 멱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외모 덕분에 탐조인들이 좋아하지만, 자연광 아래서 코발트 빛이 나는 푸른색을 사진으로 멋지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계곡을 낀 숲에 주로 번식하는 큰유리새는 서식지에서처럼 나뭇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른다. 지치고 배가 고팠는지 어두운 하수구 천정에 붙은 날벌레 사냥에 정신이 없다.
가슴에 세로줄 무늬가 뚜렷한 힝둥새가 텃밭서 먹이를 찾고 있다.
학교 옆 텃밭엔 힝둥새다. 가슴에 검은색 줄무늬가 뚜렷하고 눈 위와 뒤로 눈썹 선이 짧다. 귀 깃에 흰점을 보고 비슷하게 생긴 다른 밭종다리류와 구분할 수 있다. 중부 이남에서는 봄, 가을에 지나가는 나그네새로 알려진 할미새과 새다. 조심성이 많은 편인데, 사람들 왕래가 빈번한 길옆 텃밭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다시 바다를 건너 먼 길을 날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몸에 에너지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텃밭 옆 키 큰 나뭇가지 끝에는 흰색 어깨선이 뚜렷한 새가 앉아 있다. 학교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드문 나그네새인 북방쇠찌르레기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 텅 빈 운동장이 궁금했을까? 탐조객 셔터 소리에 놀란 새는 학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지도 않는다.
폐교 수순을 밟고 있는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에 축구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서해 외딴섬 어청도초등학교의 운동장도 이제 여름이다. 가을에 다시 먼 길을 날아오는 새들을 맞기까지 낡은 동상이 묵묵히 교정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어청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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