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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뱃속에 3㎝ 태아 품고 질식사…상괭이가 전하는 말 [현장]

등록 2022-07-13 15:55수정 2022-07-14 15:23

[애니멀피플] ‘토종 돌고래’ 상괭이 부검 현장
이달 초 통영서 좌초된 임신 개체…폐사 원인은 ‘질식사’
부검 통해 상괭이 생태, 해양 오염 등 연구 자료로 활용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상괭이. 해양수산부 제공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상괭이. 해양수산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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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서남해에 서식하는 ‘토종 돌고래’ 상괭이의 얼굴을 우리가 자세히 보게 된 건 고작 5년 남짓이다. 고래 치고는 아담한 2m 체구에 워낙 인간을 경계하는 탓에 자연에서 목격이 쉽지 않다. 2016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고 상괭이에 대한 관심이 일자 특유의 귀여운 외모나 출산, 수유 장면 등이 속속 공개됐지만 여전히 야생에서 살아있는 상괭이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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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돌고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런 부끄러움 많은 돌고래, 상괭이의 얼굴이 가까이에 드러났다. “상괭이는 주둥이가 뭉툭하고 등에 폭이 좁은 융기가 있습니다. 얼굴은 꼭 웃는 것 같아서 귀엽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대사처럼, 상괭이의 얼굴은 여전히 귀여움을 담고 있었다. 눈가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옅은 핏자국과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난 채 벌어진 입만이 이 고래의 죽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에서 열린 ‘우리바다 상괭이 이야기’ 세미나에서 첫 프로그램으로 상괭이 부검이 진행됐다. 이날 부검을 집도한 오산대학교 이영란 교수가 부검 전 고래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에서 열린 ‘우리바다 상괭이 이야기’ 세미나에서 첫 프로그램으로 상괭이 부검이 진행됐다. 이날 부검을 집도한 오산대학교 이영란 교수가 부검 전 고래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부검이 진행된 상괭이는 7월5일 경남 통영에서 좌초된 개체다.
이날 부검이 진행된 상괭이는 7월5일 경남 통영에서 좌초된 개체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 안흥식품 해양생물부검연구시설에서는 이달초 경남 통영에서 좌초한 상괭이의 부검이 진행됐다. 지난해부터 해양수산부가 시행 중인 ‘상괭이 부검 시범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부검은 해양 수의사인 이영란 오산대 교수의 주도로 충북대, 인하대, 한양대, 국립해양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의 해양생물 생태 연구자 20여 명이 참가했다. 지난해까지 태안군의 상괭이 사체처리 위탁을 맡았던 지역 수산물가공업체 안흥식품이 업체 시설을 부검실로 제공했다. 이날 부검은 7월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되는 ‘우리바다 상괭이 이해하기’ 행사의 첫 일정이었다.

오후 1시40분 부검대 위에 온전한 상괭이 사체가 올려졌다. 지난 7월5일 경남 통영 해안에 밀려와(좌초) 발견된 개체라고 했다. 몸길이 1.6m의 상괭이는 여느 돌고래보단 작았지만 “다른 상괭이보다는 큰 개체”였다. 꼬리나 가슴지느러미에 군데군데 파인 상처가 있었지만 외관상 큰 상처는 눈에 띄지 않았다. “등지느러미 부분이 아주 통통하네요. 영양 상태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이영란 교수가 다른 고래류와 달리 아주 얕게 솟아오른 상괭이의 등지느러미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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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에 가득 든 포말이 뜻하는 것

20여 분간의 검안과 신체 측정 뒤 해부가 시작됐다. 각종 줄자와 메스, 도구 들이 등장하자 해부를 집도하는 이영란 교수, 충북대 김선민 박사의 손도 바빠졌다. 두꺼운 등 지방과 근육이 사체에서 먼저 분리됐다. 기록을 담당한 연구진들이 지방의 두께와 근육 비율 등을 기록하자, 한양대·인하대 연구진들이 지방, 근육 등을 채집했다. 연구진들은 해양생물의 샘플을 채취해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미세플라스틱 수치 등을 검사할 예정이다.

한양대·인하대 연구진들이 현장에서 상괭이의 지방, 근육 등을 채집했다. 연구진들은 해양생물의 샘플을 채취해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미세플라스틱 수치 등을 검사할 예정이다.
한양대·인하대 연구진들이 현장에서 상괭이의 지방, 근육 등을 채집했다. 연구진들은 해양생물의 샘플을 채취해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미세플라스틱 수치 등을 검사할 예정이다.

“상괭이는 인간과 같은 먹이사슬 단계에 있어요. 고래에게서 오염물질이 발견되고, 병들기 시작하면 그 위험이 인간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바다의 건강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고래를 ‘바다의 보초병’(Marine Sentinel)이라고 해요.”

해부가 진행될수록 ‘죽음의 냄새’도 짙어졌다. 부검이 시작된지 1시간 여가 지나자 주요 장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부검의 하이라이트인 폐사 원인과 임신 여부 등을 밝힐 차례였다. 부검 전 이 교수는 이 개체가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괭이의 유두를 누르니 옅은 갈색의 젖이 흘러나왔다.

상괭이의 자궁에서는 손가락 두 마디만한 태아가 발견됐다. 몸길이 3cm, 무게는 370g로 아주 작은 상태였으나 이미 늑골이 형성돼 있었다. 상괭이의 자궁을 살펴본 연구진들은 이 개체가 과거 3번 임신을 했고, 이번이 4번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개체의 나이도 자연스레 계산이 됐다. 상괭이의 성 성숙시기가 4~5살이므로 임신 가능 시기부터 매해 임신을 했다고 가정하면 최소 9살이 되는 것이다.

3개의 위를 지닌 상괭이의 첫 번째 위에서는 미처 소화되지 못한 새우, 오징어, 물고기 등의 먹이 생물들이 발견됐다.
3개의 위를 지닌 상괭이의 첫 번째 위에서는 미처 소화되지 못한 새우, 오징어, 물고기 등의 먹이 생물들이 발견됐다.

이어서 바로 폐 부검이 진행됐다. “폐 안에 포말이 가득하네요. 질식사예요.” 이영란 교수가 학생들과 취재진에게 거품이 가득 든 폐를 펼쳐보였다. 혼획의 피해가 예상되는 부검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혼획은 어업 중에 의도치 않게 그물에 잡고자 한 수산물이 아닌 해양 생물이 섞여 잡히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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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과의 상생이 절실하다”

그동안 정부와 환경단체, 이영란 교수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상괭이 보호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부터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2019년에는 상괭이가 사는 경남 고성 주변 해역을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정했다. 이 교수가 해양보전팀장으로 재직했던 세계자연기금(WWF)은 혼획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탈출망을 어민과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러나 여전히 상괭이 연구에 대한 인프라나 대중 인식 등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상괭이. 해양수산부 제공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상괭이. 해양수산부 제공

이영란 교수는 “국내서 고래를 부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기관은 고래연구센터 한 곳뿐이다. 한해 폐사하는 상괭이가 1100여 마리에 이르는데 고래연구센터는 이 모든 개체들을 부검하고 연구할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그러니 대부분의 상괭이들은 도대체 왜 죽었는지도 사인도 모른 채 폐기된다”고 안타까워 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한반도 근해에 서식하는 상괭이의 수는 3만6000여 마리였다. 그러나 연안 개발과 환경오염, 혼획 등의 피해로 개체수는 급격하게 줄어 2016년에는 1만7000마리까지 급감했다. 한해 폐사하는 상괭이의 수는 1000여 마리로 추정되고 있지만 어민들의 추산은 그 수를 몇 곱절이나 뛰어넘는다.

안흥식품 조항오 대표는 “신고되는 건 천 마리지만 어민들 추산으로는 5000~7000마리는 되는 것 같다. 2017년부터 고래고기 유통이 금지되니까 어민들이 아예 혼획 신고를 하지 않고 바다에 버리고 오기 때문에 정부 집계가 정확치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제주 구좌읍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상괭이. 제주해양경찰서 제공
지난해 2월 제주 구좌읍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상괭이. 제주해양경찰서 제공

연구자들이 정확한 데이터와 생태 연구, 고래 보호를 위해 어민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혼획 저감 도구를 보급한다고 하더라도 어민들에게 이걸 강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어민들은 비교적 혼획 신고를 적극적으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신고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때문에 이번 부검 행사는 학술적 목적뿐 아니라 주민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네트워킹도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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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의 죽음이 보내는 경고

상괭이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연구자나 일반 시민뿐이 아니다. 의도치 않게 고래를 낚은 어민도 마찬가지다. 수산물가공업을 해온 조항오 대표는 상괭이 부검을 여러 번 참관했지만 이날은 더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어미 뱃속에서 새끼가 죽은 게 안타깝지.” 그는 부검 행사 내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면서 상괭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신비한 동물인지 설명했다.

왜 우리는 상괭이를 지키고 연구해야 할까. 이영란 교수는 이게 상괭이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주변의 생물이 하나씩 없어진다는 건,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거예요. 상괭이에게 위험이 닥쳤다, 그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상괭이를 사랑하지만 제가 결국 지키고 싶은 건 바다고, 자연이거든요.”

글·사진 태안/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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