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턱을 바다 표면 수위에 일치시키고 멸치떼가 흘러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타이 만의 브라이드고래. 수염고래에서 처음 보고되는 수동적 사냥법이다. 이와타 다카시 제공.
밍크고래, 브라이드고래, 대왕고래, 긴수염고래 등 수염고래의 사냥법은 비슷하다. 바다 표면을 돌아다니며 크릴이나 작은 물고기가 몰린 곳을 찾은 뒤 거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전속력으로 돌진해 다량의 물과 함께 빨아들여 수염으로 걸러 사냥감만 삼킨다.
그런데 타이 만의 하구 부근에 서식하는 브라이드고래 사이에서 새로운 사냥법이 유행이다. 이 해역의 브라이드고래는 바다 표면에 입을 벌리고 물고기가 들어오길 기다린 뒤 입을 닫아 삼키는, ‘감나무 아래 누워 입 벌리고 기다리는’ 식의 수동적 방식으로 사냥한다. 물론 입은 아주 크고, 이상하게도 입만 벌리면 ‘감’이 잇따라 떨어진다.
다카시 이와타 도쿄대(현 세인트 앤드루래) 생물학자 등 일본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6일 치에 수염고래에서 처음으로 관찰된 ‘천하태평 사냥법’을 보고했다.
이곳 브라이드고래는 바다 표면의 멸치떼를 보고 돌진은커녕 움직이지도 않고 단지 바다 위로 머리를 내민 뒤 아래턱을 직각으로 벌려 바다 표면과 일치시킨다. 평균 15초 동안 이런 자세를 유치해 멸치가 충분히 흘러들어오면 입을 다물고 삼킨다.
연구자들은 “브라이드고래가 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리면 주변 멸치떼가 이상하게 방향감각을 잃고 위턱과 아래턱이 만나는 곳의 고랑으로 흘러드는 물살에 쓸려 입속으로 들어간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타이 만 브라이드 고래 성체와 새끼의 사냥 행동. 왼쪽 위부터 머리를 내밀고 아래턱을 벌려 표면에 일치시킨 뒤 다문다. 오른쪽 아래 사진의 붉은 원은 멸치떼가 물살과 함께 흘러들어가는 위턱과 아래턱 연결부위를 가리킨다. 아래 그림은 일련의 동작을 묘사했다. 아와타 다카시 외(2017) 제공.
이런 특별한 사냥법이 등장한 배경으로 연구자들은 부영양화에 따른 산소 고갈을 꼽았다. 타이 만으로 흘러드는 큰 강들에는 다량의 미처리 하수가 들어있어 오염이 심해 고래의 먹이인 작은 물고기는 주로 산소가 풍부한 바다 표면에 몰려 산다. 이곳의 브라이드고래는 이런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사냥법을 개발했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에너지 소비를 들었다. 거대한 입을 벌리고 물속에서 돌진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든다. 물론 아래턱을 바다 표면 높이로 유지한 채 수직 자세를 유지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지만 돌진하는 것보다는 덜 든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물속에서 그물을 끄는 트롤어업과 얕은 해안의 바다 표면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떠내는 들그물 어업이 수염고래의 돌진 사냥과 정지 사냥에 비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이런 어법은 고래의 문화적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사냥 행동은 서로 다른 31마리에서 58번 관찰됐는데, 이 가운데는 8쌍의 성체와 그 새끼들이 포함돼 있다. 이와타는 “새끼들은 어미의 행동을 흉내 내면서 이 사냥법을 익혔을 수 있다. 흉내는 사회적 학습의 중요한 측면이다.”라고
셀 출판사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고래가 바다 표면에 입을 벌렸을 때 왜 멸치떼가 공포에 빠져 방향감각을 잃고 입속으로 빠져드는지는 앞으로의 연구과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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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wata et al.: "Tread-water feeding of Bryde's whales"
Current Biology 27, R1141?R1155, November 6, 2017 http://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17)31243-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