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위기 야생생물 1급 매, 어청도에 뿌리를 내려 하늘과 바다를 지배하는 최고의 새다.
지인으로부터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 어청도에 매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군산항에서 72㎞ 떨어진 어청도는 여객선을 타고 2시간 30분이 걸린다. 지난 4월과 6월 2차례 방문하였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어청도에서 산행을 하며 매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높은 곳에서 벼랑을 올려보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매 둥지를 찾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지러워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탐조하는 내내 자칫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깎아지른 듯 높이 서 있는 절벽 위가 매의 보금자리다.
사냥 때 급강하하는 매는 동물 중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다음날 매를 찾아 나섰다. 몸이 지쳐갈 무렵, 절벽 위에 날쌔고 사나운 매가 늠름하게 앉아 있었다.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관찰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의 행동이 하나둘씩 새롭게 펼쳐진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짝짓기 모습을 목격했다. 지인은 어청도의 매가 새끼를 기르는 시기라고 해, 시기적으로는 늦었지만 무슨 이유론지 2차 번식을 하는 것 같았다.
바다는 매의 사냥터다.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날쌔게 나는 매.
매는 지정석이 여러 개 있다. 이곳에서 먹이를 감추고, 짝짓기를 하고 바다를 날다 편안히 앉아 쉰다.
짝짓기를 하는 매. 번식기 외에는 단독 생활을 한다.
일반적으로 4월 말~5월 초에는 부화된 매의 새끼를 볼 수 있는 시기다. 이 시기에 이동조류가 많아 새끼에게 먹일 사냥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매는 사람의 손길을 허용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벼랑 위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둥지를 발견하고도 관찰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4월 27일 어청도 토박이 어부 이길덕 씨를 만났다. 약 70여 년 전 매 새끼를 절벽에서 꺼내다 키운 이야기를 한다. 그의 배를 타고 새끼를 꺼내 왔던 곳에 가보았다. 매가 절벽에서 날아오른다.
둥지 주변을 날며 경계하는 매. 빠른 속도만큼 매우 절제된 행동이 눈에 띈다.
어른 매는 가슴, 배, 옆구리 무늬가 가로이며 어린 매는 세로다.
오밀조밀한 매의 가로깃털 무늬. 사냥감을 추적하며 빠른 비행술을 보일 때 사냥감들은 무늬로 인해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매의 수명을 15년으로 추정했을 때 이길덕씨가 어린 시절 보았던 둥지 터를 5대가 물려받으며 살아온 셈이다. 매는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 대대로 터를 잡아 번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가 접안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여건상 관찰이 힘든 곳이었다. 별다른 성과 없이 5박 6일 탐조를 마치고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른 아침 해무가 낀 절벽위에서 매는 사냥감을 살피고 둥지의 안전을 지킨다.
전망 좋은 고사목도 매에 매우 유용한 장소이다.
절벽 지정석에 앉아 주변을 경계한다.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으며 온종일 벼랑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한 달 뒤 6월 5일 어청도를 다시 방문했다. 육로를 통해 관찰했던 곳에 들렀다. 매의 행동을 살펴보고 매 새끼가 태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매 부부가 둥지로 추정되는 곳 근처에 앉아있다.
필자와 2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하늘의 지배자 매는 가장 높고 시야가 넓게 트인 벼랑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바다를 앞마당 삼아 경계를 선다. 새끼를 관찰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둥지를 예측해서 볼 뿐이다.
절벽 둥지 근처로 향하는 매, 둥지를 평생 동안 사용한다.
높은 자리에서는 사냥을 비롯해 주변의 환경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매는 여기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신중하게 행동한다.
매 새끼는 다른 새처럼 먹이를 달라고 보채며 울어대는 일이 없다. 직접 보고 확인할 수밖에 없다. 매 부부의 행동만 관찰할 수 있을 뿐 새끼의 존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새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둥지 쪽 벼랑으로 들락거린다. 매가 숨겨놓은 먹이를 점검한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 하늘을 선회하고 벼랑 위에 앉아있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벼랑 풀숲에 숨겨둔 먹이를 찾아 물고 가는 매. 매는 먹이를 적당히 먹고 남은 사냥감을 저장해 두는 습성이 있다.
온종일 매를 기다리던 6월 8일 어느덧 저녁이 됐다. 오후 6시 30분, 갑자기 매가 나타나 필자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든다. 그러더니 필자와 15m 정도 떨어진 고사목에 태연하게 앉는 게 아닌가. 심쿵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가. 가슴이 떨렸다. 설레는 마음에 카메라를 설치해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가면서도 행동을 자제하려 노력했다. 동물사진은 마음이 흔들려 우왕좌왕하면 촬영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평정심은 동물과 교감할 때 필수 덕목이다.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매와 이렇게 가까이 만나는 일은 처음이라 심장이 콩닥거렸다.
카메라를 추적모드로 설정했더니 고사목과 매의 색이 비슷해 초점이 잘 맞지 않고 오작동을 한다. 단초점 모드로 바꾸는 짧은 순간에도 날아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매가 나무에 앉아 고개를 돌려 필자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매의 영역을 침범한 경고였을까? 대범한 매의 행동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필자가 바라본 매의 모습에는 경계심이 없었다. 수차례 관찰하는 동안에도 매는 경계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가 호기심에서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자신의 영역을 허락하는 듯했다.
날렵하게 빠진 몸매에 옹골차 보이는 매의 자세가 너무나 당차 그가 어청도를 지배하는 최고의 새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매와 잠시나마 교감했던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매가 자리를 뜨는 순간보다 마주했던 순간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았다. 10여 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시간이 한동안 정지한 느낌이다. 만남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