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중단되면서 서식지를 잃을 뻔한 산양들의 생존권이 보존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설악산에 사는 산양 ‘뿔이’입니다.
여러분, 저는 어제 오랜만에 탁 트인 맘으로 산을 껑충껑충 뛰어다녔어요. 긴 싸움 끝에, 드디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중단됐거든요!
16일,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에서 양양군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에 ‘부동의’한다고 밝혔어요. 원주청은 “설악산의 자연환경과 생태경관, 생물 다양성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한 결과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양양군에 통보했다고 해요.
원주청뿐만 아니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립생태원 등 전문 검토기관과 분야별 전문가들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어요. 어제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밀어붙여 질 경우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 단편화 △보전 가치 높은 식생 훼손 △백두대간 핵심구역 지형 과도한 변화 등이 우려된다고 했대요.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는 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산양들입니다.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이에요. 지난해 9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지역에 사는 산양 28마리가 사업을 중단해달라고 직접 소송을 제기했고, 저는 그 가운데 한 마리예요.
케이블카 설치 공사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였어요. 케이블카가 우리가 사는 곳 위로 다니게 됐다면, 그 소음과 진동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얘기했죠. 그럼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무분별하게 파헤쳐지는 숲에서 저희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이 없었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서식지는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바위 지대예요. 설악산에 남은 이런 자연환경에는 이미 다른 산양 무리나 동물들이 자리를 잡았어요.
저는 답답한 마음에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공연장에서 연극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을 열어 있는 힘껏 제 목소리를 내어보기도 했어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며 설악산에서부터 도보순례를 한 시민·환경단체가 7월 31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지만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우리가 문화재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우리의 청구를 각하했어요. 동물의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거죠.
37년이나 이어진 지난한 싸움이었어요. 어느 환경운동 활동가의 말처럼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모두 지치고 불신의 벽을 쌓은 긴 시간”이었어요. 주민들은 장애인, 노인 등 신체적 약자들의 설악산 등반을 위해, 그리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주장했어요. 승인을 받기 위해 노선이 변경되기도 하고, 행정심판이 진행되고, 조건부 허가가 떨어지기도 하는 등 극심한 찬반논란이 이어졌어요.
어제 환경부가 최종적으로 우리의 손을 들어준 데 대해 그동안 우리를 지지해준 사람들도 환영의 뜻을 밝혔어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중단은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동물권 신장, 동물해방에도 시급한 문제였다”며 “무분별한 포획 및 서식지 감소, 로드킬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산양의 마지막 남은 최대 서식지인 설악산 난개발을 막는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어요.
그동안 우리를 위해 가장 절박하게 싸워온 사람으로 알려진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는 “설악산을 돈벌이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모든 가치가 부정되고 국립공원이 아니라 유원지가 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려왔었죠. 박 대표는 “지금처럼 인공 시설물이 너무 많은 설악산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는 공간으로서의 훼손되지 않은 설악산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되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전해왔어요.
이들의 바람대로 우리 산양들은 보존 받은 서식지에서 더는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고 이 땅의 아이들과 오래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다음 세대의 산양들이 이 다음 세대의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길,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신소윤 기자 yoon@ha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