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충남 보령시 성주면의 서광수씨.최예린 기자
머드 축제로 유명한 충남 보령은 30~40년 전만 해도 탄광지역이었다. 강원 지역 탄광보다 탄폭이 협소하고 석탄의 질이 떨어지긴 했지만, 1980년대에는 80여곳의 탄광이 영업했다. 석탄 수요가 줄며 1990년대 들어 보령 탄광 역시 차례로 문을 닫았고, 1994년 심원탄광 폐광을 끝으로 지금은 탄광이 남아 있지 않다.
지난 6일 오후 보령시 성주면 먹방마을(성주4리)에서 만난 서광수(70)씨는 ‘보령의 광부’였다. 경남 의령이 고향인 서씨는 1980년대 보령으로 온 뒤 광부 일을 시작했다. 인생 ‘막장’에서 죽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고 했다. “죽지 않고, 살아지던” 시간을 버텨 보령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탄광 일은 고됐다. 무릎을 심하게 다치는 산재를 입기도 했다.
1991년에 일하던 탄광이 폐광하자 밥줄도 끊겼다. 탄광이 문을 닫자 외지에서 온 광부들은 대부분 보령을 떠났다. 자존심에 서씨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보령에 남았다. 보령 시내에서 장사도 해봤지만, 광부로 일하던 시절에 견줘 살림은 팍팍했다. 300세대가 넘던 마을에는 100세대도 남지 않았다. 마을에 남은 광부 중 상당수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농사도 못 짓는 산촌에서 평생 석탄 캐던 광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었겠어요.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 매일 술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시비가 붙여 싸우고…. 마을 인심이 점점 더 나빠졌죠.”
2001년 떠밀리듯 서씨는 먹방마을 이장을 맡았다. 이장이 되고 보니 “폐인이 된 주민들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고 한다. 대부분 소득은 없었고, 삶의 수준은 바닥이었다. 마을 근처 계곡에 평상을 놓고 빌려주는 마을사업을 시작한 것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몸부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2015년 보령시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마을기업을 세우기 전까지 먹방마을 사람들은 가까스로 마을을 지탱했다.
먹고 사는 일 말고도, 마을을 병들게 하는 것은 ‘성차별’과 ‘가정폭력’이었다. 오래전부터 광부들에게 여자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금기’였다. 여자가 앞지르거나 가로질러 가면 출근하지 않았고, 출근 전에 여자가 집에 방문하면 난리가 났다. 여자가 그릇을 깨도, 부부싸움을 해도 갱에 들어가지 않았다.
광부 일을 그만둬도, 여성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탄광촌의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광부 시절 생긴 마음의 병이 남아 술만 마시면 ‘아내를 때리는’ 이도 많았다. 이장이 된 뒤 “남들이 간섭 못 하게, 도망치지도 못하게 다 벗겨놓고 때리더라”는 광부 아내의 사연을 듣고 서씨는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지난 6일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8리의 한 광부 사택 모습. 최예린 기자
2006년 서씨는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산제(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에 여자들도 참여시키자고 했다. 그 소리에 마을은 난리가 났다. ‘금기’로 한 세월을 산 할머니들 자신도 “뭔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모두를 설득해 2007년부터 먹방마을은 여성이 함께하는 산제를 올렸다. 2016년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동생활홈’을 마을에 만들었고, 그해 마을주민들이 참여하는 ‘양성평등 인형극’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서씨는 보령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다.
서씨는 폐광지역 개발기금이 쓰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기금이 폐광지역 주민의 삶과는 별 상관이 없는 관광 시설 만들기 등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실제 충남의 폐광지역인 충남 보령시의 폐광지역 개발기금 사업을 보면, 대천해수욕장 스카이바이크·석탄박물관 관리·운영비, 성주산 모노레일 개발, 갱도 개발 용역 등 관광시설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스카이바이크와 석탄박물관의 16개 일자리 중 폐광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성주탄광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경우 임대료 일부를 빌려주는 식으로 광부나 그 가족을 지원하는데,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현재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광부나 그 가족은 24명뿐이다.
서씨는 “근처 성주8리 사택마을을 가보면 낡은 옛 사택들이 방치돼 있어요. 광부와 그 가족인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사는 거죠. 다른 폐광지역 주민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폐광지역 주민들의 삶을 직접 변화시키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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