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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떨고 가셔요”…노인들 스스로 운영하는 지역 공동체

등록 2023-11-29 11:00수정 2023-11-29 11:11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 ③ 호주
지난 7일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혼즈비 지역 쇼핑몰에서 열린 ‘빌리지 허브’ 커피 모임. 55살이 넘은 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박다해 기자
지난 7일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혼즈비 지역 쇼핑몰에서 열린 ‘빌리지 허브’ 커피 모임. 55살이 넘은 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박다해 기자

지난 7일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혼즈비 도심의 한 카페를 찾았다. 오전 11시가 되자 초로의 남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노인 커뮤니티 ‘빌리지 허브’ 정기 모임에 나온 사람들이다. 이날 프로그램은 1시간30분 남짓 커피와 차를 마시며 가볍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커피 캐치업’이었다.

“이 나이쯤 되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떠나요. 그래서 (노인은) 온종일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잦아요. 이 모임은 과거 이력과 지금 형편에 상관없이 누구든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계를 맺고 가까운 친구가 되기도 하고요.”

모임의 실질적 리더인 80대 다이앤의 말이다. 이날 카페 테이블을 채운 노인은 16명이었다. 친구나 아내 손에 이끌려 모임을 처음 찾은 이들도 인사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대화에 녹아들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고, 어떤 일을 했든 가리지 않는다. 혼즈비에서 살거나 일하고 55살(원주민은 50살) 이상이면 누구나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모임 장소가 대형 쇼핑몰 한복판에 있는 카페이다 보니 쇼핑 온 지역 주민도 분위기를 살피다 부담 없이 합류한다.

친구 소개로 이날 처음 모임을 찾았다는 김수인(73)씨는 “늙으면 외로울 줄 알았는데, 지역에 우리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하루하루가 심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온 지 30년이 넘었다는 그는 “동네 사람들이 하는 걷기 모임에 들어갔다가 요가도 하게 되고, 친구 소개로 커피 모임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빌리지 허브는 지역 내 노인들의 ‘느슨한 연결망’을 만들어주는 친목 커뮤니티로 지방의회와 지역 병원, 비영리단체 등과 협력해 운영된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12곳이 있고, 중앙정부의 사회서비스부가 보조금을 지원한다. 혼즈비의 빌리지 허브에선 이날 진행된 커피 모임 말고도 요가, 미술, 공예, 요리 등 다양한 체험·실습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빌리지 허브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모임의 ‘지속 가능성’이다. 혼즈비 빌리지 허브를 운영·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시드니 노스 헬스 네트워크’에서 지역사회 연결 담당자로 일하는 브룩은 빌리지 허브를 지탱하는 에이비시디(ABCD: Asset Based Community Development. 자산 기반 지역사회 개발) 원칙을 이렇게 소개했다.

“에이비시디 원칙은 지역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인적·물적 자산을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게 핵심입니다. 예컨대 제 역할은 ‘빌리지 허브’ 각각의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을 주도할 수 있는 지역 내 노인 당사자를 발굴하고 그들이 모임을 운영해 갈 수 있도록 장소 섭외, 비용 지원 등을 돕는 겁니다.”

‘빌리지 허브’ 모임을 안내하는 배너가 쇼핑몰에 설치돼 있다. 박다해 기자
‘빌리지 허브’ 모임을 안내하는 배너가 쇼핑몰에 설치돼 있다. 박다해 기자

에이비시디 원칙이 강조되는 이유는 담당자가 바뀌어도 모임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기획과 개발, 실행을 공동체 스스로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이앤도 처음엔 프로그램 참가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사교성과 적극성을 바탕으로 커피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된 경우다. 구성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뿐 아니라, 일을 통해 노인 참여자의 효능감과 자존감을 함께 높인다. 브룩은 “은퇴한 뒤에 모임을 찾아오는 분들은 ‘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직업을 그만뒀다고 (그들이 쌓아온) 여러 기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임 참가자들 모두 각자의 고유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재능을 일깨워 자신감과 적극성을 북돋우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다이앤은 번화한 도심의 쇼핑몰에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연결감’을 유지하는 일이 노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혼즈비에서 지역사회 개발 공무원으로 일하는 마크는 “코로나19 때 사람들이 다른 외출은 다 멈춰도 식료품을 사거나 병원 진료를 받으러 도심 쇼핑몰에 나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이곳에서 모임이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이런 모임이 노인들의 고립감, 우울감을 낮춰 의료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다이앤은 이날 모임이 진행되는 틈틈이 쇼핑몰을 찾은 주민들에게 모임을 소개하고,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모임에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였다. “괜찮으면 함께 수다 좀 떨고 가지 않으실래요?”

1인가구는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적’인 가구 형태로 인식되곤 한다.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가구 형태임에도 사회 일각에선 ‘저출생 고령화’를 초래하는 문제적 현상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10명 중 3.5명이 1인가구인 시대에, 혼자 살아가기조차 버거운 사회는 저출생에도 고령화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혼자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전국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 24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1인가구 정책 전반을 진단하는 한편, 한국의 1인가구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들었다. 1인가구 정책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스웨덴의 정책 사례도 하나하나 짚어봤다. 편집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드니/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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