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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맺힌’ 골목길, 재개발로 사라지네

등록 2008-06-01 17:49수정 2008-06-02 02:31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과 재개발로 인해 과거 우리 삶의 흔적과 기억을 담고 있는 골목길들이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왼쪽부터 종로구 종로2가, 용산구 용산2가동, 한남동의 골목길 풍경.  사진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김정인 인턴기자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과 재개발로 인해 과거 우리 삶의 흔적과 기억을 담고 있는 골목길들이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왼쪽부터 종로구 종로2가, 용산구 용산2가동, 한남동의 골목길 풍경.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정인 인턴기자
북아현동·한남동 등
‘시절 담은 풍경’ 없어져
패션쇼·사진상영 등
‘의미 되새김’ 움직임도

해질 녘, 2층 창문 너머로 들리는 피아노 소리, 저녁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그의 등 뒤에서 퍼지는 된장찌개 끓는 냄새. 아이들이 놀다 버린 돌멩이와 흙바닥에 그어놓은 삐뚤빼뚤한 선들. 마을 언덕에서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 시멘트 담벼락의 ‘소변 금지’ 낙서. 전봇대에 덕지덕지 붙은 ‘이삿짐 6351-XXXX’ 종이전단, 대문 옆 깃발과 함께 간판을 내건 ‘처녀보살’….

주택들을 배경으로 구불구불 펼쳐졌던 골목길의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 지역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으로 곧은 대로가 펼쳐지면서,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다닐 좁은 골목길은 도심의 풍경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에 서울 지역에서 재개발이 완료된 곳은 전체 153개 구역 800여만㎡에 걸쳐 있다.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도 123개 구역 459만여㎡에 달한다. 여기에 서울시내 전역에서 진행 중인 뉴타운 조성 공사까지 치면 도심의 실핏줄인 골목길은 공간을 점점 잃고 있다. 이 모든 공간에서 골목길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골목길이 얼마나 사라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서울시는 너비 20m 이상의 도로를, 자치구는 너비 4m 이상의 도로에 대해서만 기록을 남기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시의 너비 4m 이상 도로의 총 길이는 8067㎞로, 2001년보다 100㎞ 이상 늘었다. 서울시는 이 길이가 10년 뒤에 8678㎞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도시 안의 구획정리·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골목길을 4m 이상의 대로가 대체하는 추세다.

서울에서 그나마 골목길의 ‘원형’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는 동네는 북아현동, 한남동, 삼선동, 삼청동, 동대문운동장 일대 등이 있지만, 이 지역들도 대부분 재개발을 진행 중이거나 앞두고 있다. 이미 북아현동은 재개발로 주민들이 빠져나갔고, 삼선동 일대도 일부 지역에서 이미 공원 조성 공사가 시작됐다.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건축학)는 “서울에서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의 흔적을 가진 동네는 40곳 정도지만, 일정한 면적을 골목길로 지킨 동네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10군데 안팎으로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 북아현동 골목길에서 마주친 집배원 고아무개씨(39)는 “정부가 몇 해 전 골목길들에 ‘복숭아길’, ‘달맞이길’ 같은 정감 있는 이름을 붙였지만, 정작 골목길 자체는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골목길에 대한 관심도 간헐적이지만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서울 삼청동 골목길을 따라 패션쇼가 열렸다. 패션쇼를 기획한 채은하 디자이너는 “삼청동을 오가면서 이 공간이 생활과 밀접한 공간이면서도 굉장히 창조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골목길을 런웨이로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문화연대는 지난해 6월 ‘사진으로 배워보고 경험하는 골목길’이라는 주제로 네 차례에 걸쳐서 한남동·삼선동·북아현동·동대문운동장 주변을 답사하고 당시 찍은 사진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상영하기도 했다. 행사를 기획한 최지현 활동가는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파괴되는 삶의 공간으로서의 골목길 의미를 대중들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서울서 좁다고 소문난 골목길은
종로 YMCA 뒷길 너비 80cm, 한남동 해맞이길은 너비 40cm

‘한국에서 제일 좁은 추억의 골목길’ 종로 와엠시에이 뒷길.
‘한국에서 제일 좁은 추억의 골목길’ 종로 와엠시에이 뒷길.

‘한국에서 제일 좁은 추억의 골목길’ 팻말.
‘한국에서 제일 좁은 추억의 골목길’ 팻말.

서울 종로 와엠시에이 건물에서 뒤쪽으로 약 100미터 떨어진 골목에는 이채로운 팻말이 있다. 담벼락에 붙어있는 이 나무 팻말에는 ‘한국에서 제일 좁은 추억의 골목길’이라고 적혀있다. 실제로 이 골목의 끝은 너비가 약 80㎝로, 두사람이 나란히 지나가기 힘들다. 이곳에서 라면 가게를 운영하면서 팻말을 붙인 이숙진(50)씨는 “3년 전 쯤에 한 잡지사에서 우리 라면집을 취재하면서 이 골목이 한국에서 제일 좁다고 하길래 팻말을 붙여봤다”며 “아직까지 더 좁은 골목을 보지는 못했다”며 웃었다.

용산2가동 새싹길
용산2가동 새싹길
정말 그럴까. 서울 시내를 둘러봤다. 우선 서울 용산2가동은 좁은 골목길의 보고였다. 이 지역의 소월길·새싹길·미리내길 일대는 남산의 가파른 정점을 향해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이 가운데 새싹길에 있는 계단은 너비가 1m 안짝이다. 경사가 급한 계단은 너비가 60㎝까지 좁아진다. 미로처럼 얽힌 이곳 계단길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광경은 인상적이다.

서울 한남동 해맞이길 일대도 좁은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다. 특히 해맞이2길 5번지와 8번지 사이에 10여미터에 걸친 골목([위 오른쪽 사진])은 평균 너비가 60㎝에 불과하다. 길이라기보다는 틈에 가깝다. 울퉁불퉁한 석축과 시멘트벽 사이로 가장 좁은 곳의 바닥 너비는 40여㎝다. 이 지역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다는 마을 주민 이연심(77)씨는 “70년대 재개발을 하면서 몰려든 철거민들이 ‘하꼬방’(판자집)을 만들면서 지은 집들 사이의 구획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남동 해맞이길
한남동 해맞이길
이 밖에도 서울 성북구 삼선동과 종로구 삼청동, 서대문구 북아현동 등의 주택가도 ‘서울에서 제일 좁은 골목’의 쟁쟁한 후보들로, 뒷골목의 향수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는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고 문화재이며 창조적인 공간”이라며 “개인적으로는 골목길 한 귀퉁이의 아담한 집 가운데 하나가 타워팰리스보다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김정인 인턴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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