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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길을찾아서] 헛소리는 가라, 쇳소리를 내자 / 백기완

등록 2008-11-27 18:14수정 2008-11-28 01:15

1969년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용 ‘삼선 개헌’ 시도를 막고자 전국을 돌며 반대운동에 나선 고 장준하 선생(당시 신민당 국회의원)이 한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필자 역시 장 선생의 권유로 박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 선산 집회에 나섰다가 불구속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1969년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용 ‘삼선 개헌’ 시도를 막고자 전국을 돌며 반대운동에 나선 고 장준하 선생(당시 신민당 국회의원)이 한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필자 역시 장 선생의 권유로 박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 선산 집회에 나섰다가 불구속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백기완-나의 한살매 40
내 나이 서른여섯살 되던 1969년,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우리 쇳소리를 내자’는 말뜸(화두)을 들고 다녔다.

미국은 베트남 온 고을을 불바다로 만들며 이 땅별(지구)을 몰아죽이고 있고 박정희는 대들할(헌법)을 또 바꿔 막틀(독재)을 늘쿠고자 하는데도 모두 헷소리만 치고들 있으니 이때야말로 쇳소리를 내자고 으르고 다녔다.

장항에서 오는 천수레(완행열차) 안에서 채희완(부산대 교수)을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이 땅은 이참 딱 셋이 없는데 그게 무언 줄 아나. 춤은 있으되 날래(해방) 사위는 없고, 굿(연극)은 있으되 랭이(민중)들의 꿈은 없고, 소리는 있으되 쇳소리가 없는 것이니 큰일 아니겠나. 그러니 자네들이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할걸세.” 많이 마셨다.

그 뒤 박재일과 김지하를 만났다. “왜 그리 수척하십니까, 우리 영덕에라도 가서 한 이틀 자시다 오시지요?” “좋지.” 그러고선 우리 집에서 함께 자고 막 떠나려는데 장준하 선생한테서 묻길(기별)이 왔다. 박정희가 밀어붙이는 장기집권 꿍셈(음모)을 물리치느라 가는 길이니 오늘 늦은 한낮 서울역으로 나오라고. 오늘 만은 안 되고 다음에 보자고 했는데 양일동 선생(삼선개헌반대투위 사무총장)에 이어 장 선생의 묻길이 또 왔다. 나들이 돈은 있다, 몸만 오면 된다고.

“여보게, 이거 안됐구먼” 하고 박재일과 김지하와 헤어져 서울역에서 충청도 도고에 닿으니 벌써 김상돈 선생, 이민우 선생이 와 있어 우리들은 이마를 맞댔다.

하제(내일) 낮, 박정희 라비(고향) 선산에서 목숨 건 유세를 해야 한다. 거기서 비슷한 이야기가 겹치지 않도록 하자고.

나보다는 서른 살이나 윗분들이라 어렵긴 했지만 ‘유세’라는 말보다는 ‘덤불’이라고 하지요. 여기저기 덤덤이 불고 다닌다는 ‘덤불’.

젊은이가 꼭값스럽다고 한참 웃다가 젊은 백기완이는 그럼 어떤 이야기를 하겠느냔다.


“저는 쇳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쇳소리라니?”

“네, 박연 물떨기(폭포)의 떳다고는 소리와 몇 해 동안 피눈물로 맞짱을 떠 소리를 얻은 사람이 으스대고 내려오질 않겠습니까. 하지만 밭에서 김을 매던 씨갈이꾼(농사꾼)들은 ‘녀석, 너는 임마, 소리는 얻었어도 네 소리엔 쇳소리가 빠졌어, 임마’ 그럽니다. 무슨 말이냐, 뜨거운 밭고랑에서 진땀, 박땀, 빼땀까지 흘려가며 밭을 매다 보면 지쳐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막된 고비를 넘어 가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그걸 쇳소리라고 합니다.

또 죽어라 하고 일을 해 보았자 그 땀의 열매는 몽땅 땅 알범(주인)이 다 가져가고 나면 온몸이 칼날이 되어 부들부들 떨게 됩니다. 그렇게 떨질 않으면 자지러질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윙윙 울게 됩니다. 그게 쇳소리고요.

또 사람은 살다 보면 엄청 슬픔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제 힘으로 헤어 나와야 하는데 힘이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가 있나요. 스스로를 달구고 을러대되 제 힘만 달구어선 안 됩니다. 꿈을 함께 내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쇳소리지요.

이참 우리는 박정희가 파놓은 구덩이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달구어야지만 우리들의 하제(희망)를 빚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쇳소리라 그 소릴 내고 싶습니다.” “어허, 젊은 백기완이의 그 쇳소리 한술 들어보아야겠는데….”

백기완
백기완
그래서 박정희네 라비(고향) 소 파는 마당에 내가 나섰을 땐 큰발(확성기)이 안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분한 소릴 담아냈다.

“여러분, 마을을 떠났던 사람이 비록 뜻을 못 이루어 괴죄죄한 모습으로 돌아와도 우린 모두 반기게 되어 있지요. 하지만 이참 박정희는 총칼로 빼앗은 준심(정권)을 다시 늘쿠고자 칼을 들었으니 어찌할까요. 몰아내야 합니다. 아니면 여러분들이 빼대기(강도)가 되는 겁니다.”

달구름(세월)은 흘러 때속(감옥·1974년 1월 유신헌법 폐지 서명운동으로 긴급조치 위반 혐의 구속)에서 열두 해를 살아야 한다나, 그런데 어느 날(75년 2월15일 석방) 갑자기 나가라고 하더니 나만은 돈 십만원을 내질 않으면 못 나간단다. 박형규, 이규상, 고영하는 다 나갔는데.

여섯 해 앞서 그 선산에서 한 내 이야기에 마주한 뺄값(벌금)이 십만원이라. 안 내면 하루 천원씩 쳐서 백날을 살란다. “좋다, 난 열두 해하고 백날도 다 살겠다.” 그런데 어럽쇼! 밤 12때결(시)에 나가라고 나를 마구 끌어낸다. 박경리 선생이 칠만원, 박한상 변호사가 삼만원을 냈다나…. 기자 하나가 묻는다. 때속에서 뭘 했느냐? “나야, 그저 우리말 쓰기를 했지요.”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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