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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상상 초월한 ‘이정우 공격’…버텨낸 건 노 대통령 덕분

등록 2023-08-14 15:18수정 2023-08-15 02:34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_ 28화 언론과의 전쟁 1

월간조선, 논문·책 등 사상검증
“헨리 조지주의자…요주의 관찰”
매일경제, 보수인사들 설문 통해
개혁적 장관·참모들 낙마 시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은 2003년 8월25일 6개 경제지와 합동인터뷰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은 2003년 8월25일 6개 경제지와 합동인터뷰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중앙일보가 두 차례 1톱3전(1면 톱+3면 전면) 폭탄을 던질 무렵인 7월9일(수) 중앙일보 계열 영자 주간지에 4인의 jeer(김운용, 박지원, 돈 먹은 서예가협회장, 이정우) 기사가 났다. 악의적 보도의 연속이다. 덕분에 jeer(조롱, 야유)라는 단어를 하나 배웠다.

삼성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인수위 때 인하대 경제학과 윤진호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삼성 임원단에서 협력하자는 제의가 와서 공동세미나를 한두번 하고 흐지부지됐는데, 인수위 경제분과 간사인 김대환, 이정우 교수와 가까운 후배라서 삼성에서 접근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 뒤 삼성에서 이정우는 ‘포섭 불가’라고 판단해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 3년 후배인 윤 교수는 노동경제학의 대가로 비정규직 문제 최고전문가였는데 안타깝게도 몇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지방대 교수인 내가 갑자기 인수위, 청와대에 등장하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성격이 감추고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언론에 좋은 취재원이 되었던 모양이다. 언론과는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인수위 때 어느 일요일, 기자들이 내 사무실에 무단침입해 책상 서랍을 뒤진 사건이 발생했다. 네명 기자 이름이 보고돼 왔다. 나는 중요 서류를 서랍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자들은 허탕을 쳤다. 좀 꾸짖고는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그중 한 기자와는 꽤 친해졌다. 그는 본인 생각과 달리 신문사에서 이정우를 공격하라고 지시하니 몹시 괴롭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살구색 ‘문화일보’는 어느 날 1면부터 끝면 사설까지 총 5개 면을 동원해 나를 공격한 적도 있다. 이건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것이다.

나는 진보, 개혁 성향이긴 한데 과격, 급진은 아니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나의 이념을 자주 문제 삼았다. ‘월간조선’은 2004년 11월호에 이정우 특집을 실어 나의 사상을 검증했다. 경북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내 책과 논문 중 몇편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정우는 사회주의자는 아니고, (19세기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주의자다. 그러나 요주의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휴! 다행이다. 헨리 조지 덕분에 내가 빨갱이 딱지를 면했다. 그리고 ○○일보는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나를 한달간 미행했는데 아무 소득이 없어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청와대를 나온 뒤에 들었다. 한국 보수언론의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라도 무릎 꿇릴 수 있고, 자기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오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7월18일(금) 조선일보에 이틀 전 비서실장 공관 만찬 때 수석들의 대화 내용이 일부 기사화됐다. 누가 누설했는지, 혹시 도청장치라도 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수석회의 마치고 나오는데 권오규 수석이 강연, 인터뷰를 일체 하지 말라고 말렸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고 꾸준히 강연하고 거의 모든 언론과 인터뷰했다. 2005년 8월 정책기획위원장을 그만둘 때 정은영 비서가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 건네줬다. 1년 반 동안 진행한 강연과 인터뷰 녹음테이프가 50개 넘게 들어 있었다.

매일경제 2003년 8월25일치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 6개월 특집 ‘교체해야 할 참모’ 여론조사 성적표.
매일경제 2003년 8월25일치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 6개월 특집 ‘교체해야 할 참모’ 여론조사 성적표.

8월25일(월) 새 정부 출범 6개월 되는 날이다. 보수언론이 비난 일색 특집을 실었다. 매일경제는 전문가 30인(보수 경제학자·경영학자+재계 인사, 진보는 0명)이 뽑은 교체 대상 각료 순위를 발표했다. 장관은 윤덕홍, 권기홍, 이창동, 김진표, 진대제, 청와대 참모는 이정우, 문재인, 유인태, 문희상, 정찬용 순이었는데 득표 비율에서 내가 종합 1위의 영광을 차지했다. 대부분 진보개혁 성향에, 대구 출신이 5명이라 이채로웠다.

오후 3시 노무현 대통령의 6개 경제지 편집국장 인터뷰에 배석했다. 첫 질문자로 나선 매경 장용성 편집국장이 장관과 참모 교체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노 대통령이 이렇게 답했다. “장관을 너무 자주 바꾸면 안 되는데 과거 너무 자주 교체했다. 아직 6개월밖에 안돼 교체할 생각 없다. 청와대에는 문희상 실장이 잘하고 있고, 본인 바로 앞에서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정책실장은 학계에서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검증받은 인물이고, 경제보좌관도 학계에서 검증받았고, 문재인 수석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다. 고로 바꿀 사람 없다.”

인터뷰가 끝나고 복도에서 내가 장용성 국장에게 “금방 쫓겨나지 않아서 미안하군요” 하자 “그게 아니고, 죄송합니다”하며 얼버무렸다. 편향된 30명에게 물어 참모 교체하라는 이런 언론이 과연 옳은가.

11월24일(월) 오후 4시 서울대 경제연구소에서 강연했다. 6층 세미나실에 이승훈, 김인준, 표학길, 이준구, 이지순, 양동휴, 이영훈, 이근 교수와 대학원생 30명 정도가 모였다. 강의 제목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 달성할 5대 과제-분권·분산, 부동산, 교육개혁, 여성인력, 노사문제-를 이야기했다. 나라의 틀을 바꿀 개혁인데, 어렵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영훈 교수는 “와이에스(YS)도 실패했고, 디제이(DJ)도 실패했는데 개혁이 성공할 수 있겠나”고 부정적으로 논평했다. 경북고 2년 후배인 이 교수는 학창 시절 민주투사였는데 지금은 극우파가 됐다. 초청자인 이승훈 경제연구소장은 “오해하던 게 많이 풀렸다, 앞으로 자주 와주면 좋겠다”고 했지만 모교에만 자꾸 올 수는 없다고 답했다.

알고 보니 그 작은 세미나실에 기자 네명이 있었다. 11월26일(수) 조선, 동아가 서울대 특강을 이틀 연속 악의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은 서울대 교수들의 참여정부 비판을 실었고, 동아는 ‘서울대 교수들 정부 비판’이라고 큰 제목을 달았다. ‘정책실장에게 호된 쓴소리’ 운운했지만 당시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90분간 이야기한 내 말은 거의 싣지 않고 교수들 발언만 부각했다. 30여명 교수, 대학원생들과 좌담하는데 기자가 넷이나 들어와 녹음한 것도 희한하지만 문맥을 자르고 단어를 떼어 보도하는 방식은 보수언론의 전매특허였다.

조중동의 집중포화로 전운이 감돌 때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11월27일(목) 저녁 한겨레 곽정수 기자가 라디오 방송에 나가 “나도 거기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나도 기자지만 이럴 수 있느냐’고 조중동을 규탄했다. 그날 참석했던 조중동 어느 기자도 사적으로는 이건 너무 했다고 이야기하더란다. 순식간에 사태가 종결됐다. 그가 없었다면 조중동에 봉변을 당할 뻔했으니 곽정수 기자는 나의 백기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아 2003년 8월25일 오후 청와대에서 6개 경제일간지 편집국장과 합동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노 대통령, 이정우 정책실장, 권오규 정책수석.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아 2003년 8월25일 오후 청와대에서 6개 경제일간지 편집국장과 합동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노 대통령, 이정우 정책실장, 권오규 정책수석. 연합뉴스

이런 일도 있었다. 2004년 문희상 비서실장이 총선 출마차 청와대를 떠났고, 후임에 연세대 총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김우식이 임명됐다. 연세대를 나온 이광재의 추천이라고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수석회의 마치고 일어서는데 김 실장이 대통령에게 문건을 하나 내밀며 보고를 시작하려 했다. 제목을 보니 ‘이정우에 대한 언론 비판’ 모음집이었다. 노 대통령이 제목을 흘깃 보더니 “됐어요”하며 더 이상 듣지 않고 자리를 떴다.

참여정부는 5년 내내 보수언론의 공격에 시달렸다. 대통령이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는데, 2위는 나일 것이다. 대통령보다는 훨씬 적지만 다른 참모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공격받았다. 그 정도 공격받으면 대개 대통령은 참모를 교체한다. 잘못이 없어도 교체하는 게 불문율이자 관례다. 내가 그토록 공격받으며 2년 반 일한 건 예외 중 예외다. 이건 오로지 노 대통령이 지켜준 덕분이다. 언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이런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나는 행운아였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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