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기 앞서 4월27일 한 대기업 회장의 집에 들어가 경비원에게 과도를 휘둘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것은 ‘나’”라고 털어놓는 차성환씨. 사진 홍용덕 기자
‘남민전’ 김종삼씨 33년 만의 증언
선거 막판 새누리 후보의 민주당 이학영 후보
‘칼로 사람을 찌른 나쁜 사람’ 네거티브 추궁에 증언 나서
“남민전 당시 재벌2세 문제 부각시키려 담벼락 타”
“이 후보, 시비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한 것으로 감수” “비리혐의로 물러난 검사가 시민운동가를 사실이 아닌 것을 갖고 공격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지난 1979년 이른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던 차성환(58·사진), 김종삼(65)씨가 33년 만에 입을 열었다. 서울대에 재학 중 남민전에 가입했던 차씨는 “1979년 12월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기 앞서 같은 해 4월27일 한 대기업 회장의 집에 들어가 경비원에게 과도를 휘둘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것은 ‘나’였다”고 털어놨다. 총선을 1주일여 앞둔 경기 군포에서는 언론 여론조사에서 여·야 후보간 오차범위 내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새누리당 유영하 후보는 자신의 선거 공보물의 한쪽을 전부 할애해 33년 전에 발생한 ‘강도 상해 어떤 변명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라며 선거 막판 민주통합당 이학영 후보의 과거 전력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상황이다. 유 후보는 검사 재직 시절 180만원 어치 향응을 받은 혐의로 2003년 11월 감봉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바 있고, 이 때문에 2004년 총선에서 시민단체의 낙선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간밤에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차씨는 “당시 상처를 입은 경비원한테는 미안하다. 그 사람한테 죄가 있었겠냐. 살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군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후보가 이학영 후보를 겨냥해 ‘칼로 사람을 찌른 나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반독재민주화, 반외세’를 기치로 결성된 지하 비밀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에 대해 공안당국은 1979년 11∼12월에 고 김남주 시인과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등 80여명의 관련자를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의 위반혐의로 체포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들은 영장 없이 2∼3개월씩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과 대방동, 옥인동, 심지어는 안기부가 있던 남산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이중 40여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차씨 등은 “남민전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재벌 2세들의 여러가지 오만하고 일탈적인 행동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재벌 2세들이 칠공자니 하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국민들의 분노가 컸다”며 “그래서 남민전에서는 재벌 2세들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리고 이들을 손봐줄 생각으로 당시 재벌 2세였던 한 대기업 회장의 집을 털자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또 “당시 남민전은 물론 반독재활동을 펴던 단체들의 경우 경찰에 쫓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려면 자금이 필요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그해 4월27일 오전 ‘금붙이가 많다’고 소문이 난 대기업 회장인 최아무개씨의 집에 침입한 이른바 ‘재벌집 담벼락 타기’ 사건이다. 차씨는 “이학영씨를 비롯해 동료들 6∼7명이 함께 그 집에 갔다”며 “그때 나와 이학영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경비원이 제지했고 제압이 안 돼 이씨가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과도로 경비원을 찔렀고 이어서 바로 집에서 빠져나와 피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이학영씨는 강도상해죄로 구속됐으며 이어 같은해 12월 남민전 사건으로 사건이 병합돼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차씨는 “이학영씨 자신도 칼로 찌른 것이냐 아니냐는 시비에 시달리면서도 본인이 모든 것을 뒤집어 썼다”며 “피신해 있는 동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한 것으로 감수를 하고 그렇게 해서 재판도 받고 강도 상해사건의 당사자로 수십년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은신 중이던 차씨는 같은해 12월3일 경찰에 붙잡혔고 수사관들에게 진실을 털어놨다. 차씨는 “그때 대기업 회장 집에 들어갔다가 내가 엉겁결에 당황해서 과도로 경비원을 찔렀다고 말하니까 담당 형사가 ‘이제와 그러면 만화밖에 안 된다. 덮어라’고 말했다”며 “이것이 사건의 진실이다”고 말했다. 차씨와 이 후보 등 남민전 관련 사건자 80여명의 1심 재판이 현재 서울 소공로 근처에 있던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당시 이학영씨의 최후 진술을 들었던 이들은 “전남대 문리대 학생회장 시절이던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과 징역살이 이후 서울에 올라와 노동자로 일하면서 어렵게 사시는 홀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채 유신독재와 싸울 수밖에 없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는데 방청석에 있던 구속자 가족들은 물론 판사까지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이학영 후보는 지난 2007년 8월23일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특별법에 따라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돼 명예가 회복됐다. 김씨는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는 유신치하이고 긴급조치로 그야말로 숨을 쉬기도 힘든 사회였다”며 “반독재 민주화와 반외세 자주화는 어느 나라든 후진국인 나라에서는 바람이었고 지금 상황으로 당시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였다면 나는 아마도 남민전은 모른 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갔을 것”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면서 “다만 앞뒤 전후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상대 후보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후진적인 네거티브 공세만큼은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이학영 후보는 새누리당 유영하 후보의 선거공보물에 맞서 자신의 공보물에 다음과 같은 조국 교수의 글을 실었다. "이학영은 강도입니다. 독재의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아 오려 했던 강도입니다. 이학영은 도둑입니다. 가난하고 힘들 시민들의 마음에서 근심을 훔쳐간 도둑입니다… 피로 얼룩진 이학영의 민주화 투쟁 대한민국은 민주화 유공자의 자격을 수여했습니다.” 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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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 시비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한 것으로 감수” “비리혐의로 물러난 검사가 시민운동가를 사실이 아닌 것을 갖고 공격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지난 1979년 이른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던 차성환(58·사진), 김종삼(65)씨가 33년 만에 입을 열었다. 서울대에 재학 중 남민전에 가입했던 차씨는 “1979년 12월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기 앞서 같은 해 4월27일 한 대기업 회장의 집에 들어가 경비원에게 과도를 휘둘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것은 ‘나’였다”고 털어놨다. 총선을 1주일여 앞둔 경기 군포에서는 언론 여론조사에서 여·야 후보간 오차범위 내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새누리당 유영하 후보는 자신의 선거 공보물의 한쪽을 전부 할애해 33년 전에 발생한 ‘강도 상해 어떤 변명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라며 선거 막판 민주통합당 이학영 후보의 과거 전력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상황이다. 유 후보는 검사 재직 시절 180만원 어치 향응을 받은 혐의로 2003년 11월 감봉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바 있고, 이 때문에 2004년 총선에서 시민단체의 낙선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간밤에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차씨는 “당시 상처를 입은 경비원한테는 미안하다. 그 사람한테 죄가 있었겠냐. 살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군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후보가 이학영 후보를 겨냥해 ‘칼로 사람을 찌른 나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반독재민주화, 반외세’를 기치로 결성된 지하 비밀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에 대해 공안당국은 1979년 11∼12월에 고 김남주 시인과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등 80여명의 관련자를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의 위반혐의로 체포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들은 영장 없이 2∼3개월씩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과 대방동, 옥인동, 심지어는 안기부가 있던 남산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이중 40여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차씨 등은 “남민전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재벌 2세들의 여러가지 오만하고 일탈적인 행동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재벌 2세들이 칠공자니 하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국민들의 분노가 컸다”며 “그래서 남민전에서는 재벌 2세들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리고 이들을 손봐줄 생각으로 당시 재벌 2세였던 한 대기업 회장의 집을 털자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또 “당시 남민전은 물론 반독재활동을 펴던 단체들의 경우 경찰에 쫓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려면 자금이 필요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그해 4월27일 오전 ‘금붙이가 많다’고 소문이 난 대기업 회장인 최아무개씨의 집에 침입한 이른바 ‘재벌집 담벼락 타기’ 사건이다. 차씨는 “이학영씨를 비롯해 동료들 6∼7명이 함께 그 집에 갔다”며 “그때 나와 이학영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경비원이 제지했고 제압이 안 돼 이씨가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과도로 경비원을 찔렀고 이어서 바로 집에서 빠져나와 피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이학영씨는 강도상해죄로 구속됐으며 이어 같은해 12월 남민전 사건으로 사건이 병합돼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차씨는 “이학영씨 자신도 칼로 찌른 것이냐 아니냐는 시비에 시달리면서도 본인이 모든 것을 뒤집어 썼다”며 “피신해 있는 동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한 것으로 감수를 하고 그렇게 해서 재판도 받고 강도 상해사건의 당사자로 수십년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은신 중이던 차씨는 같은해 12월3일 경찰에 붙잡혔고 수사관들에게 진실을 털어놨다. 차씨는 “그때 대기업 회장 집에 들어갔다가 내가 엉겁결에 당황해서 과도로 경비원을 찔렀다고 말하니까 담당 형사가 ‘이제와 그러면 만화밖에 안 된다. 덮어라’고 말했다”며 “이것이 사건의 진실이다”고 말했다. 차씨와 이 후보 등 남민전 관련 사건자 80여명의 1심 재판이 현재 서울 소공로 근처에 있던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당시 이학영씨의 최후 진술을 들었던 이들은 “전남대 문리대 학생회장 시절이던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과 징역살이 이후 서울에 올라와 노동자로 일하면서 어렵게 사시는 홀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채 유신독재와 싸울 수밖에 없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는데 방청석에 있던 구속자 가족들은 물론 판사까지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이학영 후보는 지난 2007년 8월23일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특별법에 따라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돼 명예가 회복됐다. 김씨는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는 유신치하이고 긴급조치로 그야말로 숨을 쉬기도 힘든 사회였다”며 “반독재 민주화와 반외세 자주화는 어느 나라든 후진국인 나라에서는 바람이었고 지금 상황으로 당시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였다면 나는 아마도 남민전은 모른 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갔을 것”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면서 “다만 앞뒤 전후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상대 후보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후진적인 네거티브 공세만큼은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이학영 후보는 새누리당 유영하 후보의 선거공보물에 맞서 자신의 공보물에 다음과 같은 조국 교수의 글을 실었다. "이학영은 강도입니다. 독재의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아 오려 했던 강도입니다. 이학영은 도둑입니다. 가난하고 힘들 시민들의 마음에서 근심을 훔쳐간 도둑입니다… 피로 얼룩진 이학영의 민주화 투쟁 대한민국은 민주화 유공자의 자격을 수여했습니다.” 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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